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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새(함석헌), "나는 장준하를 위해 울지 않습니다"

김승환 (강원노회,생명,목사) 2012-09-28 (금) 10:36 11년전 8360  
나는 장준하선생을 위해 울지 않습니다
 

나는 장준하 선생을 위해 울지 않으렵니다. 장 선생은 위해서 울 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장 선생은 죽은 사람이 아닙니다. 죽을 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죽을 수가 없는 분인데 어떻게 울고 있겠습니까. 추도는 죽은 것이 아깝고 원통해서, 영 다시 볼 수 없어서 하는 일입니다. 장 선생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그렇게 대접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장준하는 죽지 않았습니다. 죽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를 버리고 갔을 수가 없습니다.

8월이 되니 사람들 입에서 장 선생 추도식 소리가 자주 나오기 시작합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누구의 말을 듣기 전에 나 혼자서도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 절차를 위해 의론하자는 모임에도 참여했고, 추도문을 쓰라는대로 쓸까하고 붓을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며칠이 돼도 글이 되지 않았습니다. 무슨 문구를 늘어놓아도 그것이 내 할 소리 같지 않고, 장준하가 그것을 허락할 것 같지 않았습니다. 내가 장준하를 몰라서가 아니요 무슨 생각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생각이 너무 많고 알기를 너무 잘 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나를 알고 나는 그를 압니다. 그는 죽었다고 하기에는 너무도 산 사람이요, 가버렸다고 하기에는 너무도 우리 속 깊이 뿌리 박힌 사람입니다. 그는 울어 주기에는 너무도 생기에 찬 사람이요, 놔버리기에는 너무도 악착같이 의에 달라붙은 사람입니다.

남강 이승훈 선생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완용이 죽었을 때 신문이 그것을 보도하면서「이완용 死」라고 한 것을 보시면서「내가 죽은 담에는 아마「이승훈 死」라고 하지는 않을거다」하셨습니다. 그것은 스스로 죽을 수 없는 것을 아는 이의 말입니다. 그것이 생지도(生之徒) 입니다. 우리 장 선생은 생지도(生之徒)지 사지도(死之徒)가 아닙니다. 스스로 죽을 생각을 일찍이 해본 일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그런 이를 어떻게 죽은 사람대접을 하여 추도를 할 수 있겠습니까? 의가 살아 있는 한 장준하는 산 사람이요 영원히 이긴 자입니다. 물론 잘난 사람을 위해서는 울어야지요. 잘 났다는 것은 잘 울었다는 말입니다. 생명은 울음입니다. 장준하는 잘 운 사람입니다. 일제시대에는 진리의 학도로 패기 있게 울었고, 자유당 시절에는 언론 사상인으로 깊고 넓게 울었고,5.16 후는 정치인으로 높고 깨끗하게 울었습니다. 그가 잘 울었다면 우리도 그를 위해 잘 옳게 울어주어야지요. 그러나 정말 잘 사는 것이 죽음으로 사는 것이요, 정말 잘 죽는 것이 삶으로 죽는 것이라면, 울음도 참아 울음으로는 할 수 없는 울음으로 우는 것이 참 울음이요, 슬퍼함도 참아 슬퍼함으로는 할 수 없는 슬픔으로 슬퍼하는 것이 참 슬픔일 것입니다. 아! 나는 장준하를 울 수는 없습니다. 글을 쓰려고 앉은 내 앞에 그는 평소에 하던대로 빙그레 웃음을 지으면서 한 손을 들어 밀어제치면서「선생님 답지 않게요? 그런 것 다 집어치우셔요!」했습니다.

8월은 장준하의 달이 됐습니다. 광복절에 장준하는 영원의 대열에 들었습니다. 거기서는 여기서 보다 더 완전한 이김으로 하기 위하여서일 것입니다.

천지의 대법칙에는 변함이 없어 8월은 또 돌아왔습니다. 초가삼간을 업신여기고 세상의 잔재주들이 영화를 자랑하여 교만을 부리는 때에 5월이다 되도 큰 꿈을 깨지 않고 있었던 석류는 이제 도리어 그 깊은 속의 혼의 구조를 주옥으로 내뿜으려고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 다. 이때에 광복절은 돌아왔건만 우리 장 선생은 왜 돌아올 줄을 모르느냐, 호천호지(呼天呼地) 하잡니까? 아니, 절대로 아닙니다. 봄 돌아와 꽃이 피고 꾀꼬리가 울 때 두보는 감상해서

出師未捷身生死 (출사미첩신생사)
長使英雄涙滿襟 (장사영웅루만금)

이라고 울었습니다. 제갈량이 그것을 좋아했을까요? 아닙니다. 국형진췌사이후이(鞠形盡瘁死而後已)를 사명으로 아는 그가 그것을 잘한다 했을 이가 없습니다. 믿고 사랑은 했으면서도 아직 깊은 깨달음으로 하나됨에 이르지 못했던 막달라 마리아도 빈 무덤 앞에 섰을 때 허망에 빠져

“누가 내 주님을 꺼내갔습니다. 어디 두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울었습니다. 예수께서 그것을 잘 한다고 했습니까? 천사가 책망하며 “산자를 왜 죽은자 가운데서 찾느냐?” 했습니다.

아! 장준하 동지! 내가 죽어 당신이 내 적사를 쓴다면 몰라도(당신도 아마 그런 것은 하려하지 않을거요.) 내가 어떻게 남아 있어 당신을 추도하고 있겠소? 내가 어떻게 울고 있겠소?

아니요, 나도 울지요, 어찌 울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장준하를 우는 것이 아니라, 나를, 이 죽다 남은 나를 우는 것입니다.

예수는 말씀 하시기를「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와 너의 자녀를 위해 울어라」하셨습니다. 나는 나와 내 옷소매에 매달리는 것들을 위해 울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장 선생이 죽음으로 약속한 것을 지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하여야할 증언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모르지만 나는 그의 비밀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영원히 감추기 위한 비밀이 아니라, 죽음으로 내놓자는 비밀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이상히 알지만 나는 조금도 이상히 여기지도 놀라지도 않습니다.

그는 때를 잘 아는 사람입니다. 일은 변하는 것이고 변하면 때가 오는 것인데, 때를 아는 것이 지혜요 식견입니다. 내가 장준하의 말에 늘 귀를 기울인 것은 시국에 관하여 그의 판단이 누구보다도 늘 정학(正鵠)을 꿰는 일이 많았고, 거기 대하는 대책에 있어서 그 태도가 늘 성의 있고 신속하며, 그 발상이 늘 묘했기 때문입니다.

일만 있고, 생각만 잡히면 언제든지 나를 찾던 그는 그때도 나한테 왔었습니다. 장자의 말에「복량의(卜梁倚)는 성인의 才는 있으나 성인의 道는 없고, 나는 성인의 道는 있으나 성인의 才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마는, 불의를 보면 싸울 마음은 있으나 그 어떻게 할 방안에 대하여서 순한 나는 그가 해 주는 말을 듣고 그럴만 하다고 생각만 되면 잘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상계지에 글을 썼고, 그래서 시민회관, 대광고등학교정의 강연회가 있었고, 또 약사봉 사건이 일어나자 그가 광복절 날에 옛 동지들을 찾았던 것, 그 전날 선영에 깨끗이 벌초를 했던 것, 선열들의 묘소에 참배를 했던 것, 중경이래 지켜오던 국기를 「자기는 아무리 생각해도 지켜낼 자신이 없다」하며 이대박물관에 맡긴 것 등을 돌이켜 생각하며 신기하게 여기지만, 내게는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그는 죽을 준비(아니면 적어도 긴 세월 부자유의 몸이 될 것에 대한)를 했던 것입니다. 그 후에 약사봉 사건이 있고 없고는 그에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미 최후를 결정한 사람이요. 결정하고 자기 할 일을 다 한 사람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죽은 사람입니다. 약사봉에서 떨어져 죽은 것이 아니라 죽어가지고 약사봉에 올라간 것입니다. 이것이 나의 증언입니다. 그 당시 내가 3일 후에 있을 일을 생각하며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산을 올라갔을 것이라고 한 것은 이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한 말입니다. 상상해 보시요 다 죽어가지고 훨훨 벗고 자유혼으로 산을 올랐으니 얼마나 상쾌했겠나! 그러니, 스스로 자기 최후를 결정한 사람에게 죽음이 무슨 권위를 가질 수 있습니까? 하물며 슬픔이요, 울음이겠습니까?

실족한 것은 그가 아니고 나입니다, 추락을 한 것은 장준하가 아니고 이 나 함석헌입니다. 그러니 내가 어찌 울지 않올수있옵니까?

 

아! 슬픔니다. 천상아(天喪我)입니다.

오늘 나는 울어야, 곡지통(哭之痛)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仁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勇하지 못했고 智하지 못했습니다. 죽은 장준하는 살았는데, 살아있는 나는 죽었습니다. 이 가슴을 안고, 그것을 말하지도 못하면서(어디다가 하겠습니까?) 티끌 속을 무슨 다툴 것이나 있는양 헤메어 다니는 나를 누가 알기나 했겠습니까? 금년 2월 문익환 목사가 나를 찾아와서 3.1구국선언을 할 것을 발의하셨을 때 내가 「또 한번 하나님의 발길에 채이는구나 !」한 것은 골짜기 바닥에 떨어져 죽은 것 같이 있는 나에게, 쇠사슬에 매여 슬픈 잠에 잠겨있는 베드로의 옆구리를 차듯이, 드립다 차는 천사의 무섭고도 고마운 발길질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나는 반년을 가위에 눌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총책임 내가지마 하고 대답한 것인데, 그러고도 똑똑히 하지 못해 겨우 법정 피고석 뒷 줄에 가 바보답게 앉아 있는 내 귀에 3.1선언을 하게 된 동기가 무엇이냐 묻는 검사 심문에 대해 문익환 목사가 놀랍게도「장준하의 뒤를 잇기 위해서입니다」하는 말이 들렸을 때 나는 또 한번 걷어차는 발길을 정문(頂門)에 느꼈습니다. 문 목사는 장준하의 말을 귀로 들은 것이 없이도 그의 약속과 부탁을 들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장준하가 살아있는 증거가 아닙니까? 그런데 나는 두 귓청이 울리게 듣고도 못들었습니다. 들었어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굵은 베옷을 입고 재판정에 나가기로 했습니다.

나는 장 선생 영 앞에 이것을 사과합니다. 또 모든 동지와 씨알 앞에 울음으로 사죄합니다.

사람들은 장선생의 죽음을 슬퍼하여 나라의 큰 손실, 민족의 큰 불행이라 합니다. 내 입으로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러지 않으렵니다. 그것은 하나의 핑계 아닐까요? 겁장이는 언제나 민족의 영웅 나라의 의인을 칭찬하며 저는 그 그늘에 숨어서 떡을 먹으려 합니다. 정말 손실로 아느냐? 알거든 그 허망의 구멍을 네 몸으로 메꾸려므나! 구멍을 메꾸는 데는 반드시 아름다운 돌이 필요치 않다더라!

사람들은 탄식하기를「가서는 아니 되는 사람이 갔구나!」합니다, 나도 그랬습니다, 뭣을 알기나 하는 것처럼.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노예근성 아닐까요? 자유의 귀한 줄을 모르는 자포자기자는 역사는 특별한 사람만이 멘다고 숭배하는 척하면서 도둑놈께 역사를 팔아넘깁니다. 역사야 말로 아무도 멜 수 있는 것, 메지 않아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정말 가서는 아니 되는 사람인 줄 안다면 네 피를 흘려 그의 혼에 부어서 살아나게 하면 되지 않느냐? 피에는 구별이 없다더라, 다 같이 하나님이 주장하시는 것이라 하더라!

나는 장준하를 위해 울지 않으렵니다. 나를 위해 울고 우리 자녀를 위해 울렵니다. 씨알 여러분! 우리 씨알 장준하의 만세를 부릅시다. 장준하 만세 !

소나무 밑 동자놈아
우리 스승 어디 갔냐?
소나무 우둑 서 있건만
동자놈 간 곳 없다.

약사봉아 물어보자
네 무슨 약 감추었나
스승은 숨겨놓고
죽을 死짜만 내놓느냐?

우리 엄마 30년을
전신불수 누워있다.
이 산 속에 있을 스승
구름 깊어 모를네라.

 

 

씨알의 소리 1976. 8 56호
저작집; 10- 259
전집; 5- 391

김승환(강원노회,생명,목사) 2012-09-28 (금) 10:41 11년전
오늘 아침 페이스북에 들어갔다가 바보새의 울음소리를 들었습니다.
저도 그저 같이 울고만 싶었습니다.
주소
박용래(,대전장로교회,) 2012-09-28 (금) 11:14 11년전
과거의 역사 청산이 바로되지 아니하고서는 새로운 역사를 이루어 갈 수 없는데
역사인식이 바르지 못한 지도자를 만나면 나라가 표류할 수 있는데 그 줄에서서
목매에 발버둥 치는 세상을 바라보며 또한번 울어버리고 싶어집니다.
바보새의 울음소리가 더욱 넓고 깊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울려졌으면 합니다.
주소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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