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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호봉제(2) - 빚을 남기고 떠난 사모님...

김진철 (충남노회,오순교회,목사) 2012-10-14 (일) 20:52 9년전 4494  
 <준목님, 그 더덕, 벌써 죽었어요.>
‘ㄷ교회’에서 시무하던 어느 날 아침, 장로님이 오셔서 교회당 앞에 있는 수양버드 나무 아래 무엇을 심으셨습니다. 다 심으시고 물을 주시면서 말했습니다.
<준목님, 여기에 더덕을 심었습니다. 우리 며늘아기가 강원도 친정에서 가져온 귀한 것입니다.>
하시고는 잘 살펴보라고 했습니다. 나는 건성으로 대답을 했습니다. 더덕이라고 가르쳐 준 것도 눈여겨보지를 않았습니다. 그런데 교회당 앞에 서 있는 수양버드나무는 아이들이 숨바꼭질할 때도 쓰이고,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놀다가 뭔가 의견이 안 맞는 일이 있으면
거기에 자전거를 세워놓고, 목과 얼굴에 핏대를 세우면서 떠드는 곳이기도 하고,
학생들이 농구하다가 공이 자주 굴러가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은근히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장로님의 며늘아기가 강원도에서 가져온 귀한 더덕이 밟혀 잘못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조심하라고 하면서, 시간이 흘러 여름이 되었습니다. 그곳에 풀이 무성하게 자라, 모기도 많고, 뱀도 나올 것 같다고 아내가 풀을 좀 베라고 했습니다. 나도 그러고 싶지만 장로님의 며늘아기가 강원도에서 가져온 귀한 더덕이 자라고 있기 때문에 안된다고 했습니다.
<더덕 주위만 놔두고 베면 되지.>하는 아내의 말을 들으니 그 말이 맞습니다.
<나는 그걸 왜 몰랐지? 내가 모자라기는 좀 모자라나보다> 하고 풀을 베려고 하니 아뿔싸! 더덕이 어느 것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장로님이 가르쳐 줄 때 제대로 안 보았더니, 이것이 더덕 같고, 저것이 더덕 같고...그래서 할 수 없이 주일날까지 기다렸다가 장로님에게 물었습니다.
 
나 : 장로님, 풀을 베려고 하는데 더덕 때문에 못 베고 있어요. 더덕이 어느 것이지요?
장로님 : 그 더덕, 벌써 죽었습니다. 여기하고 안 맞았는지, 심은 뒤 며칠 뒤에 죽었어요.
나 : ???

그런 내가 <농촌과 농민에게 위로와 희망을..>이라는 슬로건이 좋아서 농촌목회를 했습니다. 더덕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지 꼬라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열정과 헌신성이 강한 젊은 목사님들이 농촌에서 헌신하는 것은 참 보기 좋았습니다.
농촌 현실에 대해서 공부도 하고, 땅을 살리는 농법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농촌의 새로운 대안 공동체에 대해 공부하고, 실질적으로 도전하고 있는 곳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경북 무을에서 경기도 수원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참기름을 팔러 가기도 했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경북 선산에서 서울까지 쌀을 싣고 가서 엘리베이터가 없는 아파트에 쌀을 짊어지고 배달을 했습니다. 유기농, 직거래, 생협,,,생소한 단어들을 머리에 새기며 참 부지런히 다녔습니다. 이제 조금씩 감이 잡혀갈 무렵이었습니다. 모범적인 모습으로 선도하던 몇몇 목사님들이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열정과 젊음을 불사르던 농촌교회를 떠나서 도시교회로 갔습니다. 의외라고 생각하다가 곧 그럴 수도 있겠다고 수긍을 했습니다.
그들의 큰 능력을 한국사회와 교회를 위해 더 큰 곳에 가서 써야 하기 때문에 떠나는 목사님들을 이해했습니다. 농촌교회만으로는 농촌에 희망을 준다는 것이 한계가 있어서, 도시교회로 가서, 그들을 깨우치고, 도시의 한 교회가 농촌의 교회 하나를 책임지는 도시와 농촌교회의 역동적인 관계를 만들겠다는 사명을 가지고 떠나는 목사님들이 존경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아주 극소수의 나 같은 목사는 <먹고 살기 힘들고, 자녀들 교육을 위해서>라는 구차한 명분으로 농촌교회를 떠나려고 했습니다. 명분이 구차했기 때문에 가고 싶어도 사실은 교회가 없었습니다.
물론 진정한 소명감으로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농촌사역을 하시는 분들도 여전히 많았습니다. 그때 서로 토론하면서 생각했던 것이 목사호봉제였습니다.
농촌이나 혹은 특수목회에 헌신하는 사람들이 먹고사는 생활비의 문제로 뜻을 꺾고 이동하는 아픔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입니다.
그때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이 이제는 50대 전후가 되었습니다.
더러는 도시의 큰 교회를 목회하기도 하고, 중진급 목사님들이 되어 일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의 마음으로 돌아가 목사호봉제를 위해 논의하고 힘을 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혹시 지금 이런 문제로 고민하는 후배목사님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지 않을까요?

<빚을 남기고 떠난 사모님>
이 가을에 패티 김의 <가을을 남기도 떠난 사람>을 부르면 낭만에 젖어 들고 싶지만...
낭만이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니고 <빚을 남기고 떠난 사모님>의 이야기를 슬픈 가을 삽화로 남깁니다.
어느 시골교회에 초임전도사님이 부임했습니다.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이웃교회에 계신 노(老)목사님을 찾아가서 물었습니다. 노(老)목사님은 전도사님에게 <열심히 기도하고, 부지런히 전도해라. 다른 일에 신경 쓰지 말고..> 그는 목사님의 조언에 따라 열심히 기도하고 부지런히 전도했습니다.
키가 크고 얼굴이 잘 생긴 젊은 전도사님은 시골교회 여신도들의 로망이 되었습니다.
전도사님은 방에다가 포도송이를 붙여놓고 한 번 방문한 집, 두 번 방문한 집, 세 번 방문한 집...표시를 하면서 부지런히 심방하고 전도했습니다. 완고했던 마을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교회가 조금씩 부흥되기 시작했습니다. 한 해 부흥회를 하니 그 마을의 모든 사람이 한번씩은 부흥회에 다 참석하는 놀라운 일도 일어났습니다.
거룩하고 훌륭한 목사님에 비해 사모님에 대해서는 사람들의 평판이 인색했습니다.
아이를 들쳐 없고 시장에서 물건값 흥정하면서 싸우는 사모님을 보고 창피했다는 사람, 사모님이 음식을 너무 밝히고, 공짜를 좋아해 어디서든지 남으면 다 싸간다는 사람, 너무 후즐그레하게 하고 다녀서 인사했다가 다른 교인들이 물으면 우리 교회 사모님이라고 대답하기가 창피하다고 하는 사람...    
 반면에 새벽마다 기도에 힘을 쏟던 몇몇 분은 사모님이 깊은 기도의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추운 겨울날 새벽기도시간에 난로 옆에 있던 종이에 불이 붙어 사람들이 기도하다 말고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지르고 불을 끈다고 난리를 피웠는데....불을 다 끄고 보니 사모님은 아무 것도 모른 채 기도를 계속하고 계셨다고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전도사님은 목사가 되고, 더 좋은 교회로 임지를 옮겼습니다.
이사를 가고 난 후에 교인들과 마을 주민들 사이에 이상한 이야기들이 나돌았습니다.
사모님이 여기저기 돈을 빌렸다고...그 액수가 적은 돈이 아니라고...퇴직금과 이런 저런 것 까지 합쳐도 다 못 갚을 정도라고...
생긴 것도 그렇고, 옷도 값싼 것을 입었고, 교회에서 성미를 주었고, 여러 가지 반찬이나 채소는 교인들이 가져다주거나 사모님이 챙겨가고, 도대체 그 돈을 어디에다 썼을까? 하고 교인들이나 마을 사람들이 모이면 수군거렸습니다. 참 이상한 일이라고...

오랜 시간 후 내가 그 교회에 갔을 때, 교인들은 그 교회에 시무하셨던 목사님 중에 그분이 제일 훌륭하시고 교회를 부흥시켰다고 수시로 이야기를 했고, 빚을 남기고 떠난 사모님은 이상한 사람이라고...목사도 교인도 정말 몰라서 모르는가? 알면서 모르는 척 하는 건가? 나는 그게 더 이상했습니다. 당시 양복 한 벌 값도 안되는 전도사님의 사례비로 거룩한 사명밖에 모르고 생활에는 무능한 목사님이 초라한 대접 받지 않도록 욕먹어가면서 희생했던 사모님의 아픔을....정말 몰랐을까?(이 내용은 약간 각색을 했음을 알려드립니다.)
 
목사님 : 사모여, 행복 하라.
사모님 : x랄, 너 같으면 행복하겠니? 

박민영(대전노회,천안교회,목사) 2012-10-14 (일) 21:40 9년전
제 심장을 찌르는, 너무도 현실적인 이야기입니다. 마지막 사모님의 말씀이 너무 가슴에 와 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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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대전노회,공주세광교회,목사) 2012-10-14 (일) 21:56 9년전
가슴이 아린 이야기입니다.
목사호봉제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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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휘(전북동노회,전주소망교회,목사) 2012-10-15 (월) 04:19 9년전
옳은 줄 알면서 하지 않는다면 이는 죄악입니다.
해야 할 줄 알면서 못한다면 이는 무능입니다.
절규하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이는 귀머거리입니다.
눈 앞의 현실을 바라보지 못한다면 소경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1서4장:7-8)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바로 무관심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함으로 하나님을 드러낸다면
우리가 하나님께 속했음을 세상이 알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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