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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아려본 아픔(김동수준목에게)

김진철 (충남노회,오순교회,목사) 2013-02-05 (화) 21:49 11년전 3885  
문제는 많은데 답이 없습니다.
늘 그랬습니다. 다시 그 말을 되풀이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나는 최근에 이문재의 <내가 만난 시와 시인>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설교가 때로는 교리처럼 감흥 없는 이야기만 나열하다가 말 때가 있습니다.
성도들의 귀를 간질이는 것들로 채워보지만 내 마음이 공허해집니다.
창조적 영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죽은 말들로 설교하는 날이 많아져서
자괴감을 느끼면서 손에 잡은 책이었습니다.
그 중에 내 마음을 찌르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시인은 몸과 마음이 분열되고, 우울함에 사로잡혀 있다가 진흙을 만지면서
치유함을 얻었습니다.
어떤 시인은 과거의 터널을 벗어나지 못해, 죽음과 구토에 시달리다가 상징체계를 연구하면서
과거의 터널을 빠져나오기도 했습니다.
어떤 시인은 사방으로 달려드는 만만찮은 인생의 적들 앞에 도망가듯 여행하다가
새로운 삶의 길로 들어서기도 했습니다.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지난 시대를 살면서 고뇌하지 않은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고통을 감내하며 살지 않은 사람도 없었습니다. 때로는 감당하기 힘든 공포와 물리력에
몸과 마음이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깨어져 버린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상처를 견디면서 살길을 찾고, 상처를 싸매면서, 희망의 언어를 만들고, 화해의 시편을 쓰고,
더러는 생의 경지를 노래했던 것입니다.
쉽게 쓰이지 않은 시들이었습니다.
성도들의 귀를 간질이는 쉬운 설교를 하려고 했던 나를 반성하게 했습니다.
김동수준목님, 당신도 한때 내게 그런 찔림을 주었습니다.

설교하는 것이 가장 위대하고 행복하다고 믿는 사람

언젠가 미국여행중이라는 당신의 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랜드 캐넌인가 어딘가라고 했습니다. 나의 신통치 못한 기억력을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영어성경을 사서 보내드릴 테니까 주소를 가르쳐달라>고 했습니다.
<여행을 하게 되어서 좋겠다>고 내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약국을 경영하는 아내 덕분에 이런 여행을 가끔씩 한다고...
그러다가 목이 멘 듯 당신이 말했습니다.
<그러면 뭐해요. 미국을 가고, 유럽을 가고, 성베드로 대성당 앞에 서 있으면 뭐해요.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은 교인들 앞에서 설교하는 것인데...그것이 더 소중해요..>
나는 그 말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세상의 어떤 좋은 구경거리를 보고, 맛있는 것을 먹는 것보다 교인들 앞에서 설교하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당신의 말이 내 마음에 전류가 되어 흐르며 충격을 주었습니다. 얼굴이 뜨거워지고 부끄러웠습니다.
내가 때로는 귀찮고 힘들다고 생각한 이 설교자의 자리가 당신에게는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행복하고 위대한 자리였다니 말입니다. 그랬기에 당신에게 목사안수는 아픔이었습니다.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치유될 수 없는 아픔이었습니다.

아들에게 멋진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사람

당신은 아들이 자랑스럽다고 했습니다. 아들 칭찬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아들 때문에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춘기에 들어섰는지 말도 잘 듣지 않고 반항을 한다고 했습니다. 공부도 잘하고, 부모님의 말에 순종하던 아이가 성적도 떨어지고, 말을 듣지 않고 화를 낸다고 마음 아파했습니다.
그것이 당신의 무능 때문이라고 자책했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무능력한 아버지를 아들이 창피하게 여긴다고, 그래서 반항하는 것이라고 괴로워했습니다. 학교에도 가지 않으려고 한다고.... 나는 그럴 리가 없다고 했습니다. 내 아이들도 힘들어하고 때로는 싸우기도 한다고, 다 그렇게들 커 간다고 했습니다. 당신은 그런 나의 말에 수긍을 하면서도
<목사님은 목사이니까 아이들이 얼마나 존경하겠어.
그런데 나는 이게 뭐야. 나도 내 아이 앞에서 목사님으로 불리고 싶고,
꿈을 설교하는 사람이 되어 아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아버지가 되고 싶어...> 

아내와 처가식구들 앞에서 사람대접을 받고 싶은 사람

당신은 기장을 무시하는 그들 앞에서 기장을 자랑하고 싶어 했지요. 특히나 당신이 존경하는 문익환 목사님이 얼마나 훌륭한 분인지를 역설했다고 말했지요.
그런 당신이니 목사안수를 받는 줄 알고 그들을 초청했다가 실망한 그들로부터 당한 수모가 얼마나 컸었던 지요. 그래서 전화통을 붙잡고 그리도 과격한 말들을 쏟아냈지요.  
..... 다른 이야기들은 덕이 되지 않으니 줄이겠습니다.

당신의 아픔을 한두 가지만 헤아려 보았습니다.
당신만큼 깊이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느낄 수는 있습니다.

이제 나는 또 답이 없는 이야기를 해야 하겠습니다.
나는 때때로 당신의 전화를 피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때는 바쁘다고 다음에 하라고 했습니다. 어느 때는 며칠 뒤에 하라고 하고는 피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때는 다시 전화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못하도록 매몰차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혹시 당신이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을까? 걱정을 하기도 했습니다. 내가 얼마나 힘들고 죽을 것 같으면 전화를 하겠습니까? 하는 말이 자꾸 마음에 걸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혹시 당신이 노회를 옮겨 우리 교회에서 전도사로 일하다가 목사안수받도록 추천해달라고 할까봐 걱정을 했습니다. 
내가 한 다리 건너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속한 노회 목사님들의 마음을 다시 헤아려 보기를 원합니다.
당신의 아픔을 알고 있으면서도 당신을 동역자로 불러서 안수 받도록 하기 위해
수고하셨던 목사님들의 사랑을 감사했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누구도 당신을 미워하지는 않습니다.
당신에게 목사안수가 소중한 만큼, 목사가 가지는 책임 또한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아픔을 딛고, 스스로 목회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으로 일어서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내가 당신을 처음 보았을 때, 당신은 노래를 불렀습니다.
목회실습을 가기 위해 구로역에 신학생들이 모였습니다. 아침 출근 시간이라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노래가 들려왔습니다.
<이 두메는 날아와 꽃이 되자하네 .... >
그 후에 우리는 더러 만나 많은 이야기들을 주고 받았습니다.
당신은 여전히 그날을 사랑하고 그리워합니다. 나 또한 그렇습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이 예전의 힘차고 건강한 모습으로 회복되어
모두의 축복 속에 목사안수 받는 날이 오기를 기도합니다.  

설령 안수를 받지 못하더라도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은 기장을 사랑해서 우는 사람입니다.
당신은 부산노회를 사랑해서 여기를 떠나 어디로 가느냐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아픔과 상처의 말들은 여기서 거두고 기도의 자리에 다시 서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김종웅(서울동노회,강동교회,장로) 2013-02-05 (화) 22:18 11년전
저는 김동수 준목님을  모르지만  가끔 이곳에 글도 올리시고 사진도 올리심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글을 올리셨는데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통 알 수 없어 궁금합니다.
 또 김진철목사님께서  쓰신 글도  내용을 알 수 없으니 선문선답 하시는것 같군요

 두분께서는 하시려는 이야기를 남이 알아듣게 말씀 하실 수는 없는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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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표(경기노회,영생고등학교 교목,목사) 2013-02-06 (수) 08:54 11년전
마음이 아픕니다. 동수형의 간절함도 노회의 생각도 이해가 가다보니...
얼마나 힘들까 생각해 봅니다.
분명한 것은 목사가 넘쳐나는 세상에,
이토록 목사가 되기 위환 과정을 이처럼 치열하게 진지하게 여기는 분과 노회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문현답이 있어야 하는데, 현문 우답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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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부산노회,구포장로교회,준목) 2013-02-06 (수) 15:10 11년전
뭘 또 남들 보라고 글을 올립니까?
제대로 된 사람들이면 충분히 이해 하고도 남을 일 일텐데
아주 엿먹이는 처사이죠...
목사가 가지는  책임(?) ...글쎄요 그게 뭘까요
지금 제대로 책임하고 있습니까?
제사장직,예언자직,그리고 왕권....
알기나 하나요
적나라게 그간의 과정을 까 뒤집고 쉽지만
아직은 아니라고 봅니 다.
기회를 주는 거죠 그리고 칼을 갈면서...
나를 알고 그당시 상황을 알면 이렇게 처치 하는 게 아니죠
그것도 한신에서,기장에서
애궂은 순진한 자만 저세상 사람이  된게 안타까울 뿐이죠
지금 이라도 정신 안차리면
역사가 변하고 나서  엄중한 심판대에 설 것입니다.
가끔 어디서 박사 받아 가지고 와서  지금도
수유리 캠퍼스에 왔다갔다 하는 자가 있는데
역사 앞에 가슴에 손을 얹고 지금 내가 어디매 서야 할까
고민 하길 바란다. 장난 아니야 만나면 확 날려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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