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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 왕이된 남자

최병학 (부산노회,남부산용호교회,목사) 2012-10-15 (월) 15:32 11년전 5823  


<주만 바라볼지라-마태복음>
 
왕으로 오신 주(9:9-10)
 
1. 다양성 찬미
 
신약성서는 3가지 기둥이 있다. 복음서의 기둥을 통해 예수님의 생애를, 서신서의 기둥을 통해 교회를, 계시록의 기둥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안내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약성서의 핵심은 예수님 잘 믿고 교회 생활 하다,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살다가 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가는 것이다.
 
그러나 복음서의 기둥으로 들어가는 문이 4가지가 있다. 그것은 각각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의 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각각 다른 예수의 모습을 전하고 있다. 왜 예수의 이야기가 각각 다를까? 다양성이야말로 진리를 보여주는 방편이기 때문이다. 초대교회에 타티안(Tatian, 120년경 출생)이라는 교부가 170년경에 <디아테싸론, Diatessaron>(문자적으로는 ‘through the four’, 곧 사복음서의 조화)라는 책을 통해 사복음서들의 자료들을 종합하여 하나의 연속된 이야기로 엮은 적이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지고 만다. 예수에 관한 하나의 획일적인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흥미를 끌지 못했기 때문이다. 곧 다양성이 진리를 더 잘 보여주는 것이다.
 
최근, 철학자 지젝(Slavoj Zizek)이 포스트모던의 다양성을 시차(parallax)’라는 천문학적인 용어로 설명하며 역동적인 공존을 이야기한바 있다. 쉽게 이야기하면, 인간이 세계를 보는 관점이 다양한데, 이러한 인간의 조건을 획일적으로 통합하는 것은 폭력이라는 것이다. 시차적 관점 그 자체를 인정해야 진리를 제대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서로 모순되는 것들이 더 큰 맥락에서는 하나의 통일적 세계관을 구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가령, 부산에서 내가 보는 금성의 위치와 시카고에서 친구가 보는 금성의 위치는 다르지만, 그 다름으로 인해 금성의 거리를 측정할 수 있는 시차, 그 다양성과 차이가 사물의 실체를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낸다는 것이다. 따라서 차이를 강조하면 할수록 진리는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근대 회화의 아버지 세잔(Paul Cézanne)의 화법이 그렇다. 세잔의 정물화는 대상(과일과 같은) 하나하나에 시점들이 들어있다. 이러한 다양한 시점들이 전체 정물화를 구성하는데 이 정물화는 시점들의 다원성 속으로 사라지지 않고,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하나의 통일적 세계로 드러난다. 4복음서의 다양성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참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2. 마태가 보는 예수
 
그렇다면 마태가 보는 예수의 모습은 무엇인가? 마태는 예수를 왕으로 보고 있다. 마태복음은 모세 5경의 구조와 마찬가지로 5가지 가르침(Didache)의 구조로 되어 있다. ‘제자됨의 자세인 산상수훈’(5-7), ‘선교, 사도직’(10), ‘하늘 나라 비유’(13), ‘교회의 훈련과 교제’(18), ‘세상의 종말’(24-25)이 그것이다. 왕으로 오시어, 가르치시고, 제자 삼으시고 세상의 종말 때 심판주로 오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본문 스가랴 선지자가 전하는 예수의 모습이 바로 그것을 예언하고 있다.
 
스가랴는 학개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선지자이다. 학개가 바벨론 1차 귀환 때 귀족 제사장 가문의 사람으로 현실적이고 열성적인 활동을 한 예언자라면, 스가랴는 성전재건보다 도덕적 개혁을 요구했던 학자풍의 이상주의자이다.
 
‘8개의 환상, 4개의 메시지, 2개의 경고로 이루어진 스가랴서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서술하고, 메시야 예언을 가장 많이 하는 구약 예언자이다. 오늘 본문은 그 가운데 왕으로 오실 메시야에 관해 놀라운 사실을 우리들에게 들려준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9:9)고 왕의 모습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그 왕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정권은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10)고 한다. 공의의 왕, 겸손의 왕, 그리고 화평의 왕의 모습을 우리들에게 들려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왕은 바로 마태에 의해 구현된 것이다.
 
3. 광해, 왕이 된 남자
 
광해군 당시 <승정원 일기>(조선왕조의 생생한 역사 기밀 기록으로, 세계 최대의 1차 자료이다)15일간 비어 있는 부분에 착안하여, 그 기간 동안 가짜 왕이 진짜 폭군 광해군 (이병헌이 12역을 맡았다) 대신 대동법을 시행하고, -청나라 간 실리외교를 시행했으며, 백성들의 고통에 공감했다는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추창민 감독, 2012)는 바로 마태의 왕으로 오신 예수의 모습을 잘 그려준다.
 
광해군은 선조 다음 왕으로 임진왜란 이후 전쟁을 뒷수습하며 궁궐 공사나 토지대장 작성, 호적을 위한 호패법 시행, 조세제도 개혁을 위한 대동법(조선조 세금부과에 있어서 그때까지의 지방 특산물을 내는 것을 폐지하고, 쌀로 대신 내며, 동시에 세금을 마을 단위로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토지의 많고 적음으로 바꿔 시행하여 대지주나 공신들에게는 불리한 제도) 시행 등 나름대로 개혁을 실시한 군주였다.
 
그러나 명분에 집착한(친명배금정책) 서인들에 의해 인조반정으로 물러나게 된다. 광해군 이후 조선은 서인들의 잘못된 외교정책으로 인해, 후날 후금의 정묘호란, 청나라의 병자호란을 겪게 된다. 광해군의 외교정책이 얼마나 시대를 앞선 것인지를 잘 보여주는 결과이다.
아무튼 영화 속 가짜 왕의 참다운 왕의 모습을 살펴본다면, 첫째, 가짜 광해군은 불쌍한 백성 시월이의 삶에 울분을 느끼는 왕이다. 산골 소작농에게 바다에서 나는 전복을 바치라하는 고을 사또, 그리하여 고리로 빌린 돈으로 세금 내다, 빚이 빚을 낳고, 전답 뺏기고 아버지는 감옥살이하다 매 맞아 죽고, 어머니와 동생은 노비로, 시월이는 참판 댁에 몸종으로 팔려나갔다가, 궁에 들어오게 되었다. 이러한 백성들의 삶에 울분을 느끼는 것이다.
 
둘째, ‘대동법을 통해 공의를 바로 세운다.’ 처음 지방특산물을 국가에 바치는 것은 좋은 뜻이었다. 그러나 종류가 많고, 마을단위로 부과하면 불평등이 생기게 된다. 이를 토지의 많고 적음으로, 쌀로 대신 바꾸어 내는 것은 백성들을 위한 개혁 조치였다. 가짜 광해 하선은 이렇게 말한다; “땅 열 마지기 가진 이에게 쌀 열섬을 받고, 한마지기 가진 이에게 쌀 한 섬 받겠다는데 그게 차별이요?”
 
셋째, 가짜 왕 하선은 명분보다는 백성을 사랑한다.’ 명나라가 금나라의 위협으로 위급하자 파병을 요청한다. 신하들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도와준 명나라에 사대의 예를 갖추기 위해 오랑캐(금나라)에 짓밟히는 한이 있어도 명나라에 대한 사대의 예를 다하자고 말한다. 가짜 왕 하선의 말이 가슴을 울린다; “그대들이 죽고 못 사는 사대의 예보다 내 백성이 열 갑절 백 갑절 더 소중하오.”
 
그러나 이런 왕은 없다. 가짜다. 현실에서 광해군은 인조반정으로 쫓겨났고, 영화에서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가짜 왕이 이상국을 향해 떠나는 장면으로 그 불가능성을 잘 보여준다. 가짜 왕의 대신이었던 허균(류승룡 분) 역시 이러한 이상국을 지향하며 <홍길동>전을 쓰게 된다. 홍길동의 활빈당과 이상국가인 율도국! 예수님은 그런 나라를 꿈꾸고, 실현하고자 이 땅에 왕으로 오신 것이다.
 
4. 왕으로 오신 주
 
왕으로 오신 주님만 바라보자. 공의의 왕으로 오신 주님!, 영화 속 가짜 광해처럼 백성의 아픔에 공감하는 공의의 왕!, 강대국 사이에 실리 외교를 펼친 광해처럼 전쟁이 없는 평화, 막힌 담을 허시는 화평의 왕으로 오신 주님만 바라보자. 그리고 겸손하여 나귀를 타고 오시는 왕인 예수만을 바라보자.

최병학(부산노회,남부산용호교회,목사) 2012-10-15 (월) 15:36 11년전
도입 부분은 오종윤 목사님의 <신약 문지방 넘기>를 참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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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학(부산노회,남부산용호교회,목사) 2012-10-15 (월) 15:38 11년전
10월 교단 달력의 주제 <주만 바라볼지어다>를 주제로 4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을 각각 '왕으로 오신 주'(마태), '종으로 오신 주'(마가), '사람으로 오신 주'(누가), '로고스로 오신 주'(요한)로 설교를 작성하려고 합니다. 여러 목사님들께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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