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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환 칼럼] 소통이 답이다!

전대환 (경북노회,한울교회,목사) 2013-02-14 (목) 17:28 11년전 2786  
 
[전대환 칼럼] 소통이 답이다!

전대환(한울교회 목사 | 구미 YMCA 이사장)

13세기 경 로마 황제 프리드리히 2세가 실험을 하나 했다. 나라마다 언어가 다른데 언어가 나뉘기 전 '자연 그대로의 언어'가 무엇인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는 갓난아기 여섯명을 한 방에 두게 하고 유모들에게 엄명을 내렸다. 먹이고 재우고 씻기되, 절대로 아기들에게 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는 사람의 본래 언어가 그리스어나 라틴어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떤 언어로든지 말을 하기 시작하는 아기가 하나도 없었을 뿐더러, 아기들은 날이 갈수록 쇠약해져서 결국은 모두 죽고 말았다(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

무모한 실험이었지만, 여기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소통이 없이 젖과 잠만으로는 아기가 자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인들도 불통 상태에서는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없다. 감옥 안에서 독방생활을 오래 한 황대권 선생의 일화는 대화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일깨워준다. 수인들이 독방을 싫어하는 것은, 거기서는 대화를 할 수 없기 때문인데, 옆방 사람과 큰소리로 대화를 하거나 간수 몰래 쪽지를 주고받는 일도 있지만, 독방은 원칙적으로 대화가 차단된 곳이다. 거기서 그는 거미 한 마리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10여분을 들여다보면서 생명의 존엄성을 새삼 느꼈다. 그밖에도 파리, 모기, 생쥐들과의 만남을 통하여 자신이 혼자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들과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또 왔어? 심심해? 그럼 나랑 놀자!" 그러면서 그는 오랜 독방생활을 이겨냈다.

불통 상태에선 건강한 삶 불가능

수도승들이 묵언수행 중에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지 않고 고요한 가운데서 명상이나 기도를 한다. 사람이 대화를 하지 않으면 마음이 피폐해지고 몸이 망가진다지만 이들의 경우에는 오히려 얼굴에서 빛이 나고 에너지가 더 충천해진다. 이들의 묵언은 생활이 아니라 수행이기 때문이다. 입으로 말은 하지 않지만 다른 수단으로 그들은 하늘과 땅과 자연과 사람과 소통하고 있다. 묵언수행은 묵언 자체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소통을 위한 훈련이다.

박근혜 당선인의 지지율이 당선 초기 60% 정도를 기록하더니 최근 50%선도 무너졌다. 여야 인사들과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그 원인으로 박 당선인의 불통 이미지를 꼽는다. 5년 전 이명박 당선인처럼 여기저기 다니면서 전봇대를 뽑게 하고 공무원들을 호통 쳐서 사소한 민원을 해결하는 식의 보여주기 행보를 하지 않는 것은 다행스러우나, 구중궁궐 안에서 장고만 거듭하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을 국민들은 안타까워한다. 박 당선인도 소통의 중요성을 모르지 않을 것이고, 그 나름대로 대책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문제는 당선인과 국민들 사이에 대화의 접점이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화의 접점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대화할 상대를 인정해야 한다. 시빗거리가 아직 있지만 지난 대선이 공정하게 치러졌다고 하더라도 국민의 절반은 박 당선인을 지지하지 않았다. 그 중 상당수는 박 당선인에 대한 거부감마저 가지고 있다. 국민의 절반을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마이 웨이' 방식을 굽히지 않는다면, 그런 가운데서 새 정부의 밝은 아침은 기대할 수 없다.

또 하나의 '반쪽'은 북한이다. 북한 역시 떼어놓고 갈 수 없는 대화의 상대이고, 언젠가는 '하나'가 되어야 할 엄연한 실체이다. 남한의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북한이 핵실험을 감행함으로써 박 당선인은 대통령이 되기도 전에 꼬인 실타래부터 풀어야 하게 생겼다.

대화상대 인정해야 접점 찾을 수 있어

서양 격언에 "상대를 웃게 하거나 울게 하는 것은 웬만하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상대를 웃게 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상대와 대화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북한을 대화의 테이블에 앉게 해서 산적한 문제들을 풀어나가는 것이야말로 대통령의 진정한 능력 아니겠는가.

신동엽 시인의 말마따나 새해 새 아침은 산 너머에서도 달력에서도 오지 않는다. "금가루를 뿌리는 새 아침은 우리들의 대화 우리의 눈빛 속에서" 열린다. 새 정부도 대통령의 교체만으로 오지 않는다. 대화 속에서, 서로간의 눈빛 속에서 열린다. 소통은 찬란한 아침을 만들지만 불통은 죽음을 낳는다.

(※2013.2.14 석간내일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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