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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공생애를 생각합니다.

홍성표 (서울북노회,예수제자,목사) 2013-03-13 (수) 21:31 11년전 2734  
 
예수님이 오신 목적을 한마디로 말하면 살리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사는 생명체는 모두가 고난과 고통을 받는다.
 
자연 환경과 기후 조건에 따라서  고통을 받기도하고
자연 재해 뿐 아니라
인간의 개발 탐욕의 결과로 빚어지는 다양한 여건을 통해서도  그런 결과를 갖는다 
로마서의 말씀처럼 만물이 신음한다.
 
그런데 인간은 대개 자연적 재해 뿐 아니라
인간 상호 간의 관계 속에서 이러한 고난과 고통을 경험한다.
고통과 고난 뿐 아니라  이유 없는 병이 들기도 하고
생명을 잃는 현상도 얼마든지 있다. 
 
그래서 개인이 병들면 개인이  병들거나 죽을 수도 있지만
역사가 병들면 역사를 사는 많은 생명이 병들고 아파하고
상처 받고 죽을 수 밖에 없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이 말은 관계적 존재임을 말한다.
 
인간이 살면서 혼자 상처 받고 혼자서 병들 수도 있으며
혼자서 죽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혼자서 병들고 죽거나 상처 받지 않는다.
대개의 경우 관계 에서 오는 폭력과 억압 중상모략  
허위사실 유포, 거짓말 거짓 재판
밖으로부터 오는 압력에 의해서 오는 결과가 거의 전부이다.
 
개인적 폭력, 조직과 집단적 폭력
그리고 의도적 죄악의 폭력 등이 여기에 해당 된다.
 
악이 크든 작든 그것은 다 악 이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악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자신과 조직은 폭력을 쉬지 않고 행 하면서
힘 없고 특정한 자에게만 선을 강요하는 것은 더 큰 죄악이다. 
 
그사람의 진가를 알려면 약자에 대한 태도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조직은 조직의 폭력으로 개인에 대한 폭력과 억압을 미화 하거나
눈 감아 질 수 있다.
 
우리는 악의 실체와 본질을 꿰뚫는 영적 분별 은사를 소유해야 한다.
민주 사회에서 조직 속의 개인의 독재와  자본의 독점, 개인의 독단은
악의 본질이다.
 
대개의 거룩의 폼을 잡는 경우에 위선이 많다,
이런자들의 악을 행하는 방법은 자신이 앞서지 않고
자신의 하수인을 내세워 자신이 하고자 하는
악을 대신 행하며 쾌감을 느낀다.
아주 비열한 수법이다.
 
그런자가 어찌 성직자냐?
그런자가 어디 목사냐?
그런 자가 어디 장로냐?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서는  상대의 인격이나
그가 당할 고통이나 상처를 고려하지 않는다.
 
아니 상대가 병들고 죽어도 아랑곳 하지 않는다.
이런 자는 용서해선 안 된다.
이런 자를 용서하거나 인내를 강요하는 것은 폭력 중에 폭력이다.
 
우리 공동체가 교권의 정치 논리로 이런 자가
활개치는 것을 눈 감아 주거나 방치 하는 것은
악을 생성하는 집단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의 자만에서 벗어나
자신이 세우지도 않은 곳에서
밥벌이를 하면서 거룩한 체 하는 위선의 탈을 벗어야 한다.
 
이런 자들을 무서워 할 이유가 전혀 없다.
우리가 두려워 할 분은 오지 하나님 한 분 뿐이다.
 
노회마다 오적 엘더가 있고
오적 목사도 있다는 소문이다.
우리가 소문을 믿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러한 소문 답게 교권에 의해서 상처 받고
아파하는 목회자가 즐비하다.
 
도대체 선배에게 혹은 교권자에게
충성이나 복종해야 목회할 수 있는 풍토가
이게 교회 공동체의 본질 인가 말이다?
 
세상 정당이나
세속의 정치에서는 우리가 상상 할 수 없는
비열하고 비 인간적인 일 이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생명을 살리고
치유하는 교회 공동체에서
이런 일이 계속 된다면 교회는
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집이 아니라
구원을 빙자한 사회 구조악을 재생산 하는
가장 위선된 사회악이다.
 
지금이 그럴 때가 아니다 .
하기야 1953년 민족상잔의 민족끼리의 전쟁이
진행 중이던 때에 한국 교회는 분열의 쓴 잔을
맛보며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으로 남아 있다.
 
더구나 역사의 발전과 진보의 케치플래이를
들고 사는 기장의 신앙 고백과 전통에서
정당하고 합법적인 경쟁이나 싸움은 있을 수 있다고 치더라도
이 것은 아니다.
 
겉으로는 용서와 사랑을 밥 먹듯이 외치면서
안으로는 더럽고 추한 교권을 지키기 위해서
창조주와 거룩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앞세워
가장 위선된 삶의 행태를 보인다면 되겠는가? 
 
우리 지금 민족의 장래를 위해서 기도해도 모자랄 판 입니다.
우리 지금 교회를 위해서 기도해도 부족한 현실 입니다.
우리 지금 가정과 자녀를 위해서 기도해도 충분치가 않습니다.
우리 지금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 부르짖어도 턱 없이 부족 합니다.
 
우리의 잘못된 추하고 더러운 교권의 껍데기를 벗어 버리고
주님의 일 감당하는 서로의 짐을 나누어 집시다.
 
사람 하고의 작은 약속 하나 지키지 못하면서 하나님과의 약속
지킨다고 거짓을 행하는 자들이
교권의 자리에 서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생명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명을 죽이고
병들게 하고 상처받게 하는 자가
노회나 총회의 교권의 자리에 서는 것을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앞으로 총회의 임원이나 노회의 밈원이 되고자 하는 자는
적어도 총회의 헌법과 노화가 만든 규칙을 지키는 자는 물론이고
교단의 신학과 신앙고백 성서적 삶을 사는 검증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누구나 허물과 약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생명을 살리는 예수님의 본을 행하는 자라야 합니다.
누구한테 받은 교권으로 동료를 죽이려 합니까?
하나님의 법을 따르지 않는 자에게 교권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이점 명심합시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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