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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심한 교단들 우린 자유로운가?

추일엽 (경기노회,수원주님의교회,목사) 2012-10-23 (화) 13:29 11년전 4999  
  멈추지 않는 교회 세습.hwp (42.5K), Down : 28, 2012-10-23 13:29:41
돈과 명예 그리고 권력
신학교 목후생시절부터 개론적인 사안
유독 교단에서 신선하고 깨끗한 성직자가 지녀야 할 품성 중
돈과 명예 그리고 권력 이 세가지는 뗄래야 뗄수 없는 아삼육
세상에서 작은 결혼식 운운하는데 우린 어떤가?
교회마다 은퇴앞두고 자신의 미래를 멋지게 준비하는 사례를 모아보면 어떨까?
우연히 지난 10월 22일 뉴스를 보다 충격적인 내용을 접했다.
그건 교회들만의 이야기가 이젠 세상 모두의 이야깃 거리가 되고 있다.
목회자 세습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닌듯하다.
사실 남의 교단만 그런가 싶지만 우린 여기서 자유로운가?
이미 세습되어 목회하는 교회는 없는가?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다.
교회를 돈 버는 수단으로 여기진 않는가?
어렵게 힘든 삶을 살면서 선배 목사님들은
성도들이 바친 고귀한 생명의 값
희생의 예물로 헌납한 땅위에 거대한 빌딩을 지어올려
부도가 나고 그나마 총회유지재단에 증여한 땅까지
법원에 소송을 걸어 되찾겠다고 이를 물고 덤벼든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의 사명을 회고하면
 
  
“제자가 되는 길”(누가복음 14:25-30)
많은 무리가 예수와 동행하였다. 예수께서 돌아서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게로 오는 사람은,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나, 아내나 자식이나, 형제나 자매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도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너희 가운데서 누가 망대를 세우려고 하면, 그것을 완성할 만한 비용이 자기에게 있는지를, 먼저 앉아서 셈하여 보아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게 하지 않아서, 기초만 놓은 채 완성하지 못하면, 보는 사람들이 그를 비웃기 시작하여, 말하기를 ‘이 사람이 짓기를 시작만 하고, 끝내지는 못하였구나
망대를 세우는 사람이나 전쟁을 준비하는 왕의 두 가지 비유(참고 잠 24:36)는 집을 지혜롭게 건축하는 것과 전쟁을 잘 수행하는 것이 함께 연결되어 지혜를 강조한다. 어떤 일을 수행할 수 있는 자원과 능력이 충분한지를 생각하지 않은 채 일을 벌이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제자가 되는 일이 건축이나 전쟁 혹은 사업이나 정치에 마음을 쓰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이 생각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임을 경고한다.
망대를 세우는 자는 그 대가와 결과를 예산해 보아야 한다. 망대를 세우고자 할 때 먼저 앉아서 그 계획을 숙고하고 거기에 들어갈 비용을 계산해 보아서 자신이 그 일을 끝내는 데 필요한 충분한 자원을 가지고 있는가? 이것을 확신하기 전에 일을 시작한다면 그는 결코 그 일을 완성하지 못할 것이며 결국 비웃음을 당하는 것을 끝을 맺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이 그분을 따르기 전에 먼저 그것에 관해 숙고하여 그가 완전한 확신을 가지기를 원하신다. 자신이 과연 그리스도를 끝까지 따를 수 있을 것인지, 그리고 망대(삶)를 세우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가졌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거짓된 고백은 하나님의 나라를 손상시키기 때문이다. 거짓된 고백은 세상으로 하여금 진정으로 믿는 자들을 위선자라고 보고 비웃고 비난하게 한다. 또한 거짓된 고백은 유망한 믿는 자로 하여금 실망을 느끼게 한다. 믿는 자들로 하여금 사역에 상처를 입고 방해받게 되며, 믿는 자들을 낙심하게 한다. 사람은 궁극적으로 대가를 치르고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 자신과 그가 가진 모든 소유를 포기해야 한다. 아니면 그는 주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 그리스도를 따를 때 치러야 하는 대가를 계산해 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두 가지에 관하여 생각하여야 한다. 첫째, 자기 자신의 전부를 희생하라! 기꺼이 예수를 삶의 중심에 모시고 세상의 모든 잃어버린 자들, 절망적 필요에 가득찬 세상을 향하여 사명을 받아들이고 전적인 헌신이 있어야 한다. 둘째,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모든 것을 버려야 제자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하면서 베드로도 예수를 따를 때 레위가 예수를 따를 때도 그들은 모두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다. 하나도 빠짐없이 그가 가진 모든 것을 기꺼이 그리스도께 드려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눅 18:18-30 “불의한 청지기”, 마 19:16-22 “부자 청년”).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따르려면 그리스도를 가족보다 우선되어야 하고, 친구보다 우선되어야 하며 그리스도께서 중심이 되어야 한다. 자기의 소유를 버려야 제자가 될 수 있다. 자기를 버리고 회생함으로써 짠 맛을 내는 소금의 비유에서 제자직의 조건은 일련의 말씀들을 매듭짓는 결론으로 제시한 본문은 궁극적으로 제자직의 조건으로서 자기 포기와 희생을 강조한다.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는 말씀에 이어 소금의 비유를 통해 소금의 짠맛이 포기와 희생의 결과임을 말하고 있다. 자신을 포기하고 희생하지 않음으로써 짠맛을 내지 못하는 소금은 결국 모든 것을 희생하거나 포기하지 못한 제자들을 뜻하여 쓸 데 없어 내버리는 수밖에 없다(밖에 버려져 사람들이 이를 짓밟게 된다).
예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부모나 처자나 형제나 자매 그리고 자기의 목숨까지라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자기의 소유까지 다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십자가로 향하는 예수를 따르는 제자의 경우에 극단적인 결단을 하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은 바로 잔치의 초정을 거부했던 사람처럼 잘못을 범하여 능히 주의 제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이젠 우리 것을 포기하고 희생하자! 그맇지 않으면 교회가 무너지고 우리의 갈 길이 멀어진다.
세상은 달라지고 바뀌는데 왜 우린 그대론가? 노회에서 총회에서 기득권을 가지고 자리다툼하며 득실계산하여
누리는 자리 빼앗길까봐 잠못이루고 교회규모를 빌미삼아 출세하려는 여타 교회목사들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벌써부터 교회일부 지도자들이 내년 총회자리 꿈꾸고 서서히 발로 뛴다. 모임마다 몸담고 눈짓하며 권력에 맛을 보고 이를 놓치지 않으려 한다. 누구에게도 뒤지거나 빼앗기지 않으려고 동분서주한다. 이젠 그만 내려놓고 낮은 자리에서 엎드리자! 선배 안요한 목사님은 "낮은 데로 임하소서"란 글과 영화로 많은 감명을 주었다.
왜 이태석 신부의 이야기만 신문지상에 나오는가! 아프리카 오지난 가난한 나라에서 이름없이 주를 위해 힘든 삶을 살아가는 선교사들이 있지 않은가? 자녀교육이나 지신의 생게가 보장되지 않는데도 개척교회 세얻어 사역하시는 동역자들이 안보이는가?
이젠 우리도 달아져야 한다.    멈추지 않는 세습? ㅏ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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