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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환 칼럼] 아버지와 딸, 그리고 10월

전대환 (경북노회,한울교회,목사) 2012-10-23 (화) 16:05 11년전 5235  
 
[전대환 칼럼] 아버지와 딸, 그리고 10월

전대환(한울교회 목사 | 구미 YMCA 이사장)

박정희와 관련된 일이 유난히 많았던 달이다. 40년 전인 1972년 10월 17일에 비상계엄 선포와 함께 이른바 유신시대가 시작되었고, 딱 7년 만인 1979년 10월 이맘때쯤에는 부마민주항쟁이 한창이었다. 그달 26일 그의 역사는 끝이 났다. '박정희' 하면 내게는 기억할 거리가 많다. 나는 그의 고향인 선산(현재의 구미시)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그가 한 번 뜨면 우리는 밤새워 태극기를 그려서 그것을 흔들며 길거리에서 환영을 했다.

박정희 전기도 여러 번 읽었다. 얼마나 존경스러웠는지 모른다. 이제 와서 고백이지만, 틈만 나면, 박정희 대통령의 얼굴을 그렸다. 당시에는 교과서마다 깔끔하게 이발을 한 박정희 대통령의 사진이 속지 맨 첫 장에 붙어 있었다. 습자지를 그 위에 얹어놓고 본을 뜬 다음 그 습자지를 흰 종이 위에 얹고 연필로 꼭꼭 눌러서 흰 종이에 자국을 낸다. 다시 습자지를 떼어내고 흰 종이의 자국 난 윤곽을 따라 연필로 그려나간다. 몇 번 그렇게 연습을 하면 이제 습자지 없이도 얼굴 윤곽을 거의 흡사하게 그려낼 수 있다. 그렇게 그린 그의 얼굴을 선생님께도 보여드리고 친구들에게도 보여주었을 때, 얼마나 많은 칭찬을 들었는지 모른다.

영웅에 대한 환상은 온 나라가 10월 유신 찬양으로 일색이 될 때까지 흔들림이 없었지만 유신헌법을 공부하면서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민주주의의 근간은 삼권분립이라고 분명히 배웠는데, 유신헌법은 그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 있었던 것이다. 그때까지도 그러려니 했다.

친일파에서 남로당 간부, 반공주의자로

그러나 청년이 돼서, 위대한 민족 지도자 박정희가, 만주 군관학교 일본인 교수의 말마따나 '일본인보다 더 일본인다운' 다카키 마사오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알았을 때, 얼마나 허탈했는지 모른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교사로 있다가 일본군 장교가 되었고, 해방이 되어 사회주의가 주류인 세상이 되니까 남로당 간부가 된다. 공산주의자가 된 것이다. 그 후 미국군정이 실권을 잡으니까, 남로당 간부로서 사형 언도까지 받았던 몸이었지만 어찌어찌 풀려나서 대한민국 장교가 된다. 친일파에서 공산주의자로, 반공주의자로 변신에 성공한 것이다.

박정희가 이런 사람이었다니! 통제된 언론과 출판물을 통해 본 그는 영웅이었지만, 역사적인 사실을 알게 된 뒤부터 내게 그는 파렴치한 독재자일 뿐이었다. 경제성장? 여기에도 문제가 많지만 백보 양보해서 그가 경제성장에 일조를 했다고 치더라도, 경쟁자들 손발 다 묶어놓고 혼자 달려서 일등 한 꼴에 다름 아니다. 우리집이 가난하더라도 내 아버지가 좋지, 우리집 잘 살게 해주겠다고 침입한 강도를 아버지로 인정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듯이, 이런 이유로 그는 적어도 내 개인의 마음에서는 대통령이 아니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33년이 되는 올해 10월, 그의 딸이 여당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되어 있다. 아버지가 포도를 먹었다고 딸의 이가 시리면 안 되니까 거기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다. 아버지 때문에 박근혜 후보가 불이익을 당한다면 도시락 싸 들고 다니면서라도 막아줄 용의도 있다. 문제는 박 후보 본인이다. 얼마 전 아버지가 저지른 일에 대해서 헌법정신을 '훼손'한 것이라며 대신 사과를 했다.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 그런데 그때 그는 '인혁당'을 '민혁당'이라고 읽었다. 보좌진이 그렇게 원고를 써주었다고 해도 그 자신이 즉석에서라도 바로잡아서 제대로 읽었어야 했다. 결론은 그가 '인혁당 사건'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 저지른 일에 대해 모르는 딸

엊그제는 정수장학회에 대해서 해명 기자회견을 하면서 그것은 아버지가 강탈한 것이 아니라고 내리 주장하다가 측근의 쪽지를 받고서야 다시 단상으로 나와서 말을 바꿨다. 이미 국정원과 법원에서 '강탈'이라고 적시했던 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얘기다. 이런 일련의 일들을 보면 그는 아버지가 저지른 일에 대해서 정말 아무 것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그래, 아버지에 대해서는 몰라도 좋다. 그러나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헌법정신을 '훼손'한 것이 아니라 헌법 자체를 '파괴'한 독재자의 만행을 모르고 있다면 그는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 대통령 후보로서는 자격이 없다. 새누리당이 이 나라를 이끌 건강한 정당이 되고 싶다면 후보교체까지도 고려해봐야 할 시점이다.

(※2012.10.23 석간내일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이상호(대전노회,공주세광교회,목사) 2012-10-23 (화) 21:26 11년전
역시 체험을 바탕으로 한 날카로운 글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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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환(경북노회,한울교회,목사) 2012-10-24 (수) 00:09 11년전
이상호 목사님, 늘 격려해주시고 좋은 평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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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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