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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와 역사의 암적 존재

홍성표 (서울북노회,예수제자,목사) 2013-04-22 (월) 12:18 10년전 2503  
성경을 통하여 알 수 있는 한 가지는
악과 선이 함께 존재하고
악령과 성령이 함께 존재하며
어둠과 빛이 공존하며
밤과 낮 이 있으며
생명과 죽음의 세력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원론적이거나 이분법적 사고가 아니라
현실이다.
 
생명의 세력은 성령에게 속하여 있고
죽음의 세력은 악의 세력에게 속하여 있다.
 
조지 부시가 대통령 시절
이란과 이라크와 북한을 세계 3대 "악의 축"이라
강력하게 주장한 바 있다.
 
부시 관점에서는 이미 핵을 가지고 있는 강대국
미국은 선한 세력이고
핵을 보유하려하거나
살상 무기를 가지려하는 자는 악의 축인 것이다.
 
부시는 자국 내의  전쟁 반대 세력에도 불구하고
유엔의 전쟁 반대에도 불구하고
악의 세력이라고 생각하는 이라크를
단 며칠 동안에 스타 전쟁을 통하여 초토화 시키고
처음에는 지지했던 후세인을 끝까지 추적하여
제거하였다.
 
적어도 글로벌 세계를 사는 나라들은
미국의 눈치를 살피고 살아야 한다.
 
잘못 보이면 악의 세력으로 규정 되고
한 순간에 나라의 심장부가
초토화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 경찰 국가를 지속하려면
엄청난 국방비를 지출해야 한다.
그 국방비 충당의 먹잇감의 첫 번째가
한반도이다.
 
이유야 어떻든
한반도 전후 60 여년이 다 되도록
미군은 한반도 점령 세력으로
주둔하고 있다.
 
분단을 사는 우리는
아무 주권도 없이 
어떤 명목으로든 이 구방비 충당를 충실히 해야 한다.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과 일본
그리고 한반도 분단 상황을 교묘히 악용하는
미국의 세계 전략에 의해서 우리는 항상 좋은
먹잇감이다.
 
이에 중국도  북한의 우방을 자처하며 역사 왜곡을
즐기며 동방 정공의 전략을 쓴다.
미국을 견제하는 일환으로 북한을 악용하는 것이다.
 
남북한 정권은 분단의 상황에서
미중 러일의 좋은 먹잇감이다.
 
항상 강대국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
그래서 이 사회가 눈치 문화가 발달 되어 있다.
 
병자호란과 임진 왜란 등 1000 여번의 외침을
살다보니 생존 자체가 우선이다.
거기에 정의 같은 더 높은 가치를 따질 겨를이 없는 것이다.
 
살기 위하여 몸을 낮추고
힘 있는 권력에게 붙어 아부와 아첨을 떨어야 한다.
할 말이 있어도 가슴에 담고살아야 한다.
 
그래서 과거 우리의 어머니 들이
가슴앓이 속병을 지독하게 앓고 살았다.
 
역사는 힘 있는 자의 역사이다.
민중은 언제나 주변부로 밀려나 소외 되고
멸시와 천대의 대상이다.
 
이용당하고
쓸모없으면 버려진다.
알면서도 속고 모르고 속으면서
한 세상 운명처럼 살아간다.
 
민중이 의지 할 것음 하늘이다.
하늘이 임하면 민중은
그때서야 하늘의 능력을 발휘한다.
 
하늘이 없으면 민중의 삶은
비참 바로 그것이다.
 
강대국들의 먹이 투쟁의 틈바구니에서
국운이 바람 앞의 등불처럼
상한 갈대가 되어 꺼져 갈 때
 
이 민족의 민중 속에
하늘이 임하였다.
 
을사 늑약과
강제 한일 합방의 국권을 상실한 채로
생명의 등불이 꺼져버렸을 때
그 일제의 잔혹함 속에서도
민중들은 오직 하늘의 힘에 의지하여
나라를 되찾는 저항과 싸움을 계속 하였다.
 
오늘날 중소 기업은 대기업에게 감히 저항할
기력이 없다. 즉이면 그냥 죽을 수 밖에 없다.
 
성장 가도의 대 교회들이
공금 황령 등으로 지면과 미디어를 장식한다.
세습을 합리화 하며 정당성을 주장한다.
 
성공 신화가 교회 목회의 중심에 서서
운리나 도덕 정의등의 가치는
오랫 동안 묻혀 오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을 비판하는
세력들의 대안은 무엇인가?
 
모두가 각자 살기 바쁘고
모두가 자기 할일도 버거운 인생 살이이다.
 
자기와 자기 가정 지키기도 힘든 세상에
타인의 일을 자기 일처럼 하는 자가 성자다.
 
잘못하는 정치나 다른 영역들만 꼬집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속한 조직이 준비하지 못하여
기둥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어보라, 아닌가?
 
그저 자리 차지 하고
세월보내고
대안도 준비도 아이디어도 없이
수많은 세월을 허송세월 보내듯
중책을 맡아왔는가?
 
교권의 선두에 서서 있었으면
교단과 학교가 처한 미래의 위치를
예견하고 깊은 성찰과 기도를 통하여
심도 있는 연구를 통하여 위기가 올 때를 대비하는
중장단기의 기획과 계획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노회와 총회의 썩은 암적 존재들의 교권에 휘둘리어
교단과 학교의 미래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없이
남은 재산에만 의존하고 견뎌보려는 발상은
이러한 행태는 생명의 정신으로 사는 일은 아니라고 본다.
 
몸 집을 불리는 것을 목표로 삼지 말고
한 과라도 사명의식과 소명의식을 갖고
제대로 해 보려는 기도가 필요하다.
 
무의도식 밥벌이를 하려고만 하지말고
창조적인 생각과
창조적인 아이디어 기도를 하면서 말이다.
 
민주화  통일은 거대 담론이고
미시적 관점을 하나씩 실천하여
그것에 이르는 구체적이고 미래지향적이며
생산적 실천이 절실히 필요하다.
 
침묵은 절대 사랑도 아니고 정의도 아니다.
그렇다고 입만 여는 것이 정의도 사랑도 아니다.
 
혼자만의 자만과 이기적 삶을 버리고
이 공동체와 역사가 함께 사는 길을 가며
닫힌 문을 열어야 한다. 
 
자기 유익을 위하여
예수를 상품화 하고
욕 되게 하는 낡은 옷을 벗어버리고
 
과거의 썩고 암적인 노회와
총회의 암적 존재들을 제거하고
새 역사를 준비해야 한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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