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 ::
 
 
 

 

이 사회의 갑의 폭력과 을의 존재

홍성표 (서울북노회,예수제자,목사) 2013-05-07 (화) 21:29 10년전 3041  
근자에 사회의 각 분야에서
힘 있는 자의 갑들에 대한 폭력이
크게 이슈화 되어 있다.
 
대기업 갑의 중소기업에 대한 폭력
상사의 갑의 위치에서 부하 직원들 을에 대한 폭력
직장에서 갑을의 폭력이 먹이 사슬처럼
큰 힘으로부터의 폭력이 아래로 가해지는 현상이 크게
이슈화 되고 있다.
 
정치 경제 문화 사회 교육의 현장에서  뿐 아니라
섬김과 사랑이 입으로 강조 되는 교회 공동체에서
노회에서 총회에서 교묘히 교권의 갑으로 하여금
교권이 없는 을로의 말 할 수 없는 폭력이 성행 하고 있다.
 
학교의 선배라는 입장으로
나이로
 
그렇게 교권을 가진 값의 폭력이
섬김과 사랑의 보루라고 하는
타락한 종교 집단에서 횡행하고 있다.
 
왜? 여기에 침묵하고 있는가?
체면인가?
밥 그릇 때문인가?
 
비굴하다.
정말 비굴하다.
겸손을 주장하면서
자기보존에 굴복한다.
 
정말 교회가
종교 집단이 가장 보수적이다.
가장 근본적이다
가장 후진적 태도를 고집한다.
 
원과 부 교역자의 갑을도 청산 되고
진정한 " 나와 너"의 관계를 이루며 살아야할 때 이다.
진정한 민주
진정한 사랑
진정한 겸손
진정한 발전(진보란 말 대신)이 실천 되어야 한다.
 
서로 인정하고
서로 존경하고
서로 사랑하며
공존의 발전을 모색해야 한다.
 
교회공동체가 상실한 리더쉽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거짓을 버리고
주님의 거룩하고 합당한
우리로 돌아와야 한다.
 
지금은 신분으로 사는 시대도 아니다
지금은 상하의 무조건적 명령과 하달의
시대도 아니다.
 
물론 군대와 경찰
그리고 상하의 계급이 있어야할
특수 사회와 조직에서는 이 것이 분명히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특수 사회나 조직이라 할지라도
무조건적 강압과 폭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서로의 인격 " 나와너" 의 관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가운데서
위는 아래를 사랑하고
아래는 위를 존중하는 사회 풍토가
이루어져야 한다. 서로의 인격을 인정하는 태도 말이다.
 
1 %의 갑이 지배하고 억압하며
폭력을 행하는 것이
아무런 제제 없이 통용 되는 세상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귀히 여기고  인정하는 상호 존중의 세상
 
창조주도 피조물을 인정하고 사랑한다.
아니 하나님이 죄인을 위하여
하늘에서 땅으로 오시고
죄인의 구원을 위하여 생명을 바치지 않으셨는가?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우리는 부름을 받았다.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히 여기라는 복음 말이다.
 
그런데 우리의 공동체에서
교권으로 한 사람을 무지비하게 죽이는
갑의 폭력이 현실로 존재한다면
하늘이 이것을 용납하시겠는가?
 
이런 일이 우리의 공동체에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우리는 서로 살리는 일을 위하여 존재의 가치가 있다.
서로를 도와 주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일
서로를 진심을 담아 섬기는 일을 위하여 존재한다.
 
우리가 이 일을 실천하면서
세상을 향해서도 그것을 권면해야 한다.
 
한 사람
한생명을 가벼이 여기는 자는
모든 자를 가벼이 여기는 자다.
 
한 생명
한 사람을 귀히 여기는 자는
모든 자를 귀히 여기는 자이다.
 
갑과 을이 공존하는 법을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
갑이 을을 죽이려 한다면
갑의 존재도 온전을 보장 받지 못한다.
 
서로가 함께 사는 법을
배우려 하지 않고
을의 존재를 무시한다면
갑의 존재도 반드시 무시 당할 것이다.
 
조금 나은 사람과 못한 사람
능력이 있는 자와 못 한자 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과 하나님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다.
 
인간이 판단하고 평가하는 가치와
하나님이 생각하는 가치 평가의 기준은
전혀 다른 것이다. 
 
우리가 문제 삼는 것은 진실과
거짓을 뒤바꿔 놓는 것이다.
 
거룩을 빙자한
세속적 사기를 행하는 것이다.
 
우리는 잘못은 솔직히 인정하고
반성과 회개를 할 일이며
진정한 회개가 입증 되면 용서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것은
교만과 거짓이다.
 
자신의 유익을 쫓아
머리와 꼬리가 다르고
속과 겉이 다르며
 
한 사건 한 사안에 대하여
일관성이 없는 사람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우리는 정치적 존재요
사회적 존재이다.
그러므로  정치(관계)를 하며 사는 것
자체를 나무랄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정치는 바르고 옳은 이치를
따라가야 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거룩하고
합당한 이치 말이다.
그것은 생명을 살리는 일이다.
 
지혜로운 갑은  나누고 베푸는 자이다.
어리석은 갑은 을을 무시하고
억압하며 그에게 폭력을 가하는 자이다.
 
칼은 칼로 망한다.
폭력은 폭력을 부른다.
 
안중근 의사는 가난해도
아부와 아첨을 해서는 안된다 하였다.
폭력의 갑이 바르게 사는 길 하나는
그의 잘못을 깨닫게 하는 자각된 민중이 있어야 한다.
 
우리의 삶의 힘은 하나님이시다,
그 분만이 우리를 끝까지 지키시고
변호하신다. 어둠과 감의 폭력을 두려워마라
 
두려운 분 은 오직 하나님 이시다.
우리를 지키시는 이
우리를 살리고 건지시는 이
우리의 피난처
우리의피할 바위
우리의 방패 우리의 힘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주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과
부활의 능력으로 지키신다.

hi
이전글  다음글  목록 글쓰기

츲ҺڻȰ ⵵ ȸ ѱ⵶ȸȸȸ ()ظ ѽŴѵȸ μȸڿȸ ȸ б ѽŴб ûȸȸ ŵȸ ŵȸ ȸÿ ѱ⵶ȸȸͽ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