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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의 정치코드>

최병학 (부산노회,남부산용호교회,목사) 2012-10-31 (수) 09:24 11년전 5335  


<주만 바라볼지라Ⅳ-요한복음>
성자로 오신 주(사4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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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극의 정치코드
 
사극 드라마, 영화가 인기가 있다. 사극의 형태를 빌려 현실정치의 코드를 풀어내는 영화나 드라마는 늘 시청자의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이러한 사극 드라마와 영화의 인기는 기본적인 재미에 더해 영화 내용에 당대 대중의 욕망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극 작품 속에서는 현실 정치의 사례를 풍자하고 그것을 간접적인 코드로 녹여낸 사례가 많다. 따라서 사극에는 시대별로 늘 큰 흐름이 있다(이하, 이털남 198회 문화평론가 하재근, <영화·사극 속의 정치코드 분석>참조).
 
1980년대까지는 권력을 잡기 위한 암투와 치정이 사극의 주된 내용이었다. 힘센 자가 권력을 잡고 그렇지 못하면 당연히 죽게 되는 구조를 그려, 당시 군부 권력의 쿠데타 등을 정당화 하였다. 이후에는 변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말 유행했던 <용의 눈물>(1996~1998)이라는 사극은 그 당시 난립하던 수많은 대권을 잡으려는 잠룡을 빗댄 작품이었으며 2000년대에는 권위주의가 어느 정도 타파되면서 사극을 통해서 국민의 정치적 열망이 드러나게 되었다.
 
<왕건>(2000~2002)이라는 드라마는 김대중 정부 시절 지역감정 회복이라는 주제를, 노무현 정권 때는 정조 왕과 이순신 장군이 박정희 시대(그때 전국 초등학교에 이순신 장군이 세워졌다. 장군의 이미지와 자신을 결합하려는 의도였다)와는 다르게 역설적으로 부각되었다.
 
가령, <불멸의 이순신>(2004~2005)이라는 작품은 여소야대로 정책 추진을 제대로 이뤄내지 못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했고, 강력한 개혁 군주 정조의 이야기를 담은 <이산>(2007~2008)이라는 작품은 노무현 정권 말기부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기까지 엄청난 인기를 얻었는데, 당시 국민이 보기에 노무현 대통령이 거대 야당인 한나라당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고 있으니 연약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강력한 개혁 군주였던 정조의 모습은 그의 비극적인 운명과 함께 노무현과 오버랩 되었고, 대중은 강력한 CEO대통령을 갈구했다.
 
따라서 직선제 도입 이후 사상 최대 득표차로 당선된, 강력한 실용주의적 지도자 이미지의 이명박 대통령의 등장은 사극의 판단이 옳았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시간이 지날수록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고, 지지율은 바닥을 쳤다. 강력한 지도자인 이명박 대통령이 우리 고통을 씻어주겠거니 했는데, 대중은 국민과 소통하지 않고 친분 있는 인사들과의, 소위 ‘고소영’(고대, 소망교회, 영남인사)이라는 편협한 인사, 일방적인 정책운영에 실망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에서는 세종대왕이 강력하게 조명됐다. 백성의 삶을 억압하지 않고 잘 어루만져 주는 온건한 관리자의 상이 화제가 된 것이다. 이것은 웰빙(wellbeing)이 아니라, 힐링(healing)으로 시대적인 화두가 바뀐 것을 잘 보여준다. 2007년 유행어였던 웰빙, 이제 5년이 지난 2012년, 힐링으로 바뀌었다. 웰빙이 더 잘 살기 위한 ‘대중의 욕망’이라면, 그래서 부도덕적이지만 ‘잘살게 해주겠다’는 이명박 정권을 지지했다면, 이제 힐링은 더 잘 살고 싶기는커녕 받은 상처라도 치료하고 싶어 하는 대중의 무의식이다.
 
현 이명박 정권으로 인한 ‘강과 산과 들과 사람과 종교와 문화들’의 상처를 치료받고 싶어 하는 무의식! 대중은 ‘웰빙의 이명박’에서 ‘힐링의 멘토’를 찾고 있다. 강력한 군주보다 성자를 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당시에는 <대왕 세종>(2008), <뿌리 깊은 나무>(2011) 등 세종대왕을 주인공으로 한 사극이 인기를 끌었다.
 
이명박 정부 시기의 사극에서 반드시 나타나는 코드는 바로 ‘토론’이다. 가령 <선덕여왕>(2009)의 미실과 덕만도, <뿌리 깊은 나무>의 밀본의 수장과 세종도 꼭 토론을 하면서 소통의 코드가 등장 한다. 소통을 통해 국정을 해나가는 지도자 상이 인기를 끌었던 것이 당시 이명박 정부의 불통이미지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최근에는 대선을 앞두고, 사극들에 나타나는 지도자들은 자신을 세일즈 하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신의>(2012)라는 작품을 보면 최영 장군과 신진 사대부들조차 공민왕에게 “내가 왜 당신 신하여야 하는지”를 묻는다. 그러면서 대화를 통해 설득당하여 왕의 편이 하나둘씩 늘어난다. 작품 안에서 지도자가 되어야 하는 정당성을 설명하는 과정이 동반되는 것이 요즘 사극에서 유행하는 양상이다.
 
또한 <대풍수>(2012)는 조선의 태조 이성계를 우스꽝스럽고 즉흥적이고 가벼운 성격이지만, 호탕하고 의리가 있어, 자신을 지지하는 현자들의 말을 듣고, 지도자로서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위화도 회군을 결심하는 이로 그리려 하고 있다.
 
결국 대부분 사극은 영웅들 이야기이고, 국가를 다스리는 이야기이니 리더십의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사극을 통해서 국민들이 원하는 리더십의 방향, 지도자의 상이 자연스럽게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2. 성자로 오신 주
 
오늘 본문의 이사야 40장 9-11절 말씀은 성자로 오신 예수님의 모습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하라(9).”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10-11).”
 
이사야는 민족의 회복을 이야기하는 예언에서 하나님을 보라고 말하며 메시아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 메시아는 ‘강한자’이다. 친히 팔로 다스리는 메시아! 상급과 보응이 그 앞에 있는 메시아의 모습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러한 강한자는 목자와 같다고 말한다. 목자와 같이 양 떼를 먹이시고, 어린 양을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는 모습이다. 이것은 성자의 모습이다. 사극의 세일즈의 양상이며 대화와 설득을 통해 리더십을 확보하는 것이다. 마태복음에서 왕으로 오신 예수가, 마가복음에서는 종으로 오신 예수로, 누가복음에서는 사람으로 오신 예수가 이제 요한복음에서는 목자와 같은 성자의 모습으로 인간들에게 찾아오신 것이다.
 
3. 요한이 전하는 예수, 믿어서 구원받는 것
 
요한복음이 전하는 예수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3:16-17)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20:31)에 잘 나와 있다. 따라서 요한복음의 주제는 두 가지, 첫째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둘째 ‘예수를 믿어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이다.
 
요한복음의 저자인 요한공동체는 당시 로마제국의 ‘신-왕 일치’ 사상에 ‘신-왕 예수’에 대한 깨달음과 믿음이야말로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이해라고 생각하였다. 로마 제국이 자신들의 황제를 신이며 왕으로 숭배하였다면 유대인들은 신으로는 야훼 하나님을, 왕으로는 로마 황제를 지지하였다.
 
그러나 요한공동체는 자신들의 신앙의 대상인 예수를 신이며 왕으로 고백하였다. 로마 제국의 신-왕 일치 사상이 제국의 통일성을 확보하기 위한 식민 통치 이념의 일환이었다면, 요한공동체의 신-왕 일치 사상과는 갈등의 관계였다. 로마 제국에 대한 저항적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영생은 제국 로마가 주는 것이 아니다. 오직 예수를 믿는 이들에게 하나님은 영생을 허락하는 것이다.
 
따라서 당시 로마 당국이 각 민족의 고유한 종교적 전통을 인정하여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날마다 ‘황제를 위해’ 제사를 드림으로써 ‘황제에 대한’ 제사를 피하며 종교적인 기득권을 누릴 수 있었지만, 로마가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를 구분하면서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함으로 유대교 회당에서 추방당해야 했던 것이다.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Wittenberg) 궁성교회(Schlosskirche)의 대문에 붙은 95개 논제로 촉발된 종교개혁의 정신은 ‘이명박근혜 정권(과 그를 지지하는 맘몬 기독교)’을 부정함으로, 따라서 기존 교회에서 추방당하는 것이 아닐까? 오늘도 교회는 개혁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따라서 요한복음은 유대교(회당)와 세상(로마제국)에 대해 적대적이다. 가령, 요한복음에서 현저하게 사용되고 있는 ‘영광’이나 ‘은혜’, ‘진리’, ‘길’, ‘이름’, ‘자유(롭게 하다)’, ‘생명’과 같은 단어들은 로마 황제를 표상하였다. 요한복음서는 이러한 용어들을 비교급이나 최상급으로 사용하여(‘은혜와 진리가 충만’, 1:14, ‘은혜 위의 은혜’, 1:16, ‘참으로 자유롭게 하다’, 8:36 등) 황제보다 비교 우위로 로마에 대한 저항 의지를 우회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거짓된 세상 제국과의 대결, 거짓된 종교를 벗어나 참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만 진정한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성자 예수의 놀라운 발견이다.
 
4. 슈스케4, 악마의 편집도 안 통하는 권태로움
 
<슈퍼스타케이>는 가장 잘나가는 방송 콘텐츠 중 하나였다. 시즌1에서는 잠재력을 보여주었고, 시즌2에서는 전국민의 관심사가 되어 대국민 문자 투표가 인기를 끌었다. 오디션 공화국으로 우리 사회를 만들어 버린 <슈스케>를 기점으로 유사 프로그램이 양산되었다.
 
그러나 시즌4에서는 첫째, 편집이 맥빠진다고 한다. 한때 악마의 편집이라고 해서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그 악마도 자꾸 보다 보니 한편으로는 물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속이 보인다는 지적이다. 한마디로 패턴이 노출되었다는 것이다. 둘째, 참가자들의 실력이 예전만 못하다고 한다. 대신 시즌3의 ‘울랄라세션’처럼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다. 암 투병 중인 어머니가 깜짝 등장하기도 하고, 많은 참가자들이 병이 있었지만 잘 극복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노래로 승부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다.
 
교회도 그렇다. 안주하면 권태롭고 타락한다. 끊임없이 기존 틀에 안주하지 않고 예수에게서 희망과 영생을 발견한 요한공동체처럼 종교개혁기념주일을 맞아 우리들도 예수에게서 끊임없이 변화와 개혁의 음성을 들어야 할 것이다. 성자로 오신 예수를 바라보자.

김동수(부산노회,구포장로교회,준목) 2012-10-31 (수) 20:02 11년전
아니 ! 웬 설교문을 작성해서 올렸습니까?
여기는 기장 게시판 입니다.
소식news을 전하거니 자신의 생각과 입장을 말하는
곳입니다.  설교를 다들 하는데
설교문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올릴 이유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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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정(부산노회,장산충일교회,목사) 2012-10-31 (수) 20:56 11년전
김동수준목님!
기장 게시판에 대한 이해는 서로 다르겠지만
제가 알고 있는 것은 기장 게시판에 설교문을 올리지 말라는 규정없다는 것입니다.
김동수준목님이 보신 것처럼 최병학목사님께서 자랑으로 설교문을 올리셨다 하더라도(물론 저는 자랑으로 올리지 않으셨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글을 보면서 제가 느끼지 못한 점을 알게 되어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혹시 최병학목사님께서 김동수준목님의 글을 보고 마음 상하여 더 이상 글을 올리지 않으실까 걱정됩니다.
조금 마음이 불편하시더라도 참아 주셔서 이 글을 감사하게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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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부산노회,구포장로교회,준목) 2012-10-31 (수) 21:11 11년전
목사,준목,전도사는 계급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준목이 목사 아래도 아니죠.
그럼 평소에도 반말투 비슷하게  말하다가
오늘은 호칭도 잘도 붙이는군요.
말투 조심하시고요.항상 듣기 거북합니다.
그리고 기장게시판에서 설교문을 올린 것에 대한
저의 입장을  말했을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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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정(부산노회,장산충일교회,목사) 2012-10-31 (수) 22:46 11년전
김동수준목님.
그렇습니까?
목사와 준목과 전도사라는 직분이 계급은 아니지만 총회헌법이 부여해 주는 역할은 다르니 구분해서 호칭합니다.
평소에 반말투로 하는 것은 김동수준목님이 저에게 먼저 형님이라고 했으니 동생으로 세상 예법에 맞게 반말투로 말하는 것이구요.
여기는 게시판이니 게시판 예의에 맞게 호칭을 붙히는 것입니다.
평상시 반말투가 듣기 거북하면 게시판 말고 오프라인에게 만나게 되었을 때 거북하다고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게시판이기에 게시판에 맞는 예절의 글을 쓴 것뿐이니 게시판에 맞는 예절로 글을 써 주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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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부산노회,구포장로교회,준목) 2012-10-31 (수) 22:59 11년전
형님 이라뇨?
누가 누구의 형이란 말씀 인가요.
아니 진정 형이라면 동생이 안수건 때문에
피눈물 나고 피칼을 물고 있을때 손 한번 내밀었나요?
말 함부로 하지 마십시요.
형,동생 휑휑한 소리 입니다.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는데
옆에서 즐기듯이 말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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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정(부산노회,장산충일교회,목사) 2012-11-01 (목) 00:58 11년전
김동수준목님!
도와달라고 부탁할 때 한 말이니 마음이 바뀐 후에는 기억이 나지 않는 것 같군요.  어쩔 수 없지요.
그리고 목사 안수건이라.....
모르는 분들은 아마 궁금해서 부산노회원들에게 물어보는 분들도 계시겠네요.
그리고 어떤 분들은 지금코멘트의 글을 보고 판단하시는 분들도 계시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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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학(부산노회,남부산용호교회,목사) 2012-11-01 (목) 07:52 11년전
죄송합니다. 인터넷 신문 <에큐메니안>에 4편으로 연재한 글이라 올렸습니다. 앞으로는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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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규(경기노회,총회본부 국내선교부 부장,목사) 2012-11-01 (목) 11:26 11년전
김동수준목,
댓글을 읽다가 어쩔 수 없이  한 마디 해야 하겠다 싶어서 쓰네.
보아하니 김준목은 나에게만 이런 막가는 식으로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오.

자신의 안수문제로 "도와달라"고 나에게 수 차례 전화를 했지.
그래서 자네의 안수문제를 위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선배님들을 말해주었고,
그 분들을 만나면 '이렇게저렇게' 하면 도움이 될거란 말도 했지.
그러던 중 "내가 목회하는 교회를 조직 교회로 하고, 부목사로 청빙할테니 와서 나를 돕다가
다시 부산노회로 전출(전입)하는게 어떠냐?"고까지 방안을 말하기도 했네.

그런 수차례 통화 중 결국에는 마지막 통화가 되고 말았는데---
어느 날 또 전화를 했기에 자네가 하는 이런저런 얘기를 듣다가
김준목의 안수문제와 관련되어 지역의 선후배 목회자들과의 관계를 잘 하라고 하면서
김준목에 관해서 들려오는 몇 가지 말을 하니 듣기 불편했는지 그 때 자네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하나?

"--- 알았으니 전화 끊어요. 이제 그만 끊어요, 전화 끊어요----"

그 때 내가 뭐라 했는지도 기억하나?!
"내가 자네에게 전화한 것도 아니고,
자네가 나에게 전화해서 이런저런 말을 하기에 내가 말하는 데 '이제 그만 전화 끊으라'고?
듣기 싫어도 그냥 들어! 끊으려면 자네가 전화를 걸었으니 자네가 끊어!
선배가 자네에게 전화를 하던 중에 끊으라고 해도 실례인 데 어디 감히 후배가 선배에게 전화를 끊으라고 그래?
네가지(!) 없이!! 자네는 이런 태도 때문에---"

난 지금도 그 때, 그 일을 잊을 수가 없네!
그런데 보아하니---- 나에게도 선배님이신 이목사님께도 그러네?!
기가막히네!!

이게 자네가 존재하고, 살아가는 방식(?)인가?
이게 자네가 늘 말하는 "혁명"인가??

덧붙임 : 최목사님, 올리시는 글을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다음 글을 기다리겠습니다.
            그동안 게시판에 많은 설교문들이 게시되었었는데 그 때는 아무소리 않다가
            최목사님의 글에 반짝 반응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지역에서의 감정이 흠뻑배어 있는 듯 싶습니다.
            하오니 지역에서 해결하시고요!
주소
김동수(부산노회,구포장로교회,준목) 2012-11-01 (목) 12:57 11년전
지금 마녀사냥 하십니까?
기장게시판 답게 필요한 소식 올리자는데 왜들 그러시나요.
설교문 올리는데는 다른곳에 있지 않습니까? -말씀과우리-
그리고 갑자기 서글퍼 집니다.
무슨 전화내용까지 댓글에 올리고 게시판에서 선후배 군기 잡자는 겁니까?
통화가 길어져서 나중에 하고 끊자고 했는걸 가지고 왜 그러십니까?
그게 막가는 겁니까?
지금 감정으로 대하자는 겁니까?
주소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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