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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환 칼럼] 갑과 을

전대환 (경북노회,한울교회,목사) 2013-05-15 (수) 17:57 10년전 3455  
 
[전대환 칼럼] 갑과 을

전대환(한울교회 목사 | 구미 YMCA 이사장)

이른바 윤창중 스캔들 이후 일각에서 그를 옹호하려는 움직임이 잠시 보이더니 이제는 그런 작은 기류마저 쑥 들어갔다. '청와대에서 윤창중을 버렸다'는 감이 잡혀서일까. 윤창중에 대한 뒷얘기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진다. 여야 정치권에서도 오랜만에 한목소리가 나온다. 언론들은 성향을 가리지 않고 앞다투어 그동안의 윤창중의 기행(奇行)을 보도한다.

미국 현지에서 사용할 차량을 수석급 의전용으로 바꾸어달라고 강하게 요청하는가 하면, 숙소도 기자단이 머무는 호텔이 아니라 대통령이 머무는 곳으로 바꾸어달라고 했다는 등,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는 식의 기사들이 넘쳐난다. 당당하던 그에게 의외의 행적이 있었다. 성추행 또는 성폭행 혐의를 사던 날, 대통령과 수행경제사절단의 조찬 자리에서 그가 대기업 총수들에게 90도로 허리를 꺾어 일일이 인사를 하는 장면이 기자들의 카메라에 담겼다.

이 모습에서 그의 대인관계 방식이 짐작된다. 갑ㆍ을 관계를 설정하고 자신의 마음과 몸을 거기에 철저히 순응시킨다는 것이다. 그가 그 나이가 되도록 겪었을 인생여정이나 사건 직전까지의 위치로 볼 때 결코 엄벙덤벙 마구잡이로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기 나름대로의 처세술은 있었을 것이란 얘기다. 그날 비록 술에 취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날 밤 그런 행동이 자신을 몰락시킬 줄 알았다면 그런 짓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자신을 갑으로, 인턴 여직원을 을로 보았고, 을의 처지로서는 웬만해서는 갑이 하자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은 갑, 인턴사원은 을로 생각

나는 불과 몇 년 전까지도 '갑과 을' 하면 으레 강자와 약자의 관계로 인정된다는 사실을 몰랐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글쟁이 초년생으로 사회에 발을 디딘 곳이 어느 출판사였는데, 몇 달 정규직원으로 일하다가 근무조건을 다른 직원들과는 달리 해야 할 사정이 생겼다. 사장이 계약을 하자며, 요구사항을 계약서 형식으로 만들어 오라고 했다. '평일 근무는 몇 시부터 몇 시까지로 하고, 토요일은 휴무이며, 급여는 얼마로 정해서 이러이러한 방법으로 지급한다'는 내용을 담아 타자기로 쳐서 가져갔다.

사장은 빙긋 웃더니 글자 한 자 안 고치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그때 그 사장의 웃음의 의미를 수십 년이 지난 뒤에야 알았다. 그 계약서에는 내가 갑으로, 사장이 을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당시 내게는 갑과 을에 대한 개념이 없었고, 둘을 서로 바꾸어 써도 전혀 상관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에 20대 초반의 사회 새내기가 '감히' 사장을 을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제 와서 생각하니 그 사장은 통이 큰 사람이었다. 자신이 을이 되는 것을 웃으며 받아들여 주었으니 말이다.

대기업 간부가 스튜어디스를 마구 대했던 라면상무 사건, 젊은 직원이 나이든 대리점 점주에게 욕설을 퍼부어댄 막말 우유회사 사건, 그리고 블랙홀처럼 온갖 현안들을 삼켜버린 윤창중 사건은 형태는 다르지만 그 내용은 같다. 피해자가 '관리'가 되지 않고 튀어버린 경우다. 반상(班常)의 구별이 있던 시절에는 '양반이 여종 위에 타는 것은 머슴이 소 타는 것보다 쉽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갑의 횡포가 심했지만, 을은 제대로 항변조차 하지 못했다.

갑과 을의 평등성 확보돼야 선진국

갑의 못된 짓에 을이 적극적으로 항거하지 못하는 형편이야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지금이 옛날과 다른 것은, 적어도 법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것이다. 최근 '갑과 을' 관계에서 물의가 연이어 빚어지니까 어느 회사에서는 '갑'과 '을'이라는 표현 대신 '회사'와 '협력사'로 바꾸어 쓰기로 했다는데, 표현이 문제가 아니라 현실적인 지위가 문제인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선진국이란 GDP가 높고 도심에 고층빌딩이 많은 나라가 아니라, 갑과 을의 평등성이 비교적 많이 확보된 나라다. 사장이 직원을, 관리가 국민을, 남자가 여자를, 부자가 빈자를 하대하는 풍조가 어느 작은 구석에서라도 용납되는 한, 꼴사나운 사건들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도 나라가 국민을 '을'로 보고 폭력을 행사한 일이다. 윤창중에게는 분노하면서 국정원 사건에 대해서는 너그럽다면 아직까지 우리의 평등의식 점수는 높지 않다고 할 수 있다.

※ 2013.5.14 석간내일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 원문: http://naeil.com/News/economy/ViewNews.asp?sid=E&tid=8&nnum=712809
 
 

이인배(서울동노회,prok,목사) 2013-05-15 (수) 18:29 10년전
윤창중과 남양유업 때문에...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갑과 을의 관계에 대하여 사회가 돌아보게 되었네요...
조심할 것은 어쨌든 형성된 사회적인 공감대에 대하여 본질을 흐리지 않고 보다 발전되고 성숙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 예언자적인 감각을 잃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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