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호봉제는 결코 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버지와 개
옛날 어느 동네에서 아버지의 회갑잔치가 열렸습니다.
온 동네 사람들이 초대를 받아 북적거렸습니다.
그 북새통에 동네 개들도 뭔가 얻어먹으려고 모여들었습니다.
아들이 그 모습을 보고
<오늘, 동네 개들 잔치하는 구나...>
아들이 외출을 하려는데 보니 신발이 없습니다.
개가 마당에서 신발을 가지고 물고 뜯고 장난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화가 난 아들이 지게작대기를 들고 개를 쫓아갔습니다.
도망가던 개가 변소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마침 볼일을 보고 계시던 아버지, 깜짝 놀랐습니다.
아들이 뛰어 들어올까 봐 얼른 기침으로 신호를 보냈습니다.
아들은 변소 앞에서 씩씩거리면서 소리쳤습니다.
<이 놈의 개xx 나오기만 해봐라>
그 개가 드디어 생을 마치고 솥에 들어갔습니다.
개를 삶느라고 불을 떼었으니 아랫목이 뜨끈뜨끈했습니다.
아버지가 아랫목에 앉아 있는데
외출을 하고 돌아온 아들이 아랫목에 손을 들이밀더니
<개를 앉혀 놓으니 아랫목이 뜨뜻하구나...>
요즘 사람들이 개와 기독교를 비유하기 좋아하는데...
웃을 수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가난한 시절에 개는 목사님들의 건강을 위해 거룩한 희생을 했습니다.
못 먹어서 폐병에 걸린 가난한 전도사나 목사님들이
개를 먹고 낳았다고 간증(?)을 하니 말입니다.
결혼 후 처가에 처음 들렀을 때, 사위가 왔다고 특별한 음식을 준비했다고 했습니다.
보신탕이었습니다. 그때까지 나는 개고기를 먹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처가식구들이 맛있게 보신탕을 먹는 것을 보고는
<하나님, 저 야만인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하고 기도했습니다.
장인어른은 가난한 전도사시절에 결핵으로 고생을 했는데,
돈이 없어서 집에서 개를 길러, 그 개를 잡아 약으로 먹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건강해지셨습니다. 그런 간증(?)을 하면서 처가식구들은 거룩하게 보신탕을 먹었습니다. 이 좋은 것을 못 먹는 나를 아주 불쌍하게 쳐다보면서...
나는 목회를 하면서 아내와 교인들에게 속아 보신탕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아침 일찍 집사님집에 심방을 간 아내가 집사님이 육개장을 맛있게 끓였다고 오라고 해서 갔습니다.
아내와 집사님의 행동거지가 좀 이상했지만 그런 음모(?)가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육개장을
먹었습니다. 맛이 좀 이상하다고...생각하면서 먹었습니다. 며칠이 지난 뒤 아내는 당신 보신탕 먹었다고 했습니다. 무슨 말이냐고 했더니, 집사님댁에서 먹은 육개장이 사실은 보신탕이라고....
그렇게 보신탕을 시작했습니다. 사탄의 꼬임에 넘어가서...
가끔씩 그런 생각을 합니다.
보신탕을 먹었더니 설교를 할 때 옳은 개소리를 하는가보다.
청빈 혹은 자발적 가난에 대해서 설교합니다.
청빈 혹은 자발적 가난이 예수님의 제자의 삶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는 현실의 신자본주의가 만드는 갖가지 욕망에 군침을 흘립니다.
그런 나를 가난하지만 올곧게 살아가는 목사님 자녀들의 고백이 부끄럽게 합니다.
부끄러워서 옮겨봅니다.
나를 부끄럽게 한 이야기들...
“난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자랐고, 아버지가 내게 물려줄 재산은 단 한 푼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내가 아버지를 존경하는 건 아버지가 옳은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내겐 돈이 아니라
아버지가 걸어온 그 길이야 말로 제일 가치 있는 재산이다.” 2012.11.24| 홍해만(@haemanhong)
“아버지, 저는 한 때는 가난한 목사의 딸이라는 것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주말이면 친구들과 놀러 갈 수도 없이 매 주일 교회 반주를 해야 했습니다.
친구들은 어떤 iPod를 살까 고민할 때, 나는 어떻게 하면 이번 달 기숙사비를 밀리지 않도록
돈을 마련하나를 고민해야 했습니다. 친구들이 무엇을 하거나 살 때면 속으로
‘나는 저런 것은 필요없어!’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법을 배워야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버지가 자랑스럽습니다. 돈은 많지 않았지만, 언제나 남을 도와주고 배려하였던
아버지, 자녀들을 위해 시간을 내주고 함께 기도하던 아버지를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교인들을 사랑하며,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을 사랑한 아버지답게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속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이제는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존경합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어느 목사님 딸의 추모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