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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호봉제(1) - 어느 젊은 목사의 죽음앞에서

김진철 (충남노회,오순교회,목사) 2012-10-07 (일) 21:28 11년전 6912  
- 밥값? 꼴값?

대학원을 다닐 때 몇 사람이 모여 모임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그게 유행이었습니다.
어느 날 갓 결혼한 친구 집에 가서 공부도 하고 놀다가 늦잠들을 잤습니다.
아침에 신부가 밥을 차려주었습니다.
우리는 밥상에 앉았고 제일 연장자인 내가 식사기도를 했습니다.
거룩하게, 교리적으로, 복음적으로, 정통 보수적으로 기도했습니다.
다들 크게 <아멘!!>하고 화답을 했습니다.
나는 수저를 들면서 <기도했으니 나는 밥값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제수씨가 한마디 했습니다.
<사람은 밥을 먹으니 밥값을 한다고 하는데, 소보고는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우리는 아직 잠이 들깬 터라 머뭇거리고 있는데. 제수씨가 하는 말
<사람은 밥을 먹으니 밥값을 한다고 하고, 소는 꼴을 먹으니 꼴값을 한다고 하지요.>

아, 이게 뭐야? 지금 우리 보고 꼴값을 한다고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가 지난밤에 한 일을 다 알고 있단 말인가?
우리는 민망해서, 제대로 웃지도 못했습니다.

목사가 목사의 이야기를 하려니 많이 망설여집니다.
그것도 성공하거나 부흥하는 놀라운 이야기가 아니라 먹고사는 구차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니 말입니다. 혹시나 <못난 인간, 꼴값하고 있네...>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나는 이제부터 꼴값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먹고 살기 힘든 목사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 어느 젊은 목사의 죽음 앞에서

가을,
아침 안개가 짙습니다.
어디선가 아직 덜 여문 도토리가 하나가 ‘툭’ 하고 떨어집니다.
일찍 떨어지는 것은 무엇이든 외롭고 쓸쓸합니다.

지난여름 어느 젊은 목사의 죽음소식을 들었습니다.
타 교단의 목사님이고 교제가 있는 분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보아야 할 자리였습니다.
너무나 뜻밖의 소식이라서 조금은 멍한 상태로 경주에 갔습니다.
경주로 내려가면서 그간에 내가 들었던 일들을 더듬어보았습니다. 
그는 부산의 어느 큰 교회의 부목사로 오래 동안 사역하다가
대구에 있는 교회의 담임목사로 청빙을 받았습니다.
추진력이 있었던 젊은 목사라 교회가 부흥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느 해 여름에 부산으로 청년들이 수련회를 갔는데
청년들만의 숫자가 50명이 넘었다고 좋아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제자훈련을 잘하고 교인들이 헌신한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좋은 소식들과 잘한다는 이야기가 이어지자 솔직히 나는 기분이 좀 묘했습니다.
나도 같은 목사인데, 나도 열심히 하는데, 늘 제자리를 맴돌고 있어서
마음이 힘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잘 하는 목사의 이야기를 들으니 배가 좀 아팠습니다.
은근히 잘 못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한구석에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한동안 소식이 뜸했습니다.
뜸하다가 다시 들려온 이야기는 장로님들과 갈등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하고 속으로 웃으면서도,
<어느 교회나 있는 갈등>이라고 <그런 것을 극복해가는 것이 목회의 한 과정>이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몇 개월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그런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1년이 지났을 때는 상황이 악화되어간다고 했습니다.
심한 곤욕을 치르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폭언과 인격모독에 예배를 방해받는 것 같다고....
그래서 몸과 마음이 많이 힘들다고...
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분개했습니다. 그리고는 나는 또 무심하게 잊어 벼렸습니다.
한동안 시간이 흐른 후 들리는 이야기는 더욱 가혹했습니다. 몇 개월째 사례비를 못 받고
있다고 했습니다. 장로님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사례비를 줄 재정이 없다고 둘러댄다고 했습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늘어놓다니...사람들이 어찌 그럴 수가 있지? 설령 그런 사정이 있다 치더라도
사람이 먹고 살 수 있도록 해주어야 되는 것 아닌가? 어떻게 사람들이 돈을 가지고 목사의 목줄을 조이는가?>
나는 그렇게 분통을 터뜨리면서도 사실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또 잊어버렸습니다.
지난여름 그 토요일 날, 아내가 그 목사님이 죽었다고 했습니다. 내일 오후예배를 마치고
경주에 가보자고 했습니다. 나는 이름을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습니다.
아내는 <죽었다고!!> 하고 울먹이면서 말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이냐? 고....나는 물었습니다. 그리고 경주는 또 뭐냐고?...물었습니다. 
대구에서 그러다가 그 교회를 나와서 경주에서 개척을 하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날 혼자 집에 있다가 갑작스럽게 죽었다는 것입니다.
썰렁한 빈소에 사모님과 목사님의 모친이 계셨습니다.
<목사님은 건강하시죠?> 하고 묻는 사모님의 말에 나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김목사, 교회는 평안하지?>하고 묻는 어머님의 말에 나는 얼굴이 확 달아오르고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한 무리의 목사님같은(?) 분들이 들어왔습니다.
그 교단의 목사님들이라고 했습니다.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애통해하는 목사님, 사모님을 위로하는 목사님들을
보면서 가슴에 불이 솟구치는 것 같았습니다.
당신들 도대체 뭐하는 사람들이냐고?
혼자 그렇게 고독하게 싸우고, 두려움 속에서 기도하고, 굶주림 속에서 아파할 때
무엇을 했느냐고? 아프고 힘들고 외로워도 말 못하고...속으로 앓다가 힘없이 쓰러질 때까지
뭐했느냐고? 그리고 이제 와서 위로한다고...이것이 동역자들인가?
가증스럽다고 하는 말이 가슴에 맴돌았습니다. 그러는 너는 뭐했나? 너도 그 죽음에 책임이 있으면서...
사실은 나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그 목사님의 죽음위로 또 다른 피어보지 못하고 죽은 목사님들의 죽음도 떠올랐습니다.
나하고 상관없는 죽음인데도, 그러나 결코 그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동역자들이었습니다.

그날 밤에 나는 잊고 있었던 단어를 생각했습니다.
목사호봉제....

김형석(제주노회,제주새밭,목사) 2012-10-08 (월) 23:37 11년전
저는...
목사호봉제보다는, 그 젊은 목사님의 죽음이 참 실감납니다.
주소
이상호(대전노회,공주세광교회,목사) 2012-10-09 (화) 20:05 11년전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우선 미망인과 자녀들에게 우리 주님의 크신 위로를 빕니다.
그리고 목사세습 막고 목사호봉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습니다.
주소
이병휘(전북동노회,전주소망교회,목사) 2012-10-12 (금) 05:59 11년전
그랬군요.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요즘들어 자꾸만 하고 싶었던 얘기가 이거였습니다. 호봉제입니다. 개척교회나 미자립교에서 은퇴하거나 그만두어야 할 상황이 되면 목사는 살아갈 일이 막막합니다. 세상의 회사나 기관도 그렇질 않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의 글을 보니 이제는 더 이상은 미뤄서는 안될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이뤄졌을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안서간다는 기장이 이런 일을 했다면 타교단으로부터 존경받을 일이지 않을까요? 도대체 언제까지 미뤄놓을 것인지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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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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