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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와 익산지역의 공평사회를 위한 기도회

유병선 (익산노회,두여리,목사) 2012-12-15 (토) 17:29 11년전 3142  
2012년 위대한 역사를 창조하는 청지기로 살자
 
금년 2012년을 우리민족의 운명을 변화하는 해이다
이해학목사(민족문제연구소 이사   N.C.C정의평화위원장  W.C.C준비위 정의평화위원장)
1. 금년 2012년의 의미
흑룡의 해 인 올 임진년(壬辰年)은 불안과 공포의 예언으로 뒤범벅이 된 출발을 하였다. 잘못하면 1592년 임진왜란 같은 전 국민적 재앙이 올 수도 있고 가이아 이론이 말하는 의식의 변화를 이루는 상승의 해가 될 수도 있다.
 
UN미래보고서가 지적하는 미래는 희망적이기 보다 절망적이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은 1999년 지구 멸망설을 금년 12월 21일로 수정되었다. 마야인들의 달역에서는 2012년 12월 21일에 지구의 역사가 끝난다고 못 박는다. 이런 주술적 주장만으로 과학적 사고로 무장한 현대인들이 들뜨지는 않을 것이다. 주식시장의 주가를 미리 볼 수 있도록 만든 프로그램인 웹봇은 금년 12월 21일에 응답을 않는다는 것이나, 중국의 주역을 연구하는 한 학자가 중국의 주역에 대해 분석을 하여 그래프를 만들었는데 이 그래프가 마야와 마찬가지로 2012년 12월 21일에 끝난 것들은 항상 있어온 현상이라 치부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과학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에게 과학자들이 금년을 종말의 해라고 주장하는 데는 사람들의 관심을 사로잡을 수 있다. 어떤 이들은 행성 충돌설을 말하기도 하지만 신빙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천문학자들은 금년이 태양계가 일직선이 되는 해 이어서 태양의 흑점 폭발로 인한 모든 컴퓨터를 비롯한 전자기기의 마비하는 등 엄청난 피해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자기장 역전으로 지구의 축이 바뀌어 북극과 남극이 뒤집힐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되면 인류는 대부분 살아남지 못 하는 비극의 운명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는 설은 사람들을 동요 시킬 수 있다. 극단적 종말주의자들이 종교심 많은 사람들을 태풍 앞에 겨같이 쓸고 다닐 수도 있다. 또 이미 8억년전에도 지구의 축이 바뀌었던 증거들이 나오면서 지구종말에 대한 의구심을 부추기고 있다.
 
실제로 이 이론을 뒷밭침하는 환경적 현상은 날로 늘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무엇보다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인한 환경피해는 세계 도처에서 증가되고 있다. 급격하게 줄어드는 꿀벌의 감소는 남은 인류에게 과일을 먹을 수 없는 불행을 가져올 수 있는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지구의 멸망설이나 인류의 종말설은 항상 있어왔다. 예수는 그날이 언제일지 관심 갖지 말라고 하신다. 그 말은 그 날에 매어 살지 말고 지금 여기에 충실한 삶을 살라는 것이다. 이에 대응하는 유일한 길은 인간이 변하는 길밖에 없다. 인간의 욕심을 비우고 더 이상 편하게 살기위해 생명의 터를 파괴하는 삶을 수정하는 길 밖에 없다. 오늘도 할 수 없는 일에 매이지 말고 할 수 있는 일을 해 나가는 것이다.
 
2. 오늘의 담론 내가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
온 세기의 성숙한 인간의 담론은 “내가 우주다.”라는 자각을 갖는 것이다. 나라는 존재가 우주적관계속에서 태어나고 우주적 관계 속에 살아가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그러기에 물질도 우리의 부분으로 소중해지고 지구촌 너머의 사람들의 아픔이 나의 것으로 와 닫는 것이다.
 
비로소 성서에서 말하는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명제를 갖는다. 세상이 아무리 타락을 하더라도, 가진 자들의 힘이 횡포를 일삼아도, 내 농장에 곡물이 자라지 않고, 목장에 소가 없어도 그것 때문에 가야할 목표인 사람다운 삶을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지향해야할 하늘나라 즉 정의와 평화가 깃드는 희년 추구를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모름지기 사람이라는 존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늘 뜻을 추구하며 살게 되어있는 것이다.
 
이것이 의식 혁명이다. 존재는 행동을 결정 한다. 더불어 사는 공생의 삶은 세상에 대한 책임성을 동반 한다. 불의에 대한 저항과 도전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약한 자 위에 군림하고 힘 있는 자 앞에 비굴한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 된 존재감의 무게로 다른 사람의 존재가치를 인정하는 관계를 갖는다. 그러기에 사람사이에 이기고 짐이 없는 삶은 나눔과 섬김으로 충족되어지는 행복을 상승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 여기에서 생명의 씨를 뿌리고 가꾸기 위해서 살고, 그 일을 위해서 정치적 결단을 해 나아가는 것이 지구적 대 재앙에 대응하는 길이다. 상황에 문제 삼지 않고 끝없이 도전하는 사람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다.
 
 
3. 민중이 변화의 주체로 서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의로운 권력을 우리의 민중의 힘으로 창출해야한다. 민중은 백성이라 해도 좋고, 국민이라 해도 좋고, 인민이라 해도 좋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의 주체로서의 백성이다.
 
그러나 민중은 어리석다. 성서에 야곱의 큰 아들 에서가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동생에게 팔았듯이 고무신 한 컬레에 막걸리 한 잔에 나라의 운명이 걸린 표를 팔았다. 민중은 힘 있는 자들의 감언이설에 속고 간사하고 때로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아우성을 치듯 잔인하다. 강력한 권력자를 원하고 거기에 안주하려는 속성을 가진다. “민중이 역사의 주인이다.”는 말은 참으로 위험한 말이다.
 
그래도 민중은 역사의 주인이다. 정도전은 <조선경국전>에서
“백성은 약하지만 힘으로 위협할 수 없고, 지극히 어리석지만 지략으로 속일 수도 없다. 마음을 얻으면 복종하고, 그것을 얻지 못하면 가버린다. 그 가고 옴 사이에는 추호의 여지도 없다.” 라고 하였다.
 
노자는 上善若水(지극한 선은 물과 같다)라 했다. 물은 늘 아래로 아래로 흐르며 막히면 고인다. 민중은 지극히 겸손하여 물과 같이 가장 밑바닥에 있다. 맑은 물은 사물의 모습을 그대로 비추어 주듯이 민중은 하늘의 뜻을 그대로 보여준다. 물은 그릇의 모양에 따라 모질 수도 있고 둥글 수도 있듯이 민중은 통치자에게 순종한다. 물은 모든 더러움을 씻어 주면서도 스스로 맑고 깨끗해지듯이 민중은 잘난 이들의 죄악을 대신 짊어지고 흡수하여 사회를 유지한다.(김홍한의 이야기 신학)
 
물은 만물을 살리면서도 자랑하지 않는 것처럼 민중은 국가와 사회를 살리면서도 자랑하지 않는다. 그러나 물은 마냥 순한 것만은 아니다. 홍수가 되어 넘칠 때는 그 무엇도 막을 수 없는 것처럼 민중은 그러하다. 모래알 같은 군중들이 역사와 생명에 눈을 뜨고 연결되면 변혁의 힘이 된다. 3.1운동이 그렇고, 4.19가 그렇고, 5.18이 그렇다. 6월항쟁과 오늘날의 촛불행진이 그렇다.
 
몽고 항전에 끝까지 목숨 바치며 싸운 것도 민중이었고, 임진란에 풍지박살이 된 관군의 자리를 대신해 싸운 것이 의병들이었다. 우리나라의 역사의 굽이굽이에서 무너지는 나라의 성을 쌓는 것은 민중이었다. 불의에 대한 분노의 파도이면서 또한 생명을 푸르게 살리는 바탕이다.
민중이 힘으로 되는 과정은 참여 할 때부터 전체에 연결되며 전체로 통하는 통로가 된다. 강원도에서건 미국이나 일본에서건 힘이 된다. 그것이 변화의 힘이다.
 
4. 금년 2012년은 평화협정을 통해 통일민족의 머릿돌 놓아야
금년 2012년 흑룡의 해는 한국역사에 큰 변화의 해 이다. 운명의 전환의 해로 살아야 한다. 남쪽만이 아니라 북에까지 아니 동아시아에 평화의 전환점이 되는 2013년 체제를 희망해야 한다.
 
우리시대의 시대정신은 무엇보다 통일민족을 이루는 일이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어야 한다. 분단은 한국전쟁으로부터 60여년동안 남북국민에게 고난(苦難)의 원죄(原罪)로 작용하였다. 우리는 분단 때문에 민주주의를 할 수 없었다. 분단 때문에 국민생산의 30프로 이상을 국방비로 썼다. 자연히 사람다운 삶을 유보해야 하였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체제와 이념 때문에 죽어 가야 하였다.
 
분단은 우리민족이 원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분단은 세계의 자본주의라는 해양세력과 공산주의라는 대륙세력이 용트림을 하며 대결을 하다가 한반도에 비무장지대(DMZ)를 긋고 정지하였다. 한반도의 DMZ는 물질을 신으로 섬기는 강대국의 죄악의 결과이다. 하늘은 우리 민족에게 이 세계적 죄악을 청산하기 위해 어린양 같이 담보로 잡히게 하였다. 또한 강대국들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 우리의 분단을 고착화 시키고 마음대로 난도질 하여 통일을 방해 해 오지만 우리민족이 이를 감당하며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강대국에 우리의 운명을 맡기고 살아서는 안 된다는 자각이 이미 일어났으나 반민족 반통일 정권들이 그 싹을 무자비하게 짓밟아 왔다. 더욱이 내부의 사대주의자들은 더욱더 미국을 위해서 충성하고 있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이 부시와 담판에서 가까스로 2012년에 전시작전권을 이양받기로 합의 해 놓은 것을 이명박 대통령은 천안함 사건 후에 스스로 3년간 반납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한미일 동맹체제를 강화하여 동아시아에 불화를 조장하고 있다. 이 3년에 또 무슨 제2의 천안함 사건이 터질지 불안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자기 백성의 목숨을 한미연합사령관에게 맡기고 사는 부끄러운 민족이다. 실제 <통킹만 사건>의 진실은 20년이 넘어 미국이 베트남 침공을 위한 자작극임이 폭로되었다. 대한민국은 자기나라의 주권을 미국에 맞기고 사는 비자주적 국가로 스스로의 운명을 선택하고 있다. 국민의 뜻을 물어보지도 않고 국민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안내하고 있다.
 
5. 금년 2012년은 대선을 통해 민족의 전환점을 만들어야
해방 후 우리는 독재의 긴 터널을 통과했다. 이승만 독재 12년, 군부독재 31년의 긴 세월을 지내며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것을 깨달았다. 민주주의는 투쟁 속에서 조금씩, 조금씩 성장하는 것이지 단번에 이루어 질 수 없다. 다시 말하자면 민중과 지도자의 의식이 성숙해야 민주주의가 안착된다는 것도 깨달았다.
우리는 6월항쟁 이후 많은 정치 학습을 한 결과 이번만큼은 지구촌 시대를 뚫고 나갈 지도자를 선택할 준비가 되었다.
 
박근혜 현상은 여러 가지로 설명들을 한다. 그러나 한마디로 박근혜 개인에 대한 정치적 능력을 인정한다거나 그녀의 인품을 존경 하여서 대통령을 만들려는 것이 아니다. 그간에 분단을 빙자하여 갖은 악법을 남발하여 분단이익을 독식한 무리들이, 노동자 농민의 권익을 짓밟고 갖은 폭력과 억압으로 백성위에 힘으로 군림해온 무리들이, 편법을 통한 가진 자들의 치부만 보장해온 부정부패정권을 옹립해 온 보수기득권자들이 변화되는 시대에서 생존의 퇴로를 찾지 못하였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박정희의 후광을 업은 박근혜에게 구원타의 역할을 시켜 보는 것이다. 박정희를 잘 모르고 보수언론에 길들여진 무리들은 박근혜를 환상적 구원의 천사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는 화려한 복지정책을 통해 갖은 간교한 설득력으로 양의 탈을 뒤집어쓴 이리들 같은 정치인들 이다. 어디까지 일지모르나 이번 선거를 통해 박정희의 본질을 알아차리는 기회가 되어 국민의 역사의식에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박근혜 식 정치는 이미 끝났어야한다는 교훈을 철저하게 학습하게 될 것이다. 사실 우리는 과거 한나라당의 퇴폐정치를 끝장낼 기회가 있으나 단합 되지도 못한 힘 이나마 신속하게 발휘하지 못 함으로 기회를 놓쳐 다시 한국정치의 퇴보를 맴돌고 있을 뿐이다.
 
 
강한 개혁의지를 전제한 문재인과 초법적 존재인 재벌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잡는 안철수의 공약은 같은 방향을 지향 하고 있다.
첫째 복지, 둘째 정의, 셋째 평화이다. 이것은 힘의 질서, 강자의 독식시대를 마감하고 상식이 통하는, 더불어 사는 공동체국가를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적체되어온 남북관계를 지혜롭게 풀고 동아시대 다자간 관계를 주도적으로 열어 배달겨레의 포부를 펼치겠다는 의지표명을 보아 두 사람의 정치적 성향은 같다고 해야 한다.
 
다만 누구와 함께 어떤 권력이어야 하는가를 국민들이 선택할 여지가 남았다고 본다.
선거는 선거이다. 같은 편만이 아니라 반대한 사람들의 표를 의식해야한다. 그래서 후보들은 남북관계를 놓고는 "북한 붕괴를 전제로 한 봉쇄정책은 한반도 긴장만 고조시키고 평화를 훼손 한다"며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한다. 그러나 천안함 문제엔 "기본적으로 정부의 발표를 믿지만 국민에게 설명하는 과정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정치적 표현의 기술로 정리 하고 있다. (최문순 강원지사의 정공법과는 달리 서울시장 박원순의 궁색스런 변명은 그만큼 사회가 보수화 되어가는 분위기 때문이다.) 아무리 평화를 주장하는 모든 사람을 종북주의 자로 뒤집어씌우는 풍토라 할지라도 선거에 너무 조심하면 밀린다. 국민을 믿어야한다.
 
정의를 갈망하는 국민, 평화를 사랑하는 국민을 믿고 설득해야 한다. 편법으로 안일을 꾀하는 정치기교는 결국 자기발목을 잡는 결과를 초래하고 마는 것이다. 정치인의 역사적 무개는 크다. 정치인은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 예수님도 “나는 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린다”. 하였다. 실컷 양을 뜯어 먹다가 이리가 올 때에 도망치는 목자는 삯꾼 목자라고 갈파하신다. 양의 생명을 보호하고 그 풍성함을 위해서 자기를 버린 정치인은 국민이 알아주고 반듯이 역사 속에서 그의 가치를 들어내 준다.
 
과거 김대중 대통령은 그의 햇빛정책은 잘못된 것이라고 진보진영과 제야가 반대하였음에도 일관되게 실시하다가 남북정상회담을 돌파해 내고 6.15공동선언을 성사시켰다. 우리역사의 운명을 미국주도의 흐름에서 자주적 운명으로 문을 열었던 것이다. 오늘 우리는 지식이 많은 지도자 보다는 용기와 결단이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민심이 천심이라는 말은 깨어서 연결된 민중에게 하늘의 뜻이 담긴다는 것이다.
금년 2012년 대선이 중요하다. 거짓과 기교로 백성을 속이고 자신과 가진 자들의 욕망을 성취하기위해 나라를 빚더미위에 올려놓고 4대강에 예산을 쏟아 붙는 포크레인 같은 지도자가 아니다. 골리앗 같이 미제 최신 무기로 중무장을 하고 국민들앞에 위압적으로 다가오는 지도자가 아니라 바람 같은 지도자를 세워야한다.
이 비극의 역사를 부끄러워하는 지도자, 이 민중의 아픔에 분노하는 지도자, 민족과 민중의 평화를 희망하는 갈망에 길을 열어주는 지도자를 세워야 한다. 그 꿈의 울림과 감동이 역사의 힘으로 분출하도록 민중을 자극하는 지도자를 세워야 한다. 그래서 용암덩어리 같은 민중의 혼을 뒤 흔들어주는 창조적 지도자를 세워야 한다.
끝까지 어떤 일이 있어도 국민을 하늘같이 믿고 그 국민을 위해 자기를 내어주는 무장하지 않는 지도자가 이 해에 우리에게 와야 한다. 그래서 자기도취에 빠진 사람들도 자리를 털고 일어나 정의와 평화의 대열에 서서 한 흐름을 생명의 강같이 흘러가야한다.
 
 
나약한 존재 그대로 우리는 역사를 만드는 전위대로 부름 받았음을 확신한 바울 사도는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는 말씀이 새롭게 들려온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택하셨으며,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약한 것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비천한 것과 멸시받는 것을 택하셨으니, 곧 잘났다고 하는 것들을 없애시려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그것은,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는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27-29절)
 
익산노회 교회와 사회위원회 주관으로  마동교회에서 김종곤 목사(교회와 사회위원장)의 사회  이해학 목사의 말씀과  김은경목사의 2012년 대선과 민족평화통일을 위하여, 최윤식목사의 익산지역의 공평사회 건설을 위한 기도후에 전환국목사(익산노회장)의 축도로 진행되 었습니다. 헌금은 원불교 국제마음 훈련원 건립 국비지원 부당 서명운동 대책위원회에 지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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