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 ::
 
 
 

 

이상한 전쟁 : 임진왜란

신흥식 (충남노회,평지,목사) 2020-08-24 (월) 18:53 3년전 2012  

 

 

 세계의 군사 전문가들은 임진왜란을 이상한 전쟁이라고 한다.

 

공격자인 일본의 풍신수길의 정부도 무너졌고, 도와 주려고 왔던 明나라도  무너지고 淸나라로 바뀌었는데,

침략을 받은 朝鮮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살아 남았기 때문이다. 이게 웬 일인가.

 

어떤 분들은 임진왜란을 朝. 日 전쟁이라고  하시는 걸 보았는데, 이건 두 나라간의 전쟁이 아니고, 일본의

일방적인 침략 에다가,  무방비 상태의 조선 백성들을 무참하게도 살륙한 거로 봐서는 임진 왜란이 라는

 

말이 옳다고 생각한다.. 선량한 사람에게 강도가 와서 죽인 것과 다를 바 없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전멸할 거 같앗던 조선이 살아 남아서 지금까지 살아 있다는 건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조선에서는 쓸만한 사람은 다 죽이고 나니, 일본이 15만이나 되는 대군으로 쳐들어 온다.

일본군은 전쟁을 한 게 아니고 , 부산에 상륙해서 서울 까지 그냥 행진을 하면서 올라 간다.

 

문경 새재를 지나면서 일본 군 장수들은 조선 군의 수준을 알아 봤다.

조선에는 쓸만한 장수가 한 놈도 없구나.

 

그 좋은 요새지를 버려 둔 걸 보고서 그들은 조선을 아주 얕보게 된다.

임금이 보낸 신립 申砬 장군은 기마부대를 이끄는 군대라 . 산으로 등지고 방어할 수가 없어서

 

그 요새지를 버리고 그 너머에 있는 탄금대 벌판에서 준비하고 있었지마는 이미 승산이 없었다.

하필이면 그날 비가 억수로 와서 말은 고사하고 진흙에 빠져 달릴 수도 없는 판이었다.

 

패전 소식을 들은 임금은 먼저 피난을 떠나고, 일본군은 궁궐에 불을 지르고 백성들을 약탈하고,

맘대로 휘젓고 다닌다. 조선 여자 겁탈하는 건 이미 출병할 때 부터 허락을 받은 일이다.

 

       유성룡의 추천 :   이순신 , 정읍현감.

 

선조가 아무리 어리 어리한 중에도 한 가지 잘 한 일이 있다.

아마도 사방에서 어수선한 소문이 들리는 걸 보고서, 뭔가 짚히는 게 있었을 거 아닌가.

 

당상관 들을 모아 놓고 , 변방 수비를 위하여 쓸만한 사람이 있으면 추천하라고 명하였다.

류성룡은 어렷을 때 같이 놀던 이 순신을 천거 하니 그 당시에 정읍 井邑현감으로 있었다.

 

정읍 현감으로 오기 전에도 여러 차례 파직당한 일도 있고 징벌로 백의 종군한 일도 있었고,  보지 못할 일을

많이 당했었는데, 상관들에게 고분 고분하지를 않고, 바른 말로 거절하기를 잘하고, 해서 인사권자들이

 

횡포를 많이 가했었다. 그래도 누구한 테 억울한 말을 할 수도 없었다.

항상 변방으로만 떠 돌고 , 누가 끌어 줄 만한 인맥도 없었는데, 중앙 정부에 율곡 栗谷 선생이 병조판서로 있을 때,

 

덕수 德水 이씨로  집안 당내간이 되는 분이니 필요한 걸 얘기좀 해 보라고 히니, 일부러 피하고 멀리 하였다.

정읍현감으로 발령나서 부임할 때도 남들이 하지 아니하는 일을 저질러서 말거리가 되었었다.

 

먼저 세상을 떠난 형님네 조카들 까지 키워야 하는 입장에서 많은 가족들을 데리고 임지에 간 것 때문에 사방에서

입을 놀렸는데, 그래도 그 수모를 다 참고 견디는 중이었다.

 

          무명 인물 이 전라 좌수사 左水使되다.

 

유성룡의 추천 으로 곧바로 진도 珍島 군수로 가게 된다.

얼마 안 되어 전라 좌수사로 승진한다. 임진왜란이 터지기 3개월 전이었다.

 

임지에 도착하자마자 군장비를 점검하고 군기를 바로 세운다.

그런데 일이 되느라고 사람들이 스스로 찾아 와서 여러가지 안건을 내놓는 게 아닌가.

 

나대용 羅大用 이라는 사람이 찾아오더니, 자기가 설계한 거북선 을 보여 주면서 브리핑을 한다.

다 듣고 난 수군 사령관은 그대로 해 보라고 명령한다. 그 말을 들은 나대용은 죽기 살기로 그걸

 

완성한다.  그동안 나대용은 여러차례 군 책임자들을 찾아 다니면서 자기의 의견을 말하엿지마는

들어 주는 이가 한 사람도 없었는데, 이렇게 일이 되는 걸 보고 너무 좋아서 생명을 바쳐 충성하였다.

 

어느 날은  새로운 수군 사령관이 왔다는 말을 듣고 대포에 넣은 화약을 제조하는 기술을 가진 사람이

와서 설명을 한다. 그대로 하라고 명령한다. 그렇게 해서 판옥선에서 사격할 때 들어가는 대포의 화약을

 

자급해서 쓸 수가 있었다.

활을 만드는 기술자도 와서 돕는다. 조선의 활 과 화살은 탄력이 엄청나게 좋아서 명품인데, 그 안에는

여러가지 기술이 모아져서 그렇게 된 다.

 

특별히 활에 탄력을 더하는 거는 아교질을 자재에다 잘 발라서 만드는데 그 아교질은 다른 게 아니고,

남해 바다에서 많이 나오는 민어 民魚의 속에 있는 부레 라는 거다.

 

수군 사령관은 민어를 잡아서 군대를 먹이고 그 부레로 활에다 칠해서 탄력이 좋은 조선 활을 만들고

그 활로 승전한다. 일이 순조롭게 되는 건 아무래도 하늘의 긍휼하심이 아닌가.

 

전라 좌 수사는 모든 군수 물품을 자급 해서 조달 한다.

중앙 정부의 지원을 받을 만한 상활이 아니었다.

 

배를 짓는 일 부터 병기 만드는 일이며, 군대 모집하는 일도 일일이 자기 손으로 선발하고 양식도 자기

손으로 준비하고, 그 때, 벌교 군수를 제냈던 장인 어른 방 진 의 도움을 많이 받게 된다.

 

농사도 짓고 소금도 굽고 돈이 될 만한 일이면 뭐든지 다 해서 군대를 살리고, 백성들도 살리고,

 

나중에는 명나라에서 온 지원군을 대접하는 것도 이순신의 짐이 된다.

상전노릇하려고 하는 황제국의 장수들을 달래면서 마음 상하지 않게 하는 작업이 쉬운 일이냐

 

눈에 보이는 병참 기지에 물자만 준비한 게 아니다.

현지 주민들에게 통신 망을 만들어 놓는다. 

 

무슨 일이 있으면 얼른 연락하라는 정보망을 만들어 놓고 , 사방에서 들리는 소리를 듣는다.

이 방법이 한산대첩을 비롯하여 승전 승전으로 연전 연승하는 비밀의 네트 워크가 된다.

 

 

   기묘한 타이밍 

 

임지에 도착하여 모든 준비를 다하고, 마지막으로 거북선을 완성하고 나서 , 그 거북선에서 장수들을 다 모아서

대포사격을 시범적으로 해 본다. 그 사격이 생각하던 거 만큼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둔걸 난중일기에  기록하한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에 임진 왜란이 터진다.

아니 이게 어지 된 일인가.

 

무명의 시골 현감이 수군사령관이 된 것도 3개월 전인데, 부임하여서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나니 일이 벌어 진다니,

이런걸 뭐라고 해야 하는가. 더군다나 이순신은 수군에 경력이 없는데 말이다.

 

임금이 버리고 간 백성들, 대신들이 망쳐 놓은 나라에 의지할 데 없는 백성들을 생각하셔서

 하늘은 이렇게 손을 봐 주시는 거 아닌가.

 

     

    약무호남  若無湖南   시무국가 是無國家

 

우리 는 , 한국인은 누구라고 할 거 없이 전부가 전라좌도 수군들의 신세를 졌다.

지금으로 보면 전남 과 경남 일부의 장정들이다.

 

그 당시에 이순신을 따라 전쟁에 나갔던 병력은 전부 전남과 경남 일부였다.

만약에 호남이 없었다면, 이 곧바로 나라가 없어지느니라. 수군 사령관의 소감이 그렇다.

 

그 때는 모든 배가 사람의 손으로 노를 젓어야 간다.

노젓는 게 격군이다. 格軍의 수고는 뭐라고 할 수가 없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지.

 

활쏘는 궁수 창던지는 창수 대포를 다루는 사수 , 배마다 전투를 지휘하는 장수가 있지마는

수군 사령관은 사병한 사람이라도 다치지 않게 면밀한 준비를 한다.

 

그런 과정에서 임금님의 명령을 거절 하기도 하고 , 상황판단을 잘 하는 게 중요한 일이라서

밤을 새는 일도 한 두번이 아니다.

 

      

   이순신 李舜臣 은 알고 있었다.

 

끝까지 일본 수군의 길을 열어 주지 아니하였다.

그 결과로 일본은 이제 물러가는 수 밖에 없었다.

 

이제는 전쟁이 마무리 되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후에 전개되는 논공행상을 알만하였다.

 

임금님을 따라서 같이 피난을 갔던 사람들은 호종공신  扈從功臣이라는 상을 준다.

그런데 임금님의 명령을 여러 번 거절한 수군 사령관은 어떻게 되는가

 

그건 답이 하나 밖에 없다.

   사형  死刑.

 

조선 수군을 당할 수 없었던 일본군은 여러 차례 조정에 첩자를 접근시켜서

이순신으로 하여금 출벙하도록 유도하는 작전을 썼는데 그 때마다 이순신은

 

거절하였다. 왕명을 어긴 거다. 이건 답이 하나다.

또 나중에는 선조라는 임금의 명령으로 조선 수군을 다 없애고 지상군으로 만들어 보자고 제안을 했는데,

 

그것도 역시 거절 하였다.  조정안에는 현지 사령관인 자기를 지켜줄 만한 사람도 없다.

있다고 하여도 왕명 을 어긴 사람을 어떻게 덮어 줄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저런 여러가지 사정으로 볼 때, 이 순신은 이제 갈 곳이 하나 밖에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나라를 살리려는 애국심으로 싸우는 의병들을 반란군 으로 의심하는 임금네 나라 백성들,

 

그 때도 선조는 명령을 내린 다는 것이 의병들을 빨리 해산하라는 소리만 여러차례 강조하였으니

그게 무슨 임금이라는 거냐  전쟁이 마무리 될 무렵 의병장 조헌도 곽재우도 다 종적을 감추고

 

산으로 갔으니, 짐작할 만한 일이 아닌가. 적들이 거의 다 물러 가는 것을 보게 된

수군 사령관은 지휘관실에서 나와 갑판위에 선다.

 

왜 그리 하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게 유탄을 맞고 세상을 떠난다.

 

갈곳 없는 조선 백성들을 위하여 하늘이 준비하신 사람,

삼도수군 통제사는 소문내지 아니하고 가시다.

 

 

 

 

 

더위가 완전히 물러간 다는 처서 다음 날에,

 

 

평지교회   흰쾨끼리  올림

     


윤여삼(경남노회, 무림교회,목사) 2020-08-24 (월) 22:57 3년전
申 목사님!

尚有十二하고  微臣不死라
이사야서 41:10과 함께
위로와 용기와 소망을 갖게 해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장계를 받은 선조는 기뻤을까요?
아니면 얼굴이 창백해지고, 마음이 불안했을까요?
주소
신흥식(충남노회,평지,목사) 2020-08-25 (화) 07:03 3년전
윤 목사님,

불안에  떨고, 이순신에게로 향하는 민심 때문에 발광하였지,
그래서 의병 해산 명령을 내리고 또 내리고,

위로를 주시네.

주일 저녁에 글을 다 써서 올리려고 저장을 눌렀는데, 뭐가 잘못 됐는지,
올렸던 글이 다 날라 가 버렸네.
주소
윤여삼(경남노회, 무림교회,목사) 2020-08-25 (화) 09:03 3년전
전쟁 후에 李舜臣의 운명이 어떻게 될 지
明나라 도독인 진린(陳璘)은 환히 알았던 것일까요?
전쟁이 끝나면 李舜臣에게 明나라로 가자고 권유했었지요.
전쟁 통에도 찬란히 빛나는 友情이었습니다.

我貌雖瘦(아모수수)하나 天下必肥(천하필비)라
나는 야위어도 천하는 살찌리라!!!

아!
玄宗(현종)과 韓休(한휴)의
큰 배포와 배포의 만남이 그립습니다.
주소
신흥식(충남노회,평지,목사) 2020-08-25 (화) 10:40 3년전
임금 이 될 만한 그릇이 아니었던 사람이 그 자리에 올라가서
여러 사람 고생시켯지,

지금도 교회 안에, 노회 안에도
그런일 자주 보네.
주소
윤여삼(경남노회, 무림교회,목사) 2020-08-25 (화) 12:07 3년전
申 목사님!

나는 姜元龍 목사와 李重表 목사의 후배라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내 그릇이, 내 됨됨이가
姜元龍 목사와 李重表 목사에게는 한창 미치지 못하고,
어쩌면 영원히 그분들을 넘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내 후배나 제자 가운데에서
姜元龍 목사와 李重表 목사 같은 사람을
아무런 질투나 시기심 없이
은퇴하기 전에, 아니 죽기 전에
키울 수 있다면, 배출시킬 수 있다면
恨이 없을 것 같습니다.

관음포 앞에 있는 李落祠에 가면
"오! 주님!
선조와 같이 옹졸한 마음이 아니라 넓은 마음을 주옵소서"라고
기원하곤 합니다.

좋으신 하나님!
내 마음을 넓혀 주옵소서 (고린도후서 6장 13절)
주소
이상호(대전노회,공주세광교회,목사) 2020-08-29 (토) 13:58 3년전
본문도 좋지만 두 분의 대화도 수준급입니다.
주소
윤여삼(경남노회, 무림교회,목사) 2020-08-29 (토) 14:02 3년전
李 목사님!
요근래 총회 회보에 글을 쓰는 張 목사님과
또 申 목사님은 우리 교단의 자랑입니다.
선배는 멀리 있고, 후배는 미욱하기만 합니다.
주소
김성곤(충남노회,평지교회,목사) 2020-09-12 (토) 10:36 3년전
【 壬辰倭亂  】
    1592년 임진년 풍신수길(토요토미히데요시)가 명나라로 들어 갈길을 빌려달라는 구실로 朝鮮에 20만 대병을 이끌고
    침략하는 전쟁으로 朝鮮의 3/2의 국토가 유린당했고,남자가 거의 죽었으며, 도와 주려고 왔던 明나라도 이자성의 난과
    오삼계가 청나라에 투항하면서 明나라는 점점 쇠퇴기에 접어들고, 일본은 도요토미히데요시가 죽고 동군 서군 으로
    나뉘어서 내전을 치루고 그 결과는 덕천가강의 동군의 승리로 영화를 누리게 됨.
    이 정도 알고 있던 저가 신 목사님의 읽기쉽고 재미나게 좋은글 올려 주셔서 더 자세히 역사를 알게 됨을 감사드립니다.
주소
hi
이전글  다음글  목록 글쓰기

츲ҺڻȰ ⵵ ȸ ѱ⵶ȸȸȸ ()ظ ѽŴѵȸ μȸڿȸ ȸ б ѽŴб ûȸȸ ŵȸ ŵȸ ȸÿ ѱ⵶ȸȸͽ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