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경비사령관과 8도도원수 의 한강방어전
왕이 피난을 가면서 서울을 지키라는 책임을 맡은 유도대장 留都大將 은 이 양원 李陽元 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수도경비 사령관이라고 할 만 하겠다.
또하나 막강한 권한을 가진 장수가 있었는데, 8도 도원수 김명원 金命元 이었다.
그 아래 부원수는 신 각 申恪 이라는 장수였다.
李와 金 두 장수는 왜군이 들어오는 걸 막아 보려고 한강에 서 싸우지마는 패하여 후퇴한다.
군사들은 다 흩어지고, 두 장수도 다급한 김에 각자 피하느라고 서로 연락할 수도 없었다.
8도 도원수 金命元은 임진강 쪽으로 도망하여 후퇴하는 병사들을 다시 수습하는 중이었고,
유도대장 이 양원 李陽元은 양주 방면으로 가서 거기서 패잔병을 모아서 다시 전투 준비를 하는 중이고,
8도 도원수의 바로 아래 장수인 부원수 신 각 申 恪 은 도원수를 따라가지 못하고 병사들과 함께 양주 쪽을
헤매다가 유도대장 이 양원 을 만나 거기서 합류하고, 잔병을 수습하던 중에 마침 南兵使 이 혼 李 渾 의 군대와
합류하여 다시 군대를 만드는 일이 잘 되고 있었다.
마침, 일본군의 정보가 들어 왔다. 한양을 점령한 일본군이 여기 양주까지 나타난 다는 얘기였다.
8도 부원수 신 각 申 恪 은 군사를 언덕길에 매복 시키고 기다린다. 거기가 바로 백석 에 있는 게네미 고개 .
드디어 일본 군들이 나타난다. 매복했던 신 각의 조선 군은 왜군을 완전히 몰살기켰다. 대승. 대승.
조선군의 첫번 째 승리였다. 기적 같은 대승이었다.
후퇴만 거듭하던 조선 군이 일본군을 이렇게 이긴 다는 게 너무 좋아서 사람들이 다 만세를 부르며
좋아 하였다. 그런 일을 위에 알리려고 곧바로 승리한 소식을 가지고 한양으로 출발한 건 당연지사다.
궁궐에는 임금님이 떠나면서, 책임자로 남겨 놓은 우의정 이 있었다.
이제 신나는 선물과 함께 나라에서 상을 주실 것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상관을 잘못 만나서 죽임을 당한 부원수,
임진강으로 후퇴한 8도 도원수 김명원 金命元은 한강방어 전투에서 패전한 것 때문에 경황이 없엇다.
이제 패전한 거에 대한 문책이 내릴 것은 명백한 데, 어떻게 하면 좋을 지 난감하였다.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마침 자기 밑에 부원수가 어디로 갔는 지 연락도 없고, 나타나지도 아니하는 걸 보고서 그에게로 책임을
떠 넘기면 될 일이었다. 그길로 장계를 올린다.
부원수 아무개가 말을 듣지 아니하고 잘못해서 패전하게 되었는데, 지금도 어디로 도망가고 오지 않으니,
이런 사람은 처벌을 원하옵나이다. 하는 상소.
자기의 바로 밑에 장수를 모함하는 글을 올리는 도원수라니, 이게 당시 조선의 실정이다.
난리 통에서 우왕 좌왕하면서 뭘 모르는 사람들, 그게 조선의 대신들이었다.
그것을 받아 본 우의정 유 홍 兪泓 은 곧바로 신 각에게 사형 명령을 내리고 선전관을 보내서 집행하라고
출발 시킨다.
아침 나절에 선전관은 사형 을 집행하려 출발하였고, 그 날 오후에 영의정에게는 승전소식이 도착한다.
핸폰이 없엇던 시절의 비극.
게네미고개 전투에서 승리한 조선군은 느닷없이 달려 나오는 선전관의 사형 집행에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엇다. 아니 승전한 장수에게 상을 내려도 아주 큰 상을 내릴 것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엇는데,
상은 고사하고 , 죽이라는 명령이 내린다니, 이게 도대체 뭐하는 거냐. 여보시오 이게 무슨 나라란 말이요,
뭘 몰라서,서둘러 선전관을 달려 나가게 한 우의정은 발등을 찍은 걸 탓하며 다시 사람을 보냈지마는 가보니,
벌써 목이 잘린 후였다.
아하 이런 다니까. 이게 조선 정부의 책임자들이라는 분들이 하는 일이라고.
그후에도 8도 도원수 김명원은 임진강 전투에서 일본군의 유인 작전에 속아서 쓸만한 장수와 사병들을 다 강물에 빠뜨려 죽게 하고 , 자기만 피하여 살았고, 전쟁 후에는 출세도 하였으니, 판서도 네번이나 하고 나중에는 정승도 한다.
충성스러운 장수 우리야를 함정에 빠뜨려 죽게 한 죄는 없어지지 아니하고 가해자인 다윗왕가를
계속 따라 다니는데, 이런 무지막지한 일을 저지르는 조선은 무사히 그냥 지나가게 하시려는가.
그 임진강 전투에서는 탄금대에서 전사한 신립 申砬 장군의 동생 신 할 申 石+吉 장군도 전사한다.
왕실에 보이기 시작하는 징조
적손 嫡孫이 끊어지고 있었는데, 아무도 그 원인을 아는 이는 없었다.
조선에서 적손 이라는 건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성경도 그렇다.
적 嫡 이라는 의미는 정당한 결혼 관계를 말한다.
대체로 초취 부인에게서 나는 자녀들 을 嫡 손이라고 한다.
초취 부인이 유고가 되어 재혼한 부인은 초취 부인과 같은 법적인 효력을 가진다.
그 자손들도 적손이 되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적손들은 뭐든지 다 제한이 없이 자격이 주어진다.
개인의 가정에서도 그렇고, 왕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정당한 절차에 따라 중전의 자식들은 대군 大君 이 되고, 그 나머지 여인들
빈 嬪 이나 후궁에게서 나면 大 라는 글자를 빼고 군 君 만 붙인다.
어느 날 부터인가 조선 왕실에 왕통을 이어갈 대군 大君이 사라지고 서손 庶孫 들만 남게 된다.
여기에는 말없이 지켜 보시는 분이 있어서, 그렇게 하면 혼난다고 하는 경고가 들어 있었던 게 아닌가.
우리는 조선 왕실에 대하여 내부 사정을 다 알지 못한다.
어떻게 해서 중종 中宗 의 서손 중에서도 맨 끝에 있는 일곱 번 째 아들네 집에서 선조를 데려 왔는 지 모른다.
왕이 될 순번이 아닌 사람이 왕으로 추대 되니 , 그 아버지는 당연히 대원군이 된다 .
그렇게 해서 선조의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났는데, 덕흥 대원군이라는 대접을 받게 된다.
중종의 원자가 인종 仁宗 이 되어서 8 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고, 그 아우 명종 明宗 이 다음 왕이 되고
그 후손이 없어져서 멀리서 구해 온 왕이 선조 宣祖였는데, 여러 사람 죽이는 일만 계속 하였다.
그 때 임금을 임금 되게 해 보려고 수고한 대신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퇴계 이 황 李滉 으로 부터 율곡 이 이 李珥 까지 조선의 어진 사람들은 다 그 시대에 옆에 있었다.
그런데도 사람이 되지 못한 채 뭐가 뭔지 몰라서 무죄한 피를 흘리는 일을 그렇게 저지르고
아까운 신하들만 귀향 가고 , 조선의 예레미야 율곡선생의 예언은 배척 당하고,
무죄한 피를 흘리면 반드시 화가 온다.
조선에 28 왕이 있었다고 한다.
그 왕들이 살아 있을 때, 백성들을 잘 살 수 있게 했느냐 하면 그렇다고 하기는 어렵다.
세종대왕을 성군이라고 말한다. 그 한 분 정도를 빼고 나면 나머지는 뭐라고 말할 수 없다.
조선의 건국에서부터 임진 왜란 까지가 절반 정도를 지나는데, 무죄한 피를 흘린 게 너무 많다.
선죽교에서의 정몽주 鄭夢周의 죽음으로부터 두문동 72 현의 부르짖는 탄식을 다 듣고 계신다.
건국 초에 왕자들의 난에 서 흘린 피는 왕실 내부의 형제들의 일이라고 하더라도 ,
문종이 죽고 그 동생 수양대군이 세조가 되는 과정에서 부터 벌어지는 참극은 그냥 지나 갈 수가 없는
피흘림이 아닌가.
그 중에서도 6신들의 죽음은 하늘도 땅도 다 울고 , 산천초목이 울고 있는 일이 아닌가
그 뒤에 세조의 아들들에게 다가오는 재앙으로 부터 인수대비의 음모에 의한 폐비 윤 씨의 죽음은
머잖아 다가올 네 번에 걸친 대 학살을 예고하는 일이 아니었던가.
一婦 일부 含怨함원 이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던데,
역사는 언제나 흉악한 것들이 선량한 이들을 선수 쳐서 죽이는 일로 진행되어 왔다.
그 억울한 죽음에 대하여는 , 그 원한 맺힌 피의 호소를 듣는 이가 계신다.
아무도 모르는 거 같았지마는 아벨의 피의 호소를 하늘은 다 들으시고, 범인 되는 형 카인을 엄히
꾸짖으신다. 예나 지금이나 그 하늘은 변함이 없으시다.
그런 일을 저지르는 왕실에 드디어 레드 카드가 뜬다.
적손이 없어지게 되는 재앙이, 지금부터 나라가 없어질 때까지 계속되는 걸 보게 된다니,
그 처참한 왜란이 끝나고, 조선에는 처음으로 현실에 눈을 뜬 임금이 생겼으니,
광해군 光海君 이었다.
어둡고 어두웟던 왕들의 시대, 그 런 속에서 뭐가 뭔지를 알아 보려고 했던 왕, 광해군 이
임금이 된다. 이제는 세상이 달라질 수 있을 까.
태풍 바비 가 조용하게 지나가던 날
평지교회 흰 쾨끼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