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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백양교회와 아름다운 펜션?

이상호 (대전노회,공주세광교회,목사) 2021-05-08 (토) 11:56 2년전 1669  

강진 백양교회와 아름다운 펜션?


2021. 5. 3(월) 정종영 목사와 함께 장흥 제암산을 등산하고 저녁에는 강진군 병영면 백양2길 43-5에 위치한 백양교회(정 목사 시무)를 찾았다. 단순한 시골교회인 줄 알았는데 무려 120년의 역사와 지역 향토문화재로 지정받은 교회였다. 정목사가 부임한 지는 15년 째(2006. 4)로 늦은 밤인데 하루 종일 요양보호사 일로 피곤할텐데 차삼심(녀) 사모가 직접 지은 맛난 집밥을 잘 먹었다. 그야말로 직접 키운 농산물과 먹거리로 만든 차사모표 밥이다. 우선 다음은 백양교회 약사이다.


백양교회의 설립자는 김형석(1857-1927)으로 전해진다. 그의 부친이 경상도 곤양의 군수(종4품) 예조참판(정품) 당상관을 역임했다. 그의 아들인 형석도 경상도 간성 현감을 거쳐 사헌부 감찰을 지냈고, 말년에는 통정대부 당시 사헌부 감찰관으로 재직했다. 일설에 의하면 형석 씨가 과거를 위해 한성에 갔다가 기독교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백양교회의 설립연대는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첫 세례교인이 1903년, 세례를 받았고, 학습기간을 거치고 1년 이상의 출석으로 장로로 세워진 것을 기초로 하여 1901년경으로 추정한다.


전용 예배당은 1907년 건축하였고, 1908년 상량을 함으로 현재 개조하여 사택으로 사용 중인 건물이다. 상량문이 그대로 살아있고 석가래가 예쁜 작고 아담한 건물이다. 초창기의 당회록을 분실하였기에 더 이상의 이야기는 주축에 의하여 전개된다. 1920-1935년 전성기를 거쳐 오면서 개화에 앞장서 학당을 세우고 개화 운동에 일익을 감당하기도 했다. 당시 교회의 청년들은 유학으로 학구열이 최고조에 달했다고 한다.


백양교회는 초기 한국인 목사가 당회장을 맡았고, 금화학당을 설립하여 개화의 불을 지폈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1935년 개량서당으로 이름을 바꾸어 경영하라는 일제의 명령에 불복하여 많은 사람들이 학당을 떠나게 된다.


1916~1950년 승학수 목사는 민족상잔의 6.25 전쟁 때 교회를 지키다가 순교를 하게 된다. 당시 김익두 목사를 초청하여 부흥회를 할 수 있을 정도로 활발하였다. 1937년~1945년 까지 일제하에서 침체의 위기를 겪기도 한다. 1937년 중일 전쟁의 역사를 거치면서 교회는 파란의 역사 속으로 빠지게 된다. 항일민주 운동, 민족문화 수호운동, 신사 참배 거부운동 등 투쟁기를 거친다.


그리고 8.15 해방을 맞으며 다시 발돋움을 하게 된다. 1957년 해방 후 백양교회는 회복의 단계를 거쳐 농촌문고 설치, 사회봉사, 조기 운동 등으로 회원 수를 불려나간다. 1958년 호헌총회를 거치면서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에 속하게 된다. 1960년부터 교회가 생동하여 강주원 목사를 중심으로 농촌교회 자립방안을 모색하는 작업으로 교회당 주변에 감나무를 식재하고, 새싹회를 조직하여 자립정신과 개척정신을 함양하게 된다.


1980년~1992년 조규대전도사 시무 동안에는 교인 수가 증가하여 6년 동안 세례교인 수가 33명으로 증가하여 힘을 펴기 시작했다. 한 때 280명이라는 교인수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 정종영 목사가 부임해서는 농촌 인구가 급감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촌교회를 활성화하기 위해 2009년에는 어머니 박암수 권사를 기리고 모교회를 사랑하여 평택에 사는 셋째 아들 정광석 집사의 헌신으로 교육관 35평을 짓게 되었다. 2011년에는 6월 23일을 창립 111주년을 기념하였고, 2013년 9월에는 향토문화재로 지정받아 교회당을 수리하고 사택을 수리하는 중에 120년의 역사를 지켜오고 있다.


밤에는 정목사가 은퇴 후 살 집으로 안내했다. 인근 군동면에 있는 사저는 1년 전에 지은 건물로 아주 훌륭했다. 아침에 일어나 나가보니 400여 평의 정원이 너무 아름답다. 농가주택을 구입하여 건축가 처남과 함께 지은 집인데 마당엔 잔디가 파랗고 100년이 넘은 동백과 감나무 등 정원수를 살리고 각종 먹거리 채소를 얼마나 아름답게 키웠는지 이루 말로 표현할 길이 없어 사진으로 함께 한다.


게다가 사모님(효미 엄마)이 얼마나 상냥하고 친절한지 마치 친정에 온 듯 우리를 반기고 아낌없이 나누어준다. 쌀, 기름, 상추, 나물 등 채소는 얼마든지 뜯어가라고 한다. 팬션이니 손님들이 알아서 해먹어야 하는데 손수 밥을 지어서 반찬까지 들고 왔다. 이곳 강진이 친정인 사모님은 5남4녀 9남매 중 8번째로 오빠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 천성이 밝고 친절하다. 형제우애로 소문난 집안에서 자라 본래 사람을 좋아하고 목소리만 들어도 정이 철철 넘쳐난다.


정목사는 이제 곧 은퇴를 앞두고 있다. 산을 좋아하고 특히 야생화를 사진에 담아 블로그에 올리며 목회하면서 다양한 취미활동을 하면서 오직 경상도 뚝심으로 안정적으로 목회를 잘 하였다. 가을이면 꼭 단감을 보내주는 분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정성으로 가꾼 정원과 텃밭이 부럽다. 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옛 교회당























수령 100년 이상으로 보이는 감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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