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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복지)에 대한 소고

이승정 (부산노회,장산충일교회,목사) 2013-01-02 (수) 12:58 11년전 2855  
 
2013년도 복지예산이 100조 시대가 되었다는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세상 참으로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혹자는 복지는 개량적 성격을 지녔다고 말하고 혹자는 망국의 길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복지에 대한 흐름은 막을 수 없는 대세인 것 같다.
 
'복지?'
이 단어와 함께 튀어나오는 평소의 생각이 있어 스스로 정리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게 되었다.
경제적 개념정리가 부족한 사람이기에 더욱 삶의 근거가 추상적 해석을 현실화시키는 자리이기에
흔히 말하는 과학적, 사상적 개념에 맞지 않는 복지 이야기를 하고자 하니 생각이 다르고 틀린 말을 하더라도
그저 그런 인간의 이야기라고 이해해주면 좋겠다.
 
부족한 사람의 생각으로 복지는 나눔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복지에 대한 이해는 목적에 따라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이루기 위해서 생각하는 복지
자신의 고달픈 생활 현실을 변화하기 위해서 생각하는 복지
조직적 사고에 근거를 둔 복지
사상적 기반을 가진 복지
각각 생각을 말하고 있고 추진하고 원하고 있기에 복지정책을 세우는데 어려움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나는 기독교적 입장에서 복지를 말해볼까 한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복지는 시혜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복지는 아니다.
전쟁에 참여한 자들이 얻게 된 전리품을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공동체를 지키고 있던 자들에게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나누게 하였다.  당시 전쟁을 통한 전리품 획득은 참여자들에게 주어지는 특권이었는데 이를 함께 공유하게 한 것이다.  출애굽과 다윗시절에 나온다.  이런 분배의 원칙은 함께 살아야 하는 공동체에 기반을 둔 것이다.  그렇다.  복지란 직접적 전쟁 - 생산에 참여한 자와 함께 전쟁에 참여가 가능하게 하는 배경이 되는 남은 공동체가 함께 누리는 것이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본 복지는 공동체가 유지되는 나눔에 근거한 것이다.
 
여러 비판이 많이 있고 부정적인 입장에서 기독교를 개독교라 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 여러 곳에서 나눔이 잔뿌리처럼 퍼져있고 이루어지고 있는 곳은 종교 집단이고 그 중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기독교인 것이 사실이다.  비록 그 목적이 전도라는 목적과 시혜적인 입장에서 이루어지는 문제를 지적할 수 있지만 작은 교회들을 통해 드러나지 않게 나눔이 이루어지고 있고 이런 나눔은 복지적 한 모습으로 볼 수 있다.
이런 기독교에 대해서 경계심을 자극하는 이야기기가 신약성경 복음서에 나온다. 오병이어의 나눔이다.
많은 이들은 이를 기적의 입장에서 보지만 사실 이 사건은 기적이기 보다 나눔의 현실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나눔의 모습은 배고픔으로 인해 고통 당하는 이들의 마음을 공감하여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는 복지는 - 나눔은 수단이 되어서는 안되고 아파하는 이들과 공감함으로서 시작되어져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나눔 - 복지의 시작은 공감에서 시작되어야 함을 보여주고 기준을 세우신 것이다.
 
많은 정치인들이 복지를 말한다.  제도적 복지를 정착시킬려고 노력하고 있다. 많은 집단이 더 많은 복지를 요구하고 있다.
그 출발이 자신들의 이익을 얻기 위한 복지정책과 제도인 경우가 참 많다.
효율성과 효과성, 그리고 지속성을 위해서 가장 좋은 선택은 제도화시키는 것이다.
공동체가 무너지지 않고 유지되게 하는 가장 좋은 힘은 일자리와 복지가 맞다.
그러나 종교적인 입장에 서 있는 자로서 스스로 경계하는 말은 나눌 때 목적을 가지지 말라는 것이다.
아품에 공감하여 시작하라는 것이다.
늘 타인의 아픔이 가슴에 울릴 수 있도록 자신을 비우라는 것이다.
기타도, 가야금도, 북도 비어 있을 때 좋은 소리가 울려나기 때문이다.
 
신년을 시작하는 시간 마음을 모우면서......
 

함필주(충남노회,월포교회,목사) 2013-01-03 (목) 07:42 11년전
목사님의 생각이 나눔이 되어 좋은 통찰을 얻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나눔(복지)의 원칙은 함께 살아야 하는 공동체에 기반을 둔다’는 목사님의 말씀을 1월 2일 게시판을 통해 읽었습니다. 1월 3일 새벽기도회에서 헤른후트 기도서 <로중> “그 외국인 나그네를 너희의 본토인처럼 여겨라"<레 19:34>는 말씀으로 교우님들과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서천군에 253명의 다문화여성이 이주하여 살고 있습니다. 이 여성들이 농촌총각들과 가정을 이루었고 많은 자녀들을 낳았고 초등학생만도 60여명이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이 여성들은 논밭과 바다와 공장에서 땀흘려 일하고 있습니다. 지역사회와 국가공동체에 든든한 기반이 되어가는 현실을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적어도 농촌사회로 이주한 여성들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의지가 없다면 지역사회 공동체가 무너질 수 밖에 없다’는 엄연한 현실이 우리들 코앞에 놓여있습니다. 우리 교회 교우들이 이주여성들에게 시혜적으로나 측은한 마음으로 대하였습니다. 오늘 새벽에는 이주여성들과 따뜻하게 함께 살아가지 아니하면 ‘나와 너’의 삶이 무너질 수 있다는 말씀에 함께 교인들이 공감하며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목사님의 작은 나눔이(소고) 더 크게 나눌 수 있어 기쁜 마음으로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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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정(부산노회,장산충일교회,목사) 2013-01-04 (금) 11:47 11년전
함목사님!
아름다운 마음으로 함께 공감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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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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