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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침 = 사귐, 떡을 뗌 = 기도

문동수 (경기노회,밀알교회,목사) 2013-01-05 (토) 13:32 11년전 3969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A),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B), 오로지 기도하기를(C) 힘쓰니라. (2:42)
 
의외로 번역하기가 까다로운 문장이다. 쉼표(,)를 찍어 놓은 것은 원어로 카이(και)라는 대등접속사로 이어져 있다. 카이(και)는 영어의 and와 같이 사용하는 접속사이다. 그래서 ‘(A)도 하고, (B)도 하고, (C)도 하고라고 번역을 할 수 있다. 우리나라말 성경이나 영어성경은 대체적으로 이렇게 번역되어 있다. 이렇게 번역하는 것이 문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리고 현대인들의 언어 감각에도 적당해 보인다.
그러나 이렇게 번역하는 것의 문제는 (A)(B)(C)가 따로 논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르침을 받는 것과 교제하고 떡을 떼는 일, 그리고 기도하는 일이 서로 연관되지 않고 따로 논다는 것이다. 이런 결과, 현대교회는 가르침에서는 교리와 철학, 사회학, 등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자본주의가 마치 그리스도교의 근본원리인 것처럼 가르친다. 교제하는 것에서는 어떤가? 마치 적당히 인사 잘하고 지내는 것이 교제 잘하는 것이고, 속과 겉이 달라야 성도의 교제를 잘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떡을 떼는 것은 그야 말로 떡을 떼는 행위가 되어버렸다. 기도는 전혀 딴 판이다. 자기 생각을 주장하는 것이 기도가 되어 버렸다. 현대교회에서 가르침과 사귀는 일, 떡을 떼는 것과 기도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나의 번역은 이렇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에 몰두했는데, 그것은 한편으로는 서로 교제하고 함께 떡을 떼는 일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도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A) = (B) = (C)”라는 말이다. (A)가 곧 (B)이고, (B)가 곧 (C)이며, (C)가 곧 (A)이다. 가르침의 내용이 사귐과 떡을 떼는 일이고, 사귐과 떡을 떼는 것이 기도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고, 기도를 통한 응답이 가르침이다.
떡을 뗀다는 것은 무엇인가? 식구라는 말이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산다는 운명공동체라는 말이다. 혈연으로 이어진 운명공동체와는 질적으로 차이가 있는 운명공동체다. 이것이 영적인 형제자매의 관계다. 이것을 하라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누가 내 형제며, 누가 내 어머니냐?”고 반문을 하셨다.
사귐은 떡을 떼는 일과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함께 떡을 떼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알고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개방해야 한다. 이것이 사귐이다. 은총과 평화를 말한다고 사귐이 아니다. 상대방 마음 속 깊은 데까지 서로 이해해야 한다. 우리나라 속담에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이해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그래서 사귐은 용서를 전제한다. 서로가 서로를 용서하는 것이다.
공동체를 하다보면, 부딪히는 일이 부지기수다. 부딪힐 때마다 가르고 나누는 것이 현대교회의 병폐다. 부딪힐 때마다 용서를 해야 한다. 이것이 사귐이다. 용서가 없는 사귐은 세상에서 말하는 사귐이다. 사탄의 속삭임이다. 인간사는 어차피 서로가 서로에게 잘못할 수밖에 없다. 그것을 극복하자는 것이 그리스도교다. 이것을 알고 한 발을 내 딛는다면 당신은 그리스도인이다.
기도는 흔히 알고 있는 자기 자신의 욕망의 투영이나 바램이 아니다. 성경에서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는 것이고 하늘의 뜻을 묻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세상(cosmos)은 하나님의 뜻을 들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다.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하면 세상을 죽여야 한다. 내 안에 있는 세상은 무엇인가? 그것은 욕망이요, 욕심이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이드와 에고, 슈퍼에고는 모두 세상(cosmos)이다. 의식과 무의식은 모두 세상이다. 이런 것들을 모두 없애버린 상태에서만 하나님의 뜻은 나타난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가 바로 기도의 기본이다.
, 보라! 기도와 사귐이 다른 내용인가, 기도와 떡을 떼는 것이 전혀 다른 일인가? 기도하는 것이 사귀는 것이고, 떡을 떼는 것이다. 사귀는 것과 떡을 떼는 것은 기도하는 것이다. 기도하지 않고는 용서할 수 없고, 용서하지 않는 기도는 자신의 욕망의 분출일 뿐이다.
가르침은 이런 것과 관계가 있는 말이다. 초대교회에서는 교인들에게 교리를 가르칠 이유가 없었다. 어지간한 내용은 다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성경은 매일 같이 묵상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가르칠 이론이란 별로 없었을 것이고, 있다고 해도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초대교회에서 교리는 교회 안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교리는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서 말한 것이었다. 교회를 변증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 안의 가르침은 사랑이었다.
이 가르침과 서로 사귐, 함께 떡을 떼는 일, 그리고 기도가 어떤 결과를 낳는가?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것이 사도행전 244-47절까지의 내용이다.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면서,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나누어 가졌다. 그리고 날마다 한 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집마다 빵을 떼면서,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교회들마다 신천지를 비롯해서 유사기독교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유사기독교가 하는 일이 무엇인가? 교리 논쟁이다. 힘 싸움이고, 권력 싸움이다. 유사기독교에 때문에 문제가 되는 교회는 자신들을 재점검해야 한다. 교회가 사랑 밖에 다른 것이 없다면 유사기독교는 설 자리를 잃는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사기독교가 우리 교회를 흔들고 있다면, 우리 안에 사랑이 없음을 회개해야 한다.
유사기독교의 문제를 교육의 문제로 풀려고 하는 목사들이 있다. 교육이 어떤 교육이냐에 따라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한다. 사랑의 교육이라면 맞는 말이고, 이론과 교리의 교육이라면 틀려도 한참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용서하는 가르침, 진실하게 사귀는 가르침, 몸과 맘을 다해 떡을 떼는 가르침이라야 한다. 이것을 위해 세상의 몸과 맘을 버리고, 하늘의 몸과 맘을 위한 기도, 이런 것들이 바로 교육이고 가르침이다.

이승정(부산노회,장산충일교회,목사) 2013-01-05 (토) 15:37 11년전
문목사님!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깨우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에는 더욱 건강하시기 꿈꾸는 일들을 이루어가시기 빕니다.
주소
문동수(경기노회,밀알교회,목사) 2013-01-05 (토) 20:14 11년전
반갑습니다. 목사님.
올해에는 어떻게든 목사님과의 자리를 만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주소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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