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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사고는 열린 사고다

강동선 (기타,언약교회,목사) 2017-11-09 (목) 08:41 2년전 725  
비판적 사고는 열린 사고다

비판(批判,criticism,Kritic 비평(批評)은 일반적으로 인간의 지식이나 행동에 관해 그것의 진리성,유효성 등을 식별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필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정신이 사물이나 사태 혹은 존재 그 자체들에 대한 본질을 파악하기 위한 이성 활동'정도로 규정해 본다. 이는 대상이나 주어진 현상을 인식할 때  피상적인 외형이나 비 본질적인 것을 본질로 여겨 오판케 되는 것들을 제거해 나가는 사고 과정인 것이다.

어떤 경우

 " 그 사람은 매우 비판적이야"할 때  외골수거나 편협한 인간이란 의미로 규정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인간 정신의 이성작용 중 비판적 기능이 수행하는 (그 몫의) 가치를 간과한 소박성이다.
 
비판적 사고는 감정적 사고가 아니고 이성적 사고이다 성숙한 이성은 어떤 대상이나 현상에 대하여는 물론, 자신의 사고조차도  타당한가를 성찰한다. 그 반성적 사고도  비판적 사고의 일종인 것이다.

신앙하는 행위는 비판적(이성적) 사고와 대립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는 서양사에서 '이성과 신앙'이란 주제로 논란했던 주제인데, 물론 신앙은 이성을 넘어선 차원의 계시에 대한 응답이다. 문제는 이성넘어의 계시를 신앙하는 그 행위주체가 이성적 존재자로서의 인간이란 점이다.

즉,  이성적 존재자이기 때문에 그 계시를 이성이 수용하는 과정이 따르게 마련이며  이 때 그 계시에 대한 수용, 즉 '믿음' 과정에서 이성이 자기법칙대로 작동하는 질서랄까 정리된 인식구조를 통과하기 마련인데 이 과정에서 이것(비평)이 결핍되면,

샤만이나 이단 또는 심각한 주관주의의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마땅히 신앙에도 비평적 사고가 필요한 것이고 이 비평이란 이성적 작업을 하는 일이 '신학함'인 것이다.
 
이 신학작업에서 비평적 자기 훈련이 결핍됐을 때 오류를 범하게 된다. 우리 주변의 신앙 스타일이 전통적 무속의 영향과 긍정적 사고란 실용주의,광신적 열광기질 등으로 인해 비평적 사고가 설 공간이 마련돼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교회에서도 신앙의 본질에 대한 의문을 말하면 믿음 없는 사람으로 규정당할 수 있다
어떤 사회현상에 대한 성찰을 하려면 비판적 사고가 반드시 요구되게 마련이다. 하지만 비판적 사고를 통해 어떤 논리가 구성,주장되면 소박인사들이  "저 사람의 말이나 글은 항상 부정적이야" "은혜가 없어" " 남을 칭찬할 줄 몰라"  "한 쪽으로 치우친 것 같아"정도의 반응이 온다. 말하자면 값싼 '기분 좋음'정도를 은혜로 여겨온 기질의 발로인 것이다.
 
하지만 사회의 건강한 개혁이나 발전,올바른 진보, 오류나 허위, 이단을 막는일 등은 모두 비판적 사고에서 시작된다. 루터,칼빈 쥬빙글리 같은 개혁자들도 소박하고 은혜스런 인사들이 보면 은혜가 없고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인사들이며 편집적이며 강박적으로 산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 대 사도 바울도) 바울(유대교에 대해),루터,칼빈 모두가 주어진 현실에 대한 비판적 사고에서 개혁의지가 발아된 것이다.
 
예로 어떤 개인이 사회 현상을 인식하거나 이를 평가한 주장이나 글을 대할 경우 자기 내면의 콘텐츠들을 매개로 하여 평가하게 되는데 그 콘텐츠가 빈약하고 정보,사색의 경험이 일천할수록 감정적 냉소를 하거나 심리적 거부, 파당적 이해 범주를 넘지 못하게 된다.  이는 그 개인의 지적 자산이 빈곤하고 사색의 내공이 부족하기 때문인 것이다.
 
한편 비평적 사고는  사물,사태의 본질에 접근하고 미명, 어둠, 미신 등을 극복하는 계몽적 가능으로 복무하는 데 그칠 뿐  그 자체가 은혜와 진리를 담지하는 것은 아니다
비평적 사고와 함께  기도를 통해 성령의 역사,감동하시고 우리의 이성을 조명해 주시는 은혜가 수반되어야 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기도와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을 경우 비평적 사고만으로는 한계가 온다 불가지론,허무, 회의주의에 엄습당할 수 있다 

기장한신의 신학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반성적 비판이 결여된 집단은 파시즘화 하거나 섹타리안(분리종파주의)으로 추락할 수 있다  비판적 반성이 불가능한 집단은 곧 이단성향으로 가게 마련이다 자신의 내적 모순이나 결핍이 클수록 방어적이며 비판에 히스테리컬한 반응이나 투쟁적 전의를  보인다
반면 자체 모순의 폭이 크지 않은만큼 유연하고  여유롭고 반성적 비판에 개방된다

기장한신은 <다양성 속의 일치>란  구호를 외쳐왔는데 그 <다양성>이란 구실로 막가파식 해체주의가 되어 성경의 도그마를 와해시켜왔다 그러다가 <일치>라는 미명일까 누가 한신기장신학에  반성적 비판을 하면 알에르기를 보이면서 싸우려고 한다 이는 협소한 ethnocentrism (자기종족 보존 본능)인데,

바벨론이 페르샤에 정복당하기 직전인데도  벨사살이 문 걸어 잠그고 파티하며 자기도취에 빠졌던 상황과 유사한 그림일 것이다 (다니엘서5장)

기장은 비판적 반성에 열려 있어야 하고 성경도그마에 일치돼야 축복된 미래일 것이다 적어도 기장을 만들어온 선배들은 폐쇄적이진 않았다 개방적 지성이었다 그 개방성이 지나쳐 도그마를 와해시키는 단초를 제공할 정도였다

지금 와서 비판적 논의에 히스테릭 하다면 그 <개방성>이란 한가닥 유산마져 상실한 신세가 된 자화상일 것이다
비판적 사고는 열린 사고다.

안티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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