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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원로목회사 대상'을 수상하신 유연왕 목사님

한신대학교 (기타,,기타) 2018-01-05 (금) 13:43 2년전 2397  
[한신대 소식- 화제의 한신인]

한국기독교원로목회자재단에서  지난해 12월 20일  '자랑스러운 원로목회자 대상' 수상자로 유연왕 목사님(신학과 72학번)을 선정했습니다.  이에 올해 1월 5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AW컨벤션센터에서 진행된 ‘제5회 한국교회 원로목회자의 날’ 행사에서 농어촌선교부문에서 당당히 대상을 받으셨습니다.

 

유연왕 목사님은 우리 대학 신학과 72학번 출신으로 목회 은퇴 후 경기도 가평에 ' '을 설립해 신앙공동체와 쉼터를 제공하고 계신데요. 이 쉼터 운영 수익금 중 일부를 학교 장학금으로 기부하시고 계십니다. 

 

현재 기부금이 1천만 원에 이른다고 하네요.  

  

앞으로 한국교회를 이끌 목회자와 교회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서 신학교 설립도 추진 중이라고 하시는데요,  여러분, 축하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 ' 캠핑장 (경기 가평군 북면 가화로 1725) 정보를 알려드리니, 많은 이용도 부탁드립니다. 

  

제5회 한국교회 원로목회자의 날 기념사진

▲ 유연왕 목사(왼쪽)가 한국기독교원로목회자재단 이사장 임원순 목사(오른쪽)와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월간 AD 문화광장"에서 유연왕 목사님을 자세하게 소개한 글이 있어 함께 나누기 위해 올렸습니다.

국민일보의 관련 기사(클릭)도 함께 읽어보세요.

 


 

 

"하나님 계신다면 하나님,

나로 하여금 당신을 알게 하소서"

 

'무지개서는 마을' 유연왕 목사 (영신교회 원로)

 

유연왕 목사님 사진

 

어느 교회를 섬기고 은퇴를 하셨어요?

 서울 영등포에 있는 영신교회 전도사로 가서 그곳에서 21년을 목회를 했다. 65세에 은퇴를 하고 그토록 오래 꿈꿨던 '무지개서는 마을'을 세웠다. 70세에 은퇴를 하면 원하는 것을 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교회의 모든 혜택을 포기한 것은 그것보다 더 큰 이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에덴 회복이다. 인간다운 인간회복, 우리가 그렇게 살고 그것을 전하자는 생각이다.

 

이곳에서는 어떤 일을 하시려고 합니까?

 사람은 반드시 사람다워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인성과 예수그리스도가 함께 있어야 한다. 은퇴 후 가나안농군학교에 갔다. 대학 시절에 이런 농업공동체를 꿈꾸고 김용기 장로님을 만났었다. 그리고 15년전에 다시 그곳에 가서 훈련도 받고 아드님이신 김범일 장로와 지난 이야기도 나눴다. 젊은 시절 그곳을 찾아간 나에게 김용기 장로님께서 '운명적 동지를 구하라. 같이 일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많았으나 끝까지 함께 한 사람이 없었다. 오직 아내뿐이었다. 운명적 동지가 있어야 일을 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을 이해할 수 없었던 기억이 난다.

 

 34에 결혼을 했는데 평생 살다보니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곳에서 지도자를 양성하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학교를 세워 단계적인 교육을 받아서 많은 사람들에게 참인간을 깨닫게 하는 사역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참인간이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어야 한다. 특별히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 지도자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가나안농군학교의 과정은 근면과 창조다. 이러한 것을 더 구체적이고 신앙적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목표다.

 

 

무지개서는 마을

 

 

언제부터 이런 꿈을 가지셨어요?

 중3때 6.25가 나서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 부모님이 다 돌아가셔서 누님과 함께 생활했다. 학교가 미션학교여서 필수과목에 성경이 있었고 수업이 끝나면 기도로 마쳤다. 어느날 나는 성경시험에 백지를 냈다. 성경에는 믿을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믿을 수 없는 것도 있었기 때문이다. 나무라시는 선생님께 '날보고 거짓말하라는 것이냐. 하나님을 믿을 수 없는데 답을 쓴다면 그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항의했다. 사람은 착해지려고 하나님을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성경말씀이 좋고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했지만 하나님이 실제로 계시다는 것은 믿을 수가 없었다. 존경하는 선생님들이 모두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고 말을 하지만 나는 의심이 들었다. '선생님들은 좋은 사람들인데 그들이 용기가 없어서 하나님이 없다는 말을 못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믿을 가질 수 없었다. 부모도 없는 내가 잘못된 길로 가면 안된다는 생각이 컸다. 친구들은 북쪽에서 피난 온 아이들도 있었다. 크리스마스 때 아브라함과 사라의 성극을 하였는데 그것을 보면서 교회에 빠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설교를 들으면 없는 하나님이 있는 것처럼 들릴 것 같아 교회를 멀리했다. 나는 내 스스로 붙잡았다. 의지할 곳이 없어 교회를 나가야 할 것인데 갈등했다. 결론은 교회에 나가지 않고 내가 하나님을 연구해서 그때 교회에 나가겠다라고 생각했다.

 

 연합집회 때 감리교 감독으로 있던 조신일 목사님께서 광복교회에서 설교를 하는데 나보고 하는 말 같았다. '사과를 알려면 사과를 먹어봐야 한다. 교회에 나가야 하나님을 알지 교회 밖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알겠느냐' 그렇다. 그래서 교회를 나가기로 결심했는데 기한을 정해 일 년만 교회에 나가기로 결심했다. 일 년 안에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면 그대로 다니고 아니면 교회에 나가지 말아야 한다. 생각했다. 교회에서 친구를 사귀었는데 평생의 동지 같았다. 우리는 일생을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을 위해 살자고 다짐하고 낮은 자의 친구가 되기 위해 노온으로 돌아가 농촌운동을 하고자 했다.

 

 방학이 되는 날 교회에 모여 성경을 읽고 돌아가면서 은혜 받은 이야기를 했다. 기도할 때 나는 의심이 들어 있었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기도 때문에 다툼이 생겼다. '하나님 계신다면, 하나님 나로 하여금 당신을 알게 하소서'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이라는 단서를 단 기도는 어느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자연스럽게 기도를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방학이 끝나고 있었다. 그때 우리에게 낮은 자는 농민이었다. 먹지도 배우지도 못한 농민을 위해 아름답고 선한 일을 하자. 의기투합하여 우리는 갖자 맞은바 역할을 정해 노력하기로 했다. 지도자가 되려면 대학을 나와야겠다. 농촌에서 지도자가 되려면 농과에 가자. 교육이 필요하다 그래서 사대를 가자. 한사람은 우리가 믿음으로 해야 하니까 목사가 되자. 내가 목사가 되겠다고 자원했다. 목사가 되려면 신학이외의 것을 해야 한다. 우리는 원칙을 정했다. 대학까지만 공부하고 무조건 농촌으로 간다. 더 이상 공부도 하지말고 취직도 하지말고 무조건 가자는 원칙이었다. 나는 먼저 철학을 공부하기로 했다. 나는 가난해서 학교에 다니면서 돈을 벌었다. 공부를 많이 하지 못했다. 두 친구들은 모두 서울대 농대와 사대를 붙었지만 나만 떨어졌다. 형편상 재수를 할 수 없어 그 때 마침 평양에서 내려온 숭실대가 있어 철학과에 입학하였다. 그곳에서 안병욱교수와 김형석교수를 만났다. 좋은 스승들을 많이 만났다. 그곳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의 목표가 정립되었다.

 

 

무지개서는 마을

 

그런 꿈을 어떻게 실현하셨어요?

  전국을 돌아다니며 공동체를 할 수 있는 땅을 찾아 다니다가 강원도 홍천에 들어갔다. 50정보가 되는 커다란 땅이었다. 국유지를 이용하여 가나안농군학교와 같은 공동체와 농촌지도자 교육을 위한 꿈은 가슴을 뛰게 했다. 그러나 농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친구가 농협이 설립되면서 그곳으로 가버리는 바람에 혼자 남게 되었고 그 지방의 군수와 마찰을 빚으며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그때 유달영 선생님께서 많은 도움을 주셨다. 그러나 정부는 멀고 군은 가까웠다. 이웃을 위해 살겠다고 하면서 이웃과 싸움을 하면서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내가 물러났다. 그리고 나의 꿈은 경기도 송추로 옮겨지게 되었다.

 

신앙은 어떻게 하셨어요?

  땅을 마련하고 그곳에서 일을 시작하려고 할 때 위암말기가 왔다. 배가 남산만큼 불러오고 통증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밥도 못 먹고 물도 넘길 수 없었다. 9년 만에 대학을 졸업하고 이제 시작도 못하고 죽는구나 생각하니 신세가 정말 처량했다. 병원에 갈 돈도 없었고 제대로 치료할 방법도 없었다. 그때 많은 신유 은사자들이 있었다. 아내가 이천성 목사님께 나를 데리고 갔다. 아내는 결혼 전에 폐병이 있었는데 목사님께 기도를 받고 나았던 과거가 있었다고 했다. '하나님 마지막 이 기도를 들어주세요. 저를 살려주시면 주님과의 첫 약속을 지키고 목사가 되겠습니다.' 기도를 받고 하루 만에 식욕이 있고 두 번째 기도를 받고 나음을 얻었다. 한신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목사가 되었다. 금식과 기도는 나를 신앙 안에서 성숙케 하였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확실히 할 수 있었다. 40일 금식 후 학교에 갔을 때 지도교수는 금식에 대한 논문을 썼으면 좋겠다는 권유를 하셨고 나는 박사논문으로 금식에 대한 신학적 체계를 썼다.

 

 

유연왕 목사님

 

그렇게 하나님을 만나고 그대로 순종하셨나요?

  신학을 하려고 할 때 가족을 두고 가장이 공부를 한다는 것이 너무 힘이 들었다. 집회에서 하나님께서 '왜 베드로가 물에 빠졌는가? 누가 바다 위를 걸어갔는가. 베드로는 '가기를 원하나이다' 주님께서 부르시면 가면 되겠다. 그렇게 결심하고 집에 왔을 때 송추에 있는 땅을 사겠다는 사람의 전화를 받았다. 큰돈을 받고 땅을 팔아서 학교 옆에 집을 사고 학교를 큰 걱정없이 다닐 수 있었다. 모든 것이 기적의 생활이었다.

 

 이제 83세가 된 유연왕 목사님은 하나님과 사람앞에 그토록 꿈꾸던 목회의 시작을 이곳에서 펼치는 것이다. 이곳에는 보은정이라는 건물이 있다.  "이 집은 무지개서는 마을, 하늘에 아름다운 언약의 무지개 이루기 위하여 하나의 청아한 물방을 되신 여러분의 집입니다." 라는 작은 푯말 밑에 함께 한 동역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무지개서는 마을' '숲속의 교회' 표어는 낙원 회복이다. 잃어버린 동산의 좁은 문이 계곡의 물소리가 되어 세상을 향한 손짓을 하고 있었다.

 

[출처]-격월간 A.D. 문화광장 2017년 11월호 p8~11에서

 

 

 

 


이상호(대전노회,공주세광교회,목사) 2018-01-05 (금) 21:25 2년전
감동입니다.
애쓰셨습니다.
무지개서는마을 가보고 싶습니다.
내내 강건하소서.
주소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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