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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7장14절은 예수 처녀잉태 예언 아니다

서옥식 (서울동노회,대청교회,집사) 2013-12-19 (목) 23:17 5년전 8466  
이사야 7장14절은 예수 처녀잉태 예언 아니다
마태복음의‘예수 동정녀 탄생 예언’실현은 오역과 오해가 불렀다
▲ 크리스마스가 가까이 다가오면서 국내 거의 모든 교회들은 성탄의 의미를 되새기는 가운데 구약성서 이사야 7장 14절이 700여년전에 이미 예수의 동정녀 탄생을 예언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이 구절은 당시의 역사적 배경, 그리고 전후 문맥을 면밀히 고찰해 볼 때 예수의 동정녀 탄생과는 전혀 무관한 구절임을 알 수 있다.
예수가 ‘동정녀 마리아’(Virgin Mary)에게서 태어났다고 말하는 근거는 마태복음 1장 23절에 나오는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개역개정성경, 이하 같음)이란 구절이다. 이 구절은 구약성경 이사야 7장 14절에 나오는 말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마태가 이사야의 해당 구절을 오역, 오해한 것으로 보인다.
마태복음은 하나님의 사자가 요셉의 꿈에 나타나서 약혼녀 마리아의 임신이 이사야 7장 14절의 성취라고 알려주고 있다. 마태복음의 기자는 그 구절을 그리스어(헬라어)로 번역된 70인역에서 그대로 인용한 것인데 70인역에는 파르테노스(parthenos) 즉, ‘처녀’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원문인 히브리어 성경(Tanakh)에는 알마(almah) 즉, ‘젊은 여인’이라고 기록돼 있다. 히브리어로 ‘처녀’는 ‘베튤라’(bethulah)로 ‘젊은 여인’을 뜻하는 ‘almah’와 구분하고 있다. 따라서 히브리어판을 헬라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오역된 것을 그대로 인용, 이것이 ‘처녀 잉태’(virgin birth) 예언이라고 인용됐다는 것이다. 실제 이사야는 처녀란 단어가 필요한 구절에서는 처녀의 정확한 히브리 단어인 베튤라(bethulah)를 사용, 젊은 여자와 구분했다. 개역성경이나 표준새번역의 난외 주, 또는 주석성경에 보면 ‘젊은 여자’ 또는 ‘젊은 여인’이라고 언급돼있음을 알 수 있다. ‘젊은 여인’과 ‘처녀’(결혼안한 여자)는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다. ‘처녀’(virgin)가 ‘젊은 여인’(young woman)일 수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영어성경들은 ‘처녀’(virgin)와 ‘젊은 여자’(young woman)로 서로 다르게 번역하고 있다. ‘처녀’로 번역된 성경은 KJV(King James Version), NIV(New International Version), ASV(American Standard Version), DBY(Darby Bible), YLT(Young's Literal Translation of the Bible)등이고 ‘젊은 여자’로 번역된 성경은 BBE(Bible in Basic English), NEB(New English Bible), NET(New English Translation), NJB(New Jerusalem Bible), RSV(Revised Standard Version) 등이다.
그러나 이사야 7장 14절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앞으로 올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구절이 의미하는 것은 ‘처녀 잉태’ 자체를 강조하기 보다는 처녀(젊은 여자) 잉태로 태어난 아들이 그의 이름 ‘임마누엘’(Immanuel = God is with us)이 갖는 의미처럼 하나님이 유다왕국과 함께함으로써 유다를 위협하고 있는 아람(수리아, 오늘날의 시리아)과 북이스라엘 동맹세력이 망할 것이라고 하는 예언에 있다. 실제 수리아와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멸망하게된다. 영어성경을 보면 7장 14절의 ‘태어날 아이’(a son)는 15절에서 ‘He’, 16절에서 ‘the boy’로 연결되면서 예수가 아님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이사야 7장의 역사적 배경은 BC 720-730년대로 유다왕 아하스(Ahaz) 때에 아람 왕 르신(Rezin)과 르말리야의 아들인 이스라엘 왕 베가(Pekah)가 예루살렘을 공격했던 때다(7장 1절). 비록 예루살렘성은 함락되지 않았지만 유다왕국은 언제 또 있을지도 모를 아람과 이스라엘의 공격위협에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당시의 지리로 유다(Judah)는 ‘남이스라엘 왕국’, 아람(Aram)은 ‘수리아왕국’, 베가왕의 이스라엘은 ‘북이스라엘왕국’(에브라임, Ephraim)을 가리킨다.
그 때 여호와께서 아하스왕에게 구원의 징조(a sign)를 주겠다고 약속하지만 아하스는 징조 구하기를 거절한다. 아하스는 징조를 구하는 것은 여호와를 시험하는 것이기 때문에 구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야가 여호와께서 친히 징조를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 때가 되면 엉긴 젖과 꿀을 먹을 것이라 대저 이 아이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기 전에 네가 미워하는 두 왕의 땅이 황폐하게 되리라/이사야 7장 14-16절”(⑭Therefore the Lord himself will give you a sign: The virgin will be with child and will give birth to a son, and will call him Immanuel. ⑮He will eat curds and honey when he knows enough to reject the wrong and choose the right. ⑯But before the boy knows enough to reject the wrong and choose the right, the land of the two kings you dread will be laid waste.)
이 성경 대목은 예언자 이사야가 아하스에게 아람과 이스라엘(북이스라엘)이 유다와 전투를 벌이지 않게 될 것임을 확신시키는 내용이다. 즉, 예언자가 아하스에게 젊은 여인이 곧 임신을 해서 아들을 낳을 것인데, 이때가 되면 정치적인 위험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대목이다. 이사야 8장 3절에 따르면 이 예언은 이사야의 아내가 아들을 낳음으로써 성취된다.
구체적으로 지적해보면 “보라 처녀(젊은 여인)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The virgin will be with child and will give birth to a son, and will call him Immanuel.)는 성경구절에 나오는 ‘아들’(a son)은 바로 다음 구절의 ‘그’(He)와 그 다음 구절의 ‘이 아이’(the boy)를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15절의 ‘그’와 16절의 ‘이 아이’는 14절에서 태어난 아들, 즉 임마누엘을 가리킨다.
‘이 아이’는 유다의 왕과 백성들이 두려워하는 다메섹(시리아 수도, 오늘날의 다마스커스)과 사마리아(북이스라엘 수도)의 왕이 각각 멸망한다는 하나님의 예언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인물인 만큼 두 왕이 죽기 전에 태어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이 아이’가 철들기 전에 유다가 두려워하는 두 나라 왕이 멸망한다는 예언은 실제로 성취된다. 그렇다면 ‘이 아이’는 두 왕이 멸망하기 전에 태어나서 철이 들어야 하는 어린 아이로 성장해야 하기때문에 이사야 당대에 아이를 낳은 여인이 어떻게 마리아가 될 수 있다고 보겠는가. 마리아가 이사야의 시절에 태어났다가 다시 예수를 잉태하기 위해 죽었다가 또다시 태어났다면 모를까. 더구나 ‘이 아이’도 나이 들어 죽었을 텐데, 그 당시에 나서 죽은 사람이 어떻게 수백년 후 예수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이 아이’가 예수가 되고 그 여인이 마리아가 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얘기인가?
결론적으로 이사야 7장 14절의 내용은 예수의 탄생에 관한 예언이 아니다. 이는 이사야 당시 태어난 어떤 아들이 철들기 전에 유다가 두려워하는 두 왕이 급속도로 폐하여진다는 예언의 내용이다. 왜냐하면 “이 아이가 내 아빠 내 엄마라 부를 줄 알기 전에 다메섹의 재물과 사마리아의 노략물이 앗수르왕(king of Assyria) 앞에 옮겨질 것임이라 하시니라”(이사야 8장 4절)고 하여 아이가 철들기 전에 이루어질 것이라 하신 하나님의 예언이 앞에 나오는 7장 16절의 “이 아이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기 전에 네가 미워하는 두 왕의 땅이 황폐하게 되리라”는 예언의 내용과 완전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대로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태어난 아이가 철들기 전에 두 왕이 폐위되었으니 하나님의 예언 성취를 중심으로 볼 때 이사야의 둘째 아들과 이사야 7장 14절의 임마누엘은 동일인임을 알 수 있다. 언어학적으로도 ‘젊은 여인’(ha'almah)의 앞에 정관사(ha)가 있기 때문에 이사야와 아하스왕이 잘 알고 있는 여인이란 것이 된다. 따라서 이미 성취된 예언을 가지고 앞으로 7백여년 뒤에 성취될 예수의 탄생과 결부시켜 예수의 탄생에 대한 예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이 아이의 정체를 성경에서 찾아보면 이어지는 8장 3절에 나오는 바, 이사야가 그의 아내와 동침해 낳은 둘째 아들 ‘마헬살랄하스바스’(Maher-Shalal-Hash-Baz)이다. 이 대목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징조(a sign)를 자신에 적용한 것이다. 그 이름도 임마누엘에서 마헬살랄하스바스로 바뀌었다. Maher-Shalal-Hash-Baz는 직역하면 ‘급히 빼앗다’(plunder speedily, hurry to the plunder)는 뜻으로 두 나라가 급속도로 멸망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그리고 아이를 낳은 여자가 이사야의 아내인 만큼 처녀가 아니라는 것은 너무나 분명해진다. 이사야가 같은 그의 글에서 왜 처녀라는 부분에는 정확히 ‘베튤라’를 사용하면서도 유독 7장 14절에는 ‘알마’를 썼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것은 이 여인이 남자를 아직 모르는 숫처녀라는 의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 이 예언은 BC 720년에 이루어졌고 르신과 베가가 유다를 치기위해 동맹을 체결한 해는 BC 약 730년경이다. 역사적 사실에 의하더라도 이사야의 둘째 아들 마헬살랄하스바스가 태어난지 2년 뒤인 BC 732년에 북이스라엘의 베가왕과 아람의 르신왕은 죽임을 당한다. 앗수르(앗시리아)가 수리아(시리아)를 정복하고, 에브라임(북이스라엘)을 침공했기 때문이다. 이는 유다를 위협하는 수리아와 북이스라엘을 앗수르가 칠 것이라는 예언이 예수 탄생 700여년전에 성취된 사건임을 의미한다. 이러한 예언은 열왕기하 16장 7-11절에도 성취돼 나온다.
한편, 7장 14절의 처녀잉태설을 정당화하기 위해 교계 일부에서 이 절의 임마누엘이 바로 이사야 9장 6절의 ‘한 아이’(a child)와 동일인물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 또한 억지에 불과하다. 7장 14절의 아이는 이미 이사야 당대에 태어나 예언이 성취된 인물임이 밝혀졌는데, 당시 태어나지도 않은 예수님이 어떻게 7장 14절에 나오는 인물과 동일인물일 수 있겠는가?
마태는 이사야에 등장하는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이라는 말 때문에 이를 예수님과 동치(同値)시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성서에 등장하는 이름들은 거의가 하나님과 연관돼 있다. 예컨대 이사야(Isaiah)란 말은 ‘여호아는 구원이시다’(YAHWEH is salvation), 예레미아(Jeremiah)는 ‘여호와께서 세우시다’(YAHWEH has uplifted/God will raise up), 엘리야(Elijah)는 ‘나의 하나님은 여호와이시다’(My God is YAHWEH)란 뜻이다. 성경속에 ‘임마누엘’은 구약성서에 두번, 신약성서에 한번 언급된다. 구약의 두번이란 바로 이사야 7장 14절과 8장 8절이고 신약의 한번이란 이사야 7장 14절을 인용한 마태복음 1장 23절을 가리킨다. 그러나 구약 두 곳에서는 전혀 700여년후에 태어날 예수님을 암시하지 않는다. 신약의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등 다른 세 복음서에도 ‘임마누엘’이란 호칭은 없다. 예레미아나 엘리야 등 구약의 다른 선지자도 메시야에 대한 예언에서 ‘임마누엘’이란 말은 사용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태는 예수님을 임마누엘의 실현이라고 증거한다. 다만 이사야 9장 6절의 내용은 미가 5장 2절 이하의 예언과 함께 이사야 이후 몇 백년 후에 성취될 예수님의 탄생에 관한 예언을 가리킨다고 한다.
마태복음 1장 23절에 대해 ‘가톨릭 백과사전’(The Catholic Encyclopedia)은 “현대 신학은 이사야 7장 14절이 그리스도의 동정녀 잉태에 대한 예언이라는 것을 인정 하지 않는다. 따라서 성(聖) 마태가 ‘보라 처녀가 잉태 하여 아이를 낳으리니 그 이름을 ...’ 한 것은 이사야 구절을 잘못 이해한 것으로 판단된다.”(Modern theology does not grant that Isaiah 7:14, contains a real prophecy fulfilled in the virgin birth of Christ; it must maintain, therefore, that St. Matthew misunderstood the passage when he said: “Now all this was done that it might be fulfilled which the Lord spoke by the prophet, saying; Behold a virgin shall be with child, and bring forth a son, etc.”) 고 밝히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부 우리말 성경은 이사야 7장 14-16절이 ①아하스 시대에 젊은 여자가 낳은 아들이 성장할 무렵 두 대적(아람과 북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할 것이라는 예언 ②장차 동정녀에 의해 태어날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마태복음 1장 23절에 의한) 등 2중의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성경 구절의 의미가 이렇게도 되고 저렇게도 되는가라는 비판을 받게된다.
***첨기***
이 글을 쓴 목적은 예수의 성령 동정녀 잉태를 부정하기위한 것이 아니라 이사야 7장 14절이 700여년후에 있을 예수의 처녀잉태를 예언한 구절이 아님을 지적하기 위한 것이다.

유양수(전북노회,동산교회,장로) 2013-12-22 (일) 00:36 5년전
글이 너무 붙어있어 읽기가 힘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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