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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난민 세이드씨가 이제 일을 할 수 있다>

홍주민 (충북노회,한국디아코니아,목사) 2020-03-18 (수) 02:24 6개월전 300  

<이집트 난민 세이드씨가 이제 일을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외국인이 살아가려면 외국인 등록증이 있어야 한다. 한국인에게 주민등록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듯이 말이다. 하지만 난민들 가운데 이 증명서가 없이, 아니 빼앗긴 채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이들의 존재는 한마디로, 유령이자 비존재다. 있지만 없는 존재다.

내가 이집트 난민 세이드씨를 만난 것은 2019년 여름이었다. 팔에 깁스를 한 채 케밥집에 온 세이드씨는 아르바이트하다가 떨어져 골절상을 입었다 하며 자신의 히스토리를 말해 주었다. 그에겐 증명할 아무것이 없단다. 손에 들고온 A4용지하나가 전부다. 거기엔 출국기한유예 허가통지서라는 제하에 3달내에 출국하지 않으면 강제퇴거될 수 있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취업불가라는 여권의 스탬프도 보여주며 잔뜩 긴장한 얼굴로 주변을 경계하며 케밥집에 있다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얼마 후 다시 온 세이드 씨는 자신이 다시 체류연장을 해야 하는데 주소지를 둘 곳이 필요하단다. 그래서 수원 난민쉼터에 주소지를 둘 수 있냐고 하여 바로 주민센터에 가서 등록을 해 주었다. 정말 예수가 머리둘 곳이 없다고 하였는데, 예수를 만난 기분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 그리스어로 프토코이(ptokoi), 예수는 하나님 나라가 저들의 것이라 하였는데, 실제 아무 것도 없는 난민들을 만나면서 내 신앙의 불은 타올랐다.

이렇게 인연이 된 세이드씨와의 인연은 오늘을 정점으로 사건을 이루었다. 이제 자신을 증명할 증서를 받게되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러한 일이 어떻게 일어난 것인가. 간략하게 소개해 본다.

52세의 세이드씨는 이집트인이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그는 아버지가 국회의원에 출마할 정도로 정치의식이 보통은 넘는 분이다. 그런 그가 왜 이집트를 탈출해 난민행에 오른 것일까. 2016년 19월 26일 인천공항에 입국한 그는 이집트에서 국가보안국의 체포 위협을 피해 한국에 온 것이다.

이집트를 떠나기 전 그는 이집트 다가할리주라는 곳에서 차안이나 주차장에서 잠을 자야 했다. 경찰이 집에 자주 찾아와 그런 노숙을 해야 했다. 2014년부터 집밖에서 살게 된 것은 2013년 군사쿠테타로 독재자 시시가 4,000여명을 학살하고 10만 여명을 투옥한 이후부터이다.

일상은 깨어져 1993년 결혼한 그의 3남 1녀의 단란한 삶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었다. 부친은 이전에 돌아가셨고 모친은 세이드씨가 한국으로 망명을 온 후 돌아가셨다. 그의 형은 투옥되어있고 그의 어린 17세 아들도 6개월 전 투옥되어 감옥에 있다. 정말 비극적인 가족들의 아픔을 안고 살다가 결국 떠나온 거다.

법학을 전공한 사람인 데다가 부친의 정치적 성향으로 자연스럽게 그는 반정부운동에 가입하여 활동하게 되었고 정당에도 가입하여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시위에 참여하기도 했다. 2015년 5월 체포당해 25일간 유치장에도 있었다. 지금은 형과 아들이 감옥에 수감되어 있다. 지금은 세이드씨도 수배 중이다,

이런 정치적 격변속에 2016년 10월 25일 한국으로 와서 난민신청한 세이드씨는 2016년 11월 15일에 난민인터뷰를 아랍어로 하였다. 문제는 통역을 대동한 인터뷰가 1시간 25분 만에 마쳤다는 점이다. 자신을 충분히 설명하기도 어려웠고 두려움 때문에 힘겹게 진술하였다, 그 결과 난민 불인정판결을 받았고 이어 재신청을 하였지만, 다시 불인정을 받았다.

문제는 2018년 8월에 외국인등록증을 출입국사무소에 반납하고 3개월 혹은 6개월마다 A4용지 한 장에 스탬프를 찍으며 연장하는 삶을 살게 된 것이다. 게다가 취업불가라는 도장을 받고 정상적인 일을 할 수 없었다.

두번째 이의신청을 한 결과 통지문을 받은 날은 얼마 전 2020년 2월 17일, 난민불인정이라는 지위를 부여한다는 용지 한 장이었다. 사유엔 이런 말이 적혀있다. 박해를 받게 될 것이라는 충분히 근거있는 공포가 없단다. 세이드씨 본인은 다시 이집트에 돌아가면 체포될 것이 확실하다고 한다. 아들과 형이 정치범으로 수감되어있는 것도 이유거니와 이전 떠나올 때에도 수배 중 이라는 사실이다.

한국디아코니아에서는 2019년 12월 15일부터 2020년 1월 15일까지 약 700여명의 탄원서 서명을 받았다. 탄원의 핵심 내용은 바로 난민들 가운데 외국인 증명서도 없이 취업불가라는 신분으로 사는 이들에게 최소한 삶의 보장을 해달라는 요구였다. 한국디아코니아는 1월 17일 법무부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청와대와 국가인권위원회에 탄원서를 제출하였다. 10여 개의 단체도 함께 연대해 주었다. 너무 감사한 일이었다. 특히 한국기독교장로회 공릉교회 교인 400여명이 연서에 연대해주어 힘을 많이 얻었다.

이후 2월 초에 법무부로부터 답변을 받았다. 제안한 내용을 참조하여 정책에 반영하도록 노력하겠다는 법무부장관 명의의 답변서였다. 지난 주 이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받았다. 내용의 핵심은 2015년 9월 1일부터 2018년 6월 30일까지 아랍어로 인터뷰를 한 난민신청자들은 당시의 인터뷰가 문제가 있었기에 다시 난민인터뷰를 하고 그 동안의 불법 노동이나 불법 체류 그리고 불법 입국에 관련해서는 면책을 한다는 내용이다. 특히 구금된 난민 중 이 기간동안에 생긴 문제로 인한 난민들은 우선적으로 구제한다는 내용이 첨부되어 있다.

아마도 오늘 이집트 난민 세이드씨는 이러한 정부의 조처에 가장 처음 실질적으로 권리를 회복한 사람으로 기록될 것 같다. 그만큼 기쁘고 역사적인 날이다. 이제 그의 어깨는 더 이상 웅크리지 않아도 된다. 당당한 신분으로 증명서를 가지고 일도 정상적으로 할 수 있고 건강보험으로 아플 때 병원에 언제든 갈 수 있다. 이제껏 손가락의 고통을 앓고 있었지만 병원에 갈 수도 없었다. 이젠 조금만 있으면 병원에 가서 치료도 받을 수 있다.

한국디아코니아는 2년 전 예멘에서 내전을 피해 온 난민들을 만나 전방위로 도움행동을 하다가 그 해 겨울 앙골라에서 온 한 가족의 공항 구금 288일 동안 동행하여 부당한 난민불회부결정에 문제제기를 하여 대법원에서 앙골라 난민의 승소를 가져오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그 후 안산에 정착하는 과정에 도움행동을 하여 현재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는데 손발의 역할을 해왔다.

이번에는 난민 가운데 가장 힘겨운 난민인 외국인증명서도 빼앗기고 취업불가 신분으로 살아가는 난민들의 신분회복에 작은 역할을 한 것에 대해 함께 연대해 주신 분들과 기쁨과 감사를 같이 나누고자 한다. 앞으로도 한국디아코니아는 이 땅의 가장 약한 이웃들의 친구로 다가갈 것이다. 이는 디아코노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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