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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진실의 공방

홍성표 (서울북노회,예수제자,목사) 2014-04-08 (화) 17:01 5년전 1325  
사람은 생각과 표현과 결사 그리고 출판 집회 등의 자유를 갖는다.
이것이 우리의 모든 자유의 종목은아니다.우리는 말 할수 있는
자유와 판단과 이해의 자유도 있고 비판의 자유도 있다.
 
그러나 자기만의 이익을 위한 자유는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적어도 동시대인들을 함께 생각하는 자유가 아니라면
그것은 반쪽의 자유일 뿐이다.
 
어느 일과 직업을 갖고 사는 것도 문제가 아니 된다.
적어도 그것이 모든 사람들이 정당하다고 인정할 수 있다면 말이다.
고개를 좌우로 젓는 것이 아니라 위 아래로 끄덕일 수 있다면 말이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성서 통하여 이해하는 것도 자유이다.
서구 계몽주의를 거쳐오면서 이성의 잠을 자고 있는 자를
칸트는 "미성숙"한 사람으로 이야기 하였다.
 
그러나 프랑스의 실존론자인 장폴 싸르틀는 이성으로 빛나는
합리주의적 문명인들을 미개인으로 이해하고자 하였다.
그것에 대한 이유는 소위 깨인 성숙한 이성주의자들이
오히려 진정한 인간성을 상실하고 위선적이며 허위의식에
도취 되어 사는 허상을 감지한 때문이다.
 
창조주와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자기 뱃속을 채우고
국민과 민중 그리고 서민을 팔아서 자기 부귀영화를 누리며
향락과 쾌락의 만족적 하품을 하는  영적 게으른 자들을 향한
민감한 지적일 수도 있다.
 
하나님은 인간을 왜 타락하도록 노출 시키시는가.?
하나님은 불의와 부패의 극단을 보시고도 심판을
늦추고 계시는 것일까?
 
은총과 은혜 구원과 영생?
그런 것들이 우리에게 주는 진정한 실체는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을 보며 우리는
무엇을 생각 하는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 떨림 아니면
하나가 되는 일치와 연합의 신비?
 
종말은 분명 세상의 끝이거나 멸망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새로운 미래의 새 창조일 뿐아니라
지금 여기에서의 역사와 삶의 저항이며 변화와 변혁의 시도이고
새로운 새 하늘 새 땅의 건설을 위한 하나의 징조이다.
 
종말은 예수그리스도와 하나님에 대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하나가 되는
통전적 희망의 시작이다. 과거는 회개와 청산이 필요하고
현재는 변화와 혁명 혹은 혁신이 필요하고 미래는 새로운
현재를 만드는 희망으로서 존재한다.
 
종말은 완성된 것이거나 현재에 머물러 있는 말세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의 부조리하고 모순 된 것을 직시하며 새로운 현재를 창조하려는
역사의 전조요 하나님의 약속의 선취이며 결단과 각오로 새롭게 잉태하는 삶의 진통이다. 
 
우리의 기도는 나 만을 위한 기도가 되어서는 아니 되며
우리 모두의 기도가 되고 종말의 상태를 새로운
창조의 희망으로 바꾸는하나님이 원하시는 태초의 회복이 되어야 한다.
 
흑암 위에 수면이 있고 그 위에 생명의 기운이 운행하여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예고하는 고요하나
부글글부글 끓어오르는 역사의 근본을 바꾸는 시작이어야 한다.
 
거짓 되고 꾸며대는 잔꾀는
종말의 현상을 새로운 창조로 전환 시킬 수 없다.
창조의 하나님은 거짓 된 자와는 희망을 창조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거짓을 버리고 진리와 진실의 열매를 맺기 위하여
자기와 이웃의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의 처형의 자리에 있는
자들을 통하여 더 나은 세상을 창조 하신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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