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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주일 설교

추일엽 (경기노회,수원주님의교회,목사) 2014-04-12 (토) 07:48 5년전 2106  
오래 전 제가 가리봉 교회에서 시무할 때, 고 한상면목사님이 부총회장 시절, 1984년 새성전 헌당하면서 이장식 교수님께서 “새성전”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전하셨는데 이와 같은 내용이었다.
종려주일 설교/ 구약성경···사무엘하 7 : 1 ~ 17 나단의 예언(대상 17:1-15) 주께서 사방에 있는 모든 원수에게서 다윗 왕을 안전하게 지켜 주셨으므로, 왕은 이제 자기의 왕궁에서 살게 되었다. 하루는, 왕이 예언자 나단에게 말하였다. "나는 백향목 왕궁에 사는데, 하나님의 궤는 아직도 휘장 안에 있습니다." 나단이 왕에게 말하였다. "주께서 임금님과 함께 계시니, 가셔서, 무슨 일이든지 계획하신 대로 하십시오." 그러나 바로 그 날 밤에, 주께서 나단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 종 다윗에게 가서 전하여라. '나 주가 말한다. 내가 살 집을 네가 지으려고 하느냐? 그러나 나는,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온 날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떤 집에서도 살지 않고, 오직 장막이나 성막에 있으면서, 옮겨 다니며 지냈다. 내가 이스라엘 온 자손과 함께 옮겨 다닌 모든 곳에서, 내가 나의 백성 이스라엘을 돌보라고 명한 이스라엘 그 어느 지파에게라도, 나에게 백향목 집을 지어 주지 않은 것을 두고 말한 적이 있느냐?'그러므로 이제 너는 나의 종 다윗에게 전하여라.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양 떼를 따라다니던 너를 목장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통치자로 삼은 것은, 바로 나다. 나는, 네가 어디로 가든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어서,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물리쳐 주었다. 나는 이제 네 이름을, 세상에서 위대한 사람들의 이름과 같이, 빛나게 해주겠다. 이제 내가 한 곳을 정하여, 거기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심어, 그들이 자기의 땅에서 자리잡고 살면서, 다시는 옮겨 다닐 필요가 없도록 하고, 이전과 같이 악한 사람들에게 억압을 받는 일도 없도록 하겠다. 이전에, 내가 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사사들을 세워 준 때와는 달리, 내가 너를 너의 모든 원수로부터 보호하여서, 평안히 살게 하겠다. 그뿐만 아니라, 나 주가 너의 집안을 한 왕조로 만들겠다는 것을 이제 나 주가 너에게 선언한다. 너의 생애가 다하여서, 네가 너의 조상들과 함께 묻히면, 내가 네 몸에서 나올 자식을 후계자로 세워서,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바로 그가 나의 이름을 드러내려고 집을 지을 것이며, 나는 그의 나라의 왕위를 영원토록 튼튼하게 하여 주겠다.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그가 죄를 지으면, 사람들이 저의 자식을 매로 때리거나 채찍으로 치듯이, 나도 그를 징계하겠다. 내가 사울에게서 나의 총애를 거두어, 나의 앞에서 물러가게 하였지만, 너의 자손에게서는 총애를 거두지 아니하겠다.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이어 갈 것이며, 네 왕위가 영원히 튼튼하게 서 있을 것이다.' 나단은 이 모든 말씀과 계시를, 받은 그대로 다윗에게 말하였다.
신약성경 ············요한복음 19 : 17 ~22
본회퍼의 『Nachfolge, 나를 따르라』고난 안에서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지고 있고, 자신의 몸에 그리스도의 상처를 지니고 있음을 자랑할 수 있다(고후 4:10 “우리는 언제나 예수의 죽임 당하심을 우리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그것은 예수의 생명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갈 6:17 “이제부터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내 몸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낙인이 찍혀 있습니다”). 이제 신자는 살든지 죽든지 자기의 몸에서 그리스도가 영광을 받을 수 있도록 봉사할 수 있다(빌 1:20 “내가 간절히 기대하며 바라는 것은, 내가 어떤 일에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전과 같이 지금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나의 몸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존귀하게 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지체들의 이와 같은 대리적 행위와 고난은 바로 자신의 지체들 안에서 형태를 취하려는 그리스도의 생명이다(갈 4:19 “나의 자녀 여러분, 나는 여러분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기까지 다시 해산의 고통을 겪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통해 우리는 예수를 따르는 모든 제자들의 사귐 가운데 있게 된다. 이러한 연구의 결론은 분명히 다음과 같다. 곧 우리는 성서 전체에서 그리스도의 몸에 관한 증언을 재발견한다.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하나님의 성전에 관한 구약성서의 위대한 예언이 성취된다’는 사실이 여기서 증명된다.
그리스도의 몸 개념은 헬라 철학의 용어 사용의 맥락 안에서 이해될 것이 아니라, 구약성서의 ‘성전 예언’으로부터 이해되어야 한다. 다윗은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지으려고 했다. 그는 예언자 나단에게 문의했다. 나단은 다윗에게 그의 의도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한다. “네가 내가 살 집을 네가 지으려고 하느냐? … 나 주가 너의 집안을 한 왕조로 만들겠다 // 네가 나를 위하여 내가 살 집을 건축하겠는가? …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삼하 7: 5, 11).
하나님의 성전은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세우실 수 있다. 이와 동시에 다윗은 기이하게도 방금 말했던 것과 전혀 모순되는 약속을 받는다. 그의 후손 가운데 한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집을 지울 것이며, 그의 나라는 영원히 설 것이라는 약속이다(12, 13절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14절) 다윗 가문에서 태어난 하나님의 ‘평화의 아들’ 솔로문은 이 약속을 자신에게 주어진 약속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성전을 세웠고, 이 점에서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성전을 통해 예언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 성전은 인간의 손으로 세워졌고, 파괴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언은 여전히 성취되지 않았다. 이스라엘 백성은 영원한 통치자 다윗의 아들이 세울 성전을 여전히 기다린다. 예루살렘 성전은 여러 차례 파괴되었다. 이것은 예루살렘 성전이 약속된 성전이 아니라는 증거다. 진정한 성전은 어디에 존재했는가?
그리스도는 성전에 관한 예언을 자신의 몸과 관련지으면서 우리에게 친히 말씀하신다. “유대 사람들이 말하였다. "이 성전을 짓는 데 마흔여섯 해나 걸렸는데, 이것을 사흘 만에 세우겠습니까?" 그러나 예수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자기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예수께서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아나신 뒤에야, 제자들은 그가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서, 성경 말씀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다”(요 2:20~22).
이스라엘이 기다리는 성전은 그리스도의 몸이다. 구약성서의 성전은 단지 그리스도의 몸의 그림자일 따름이다(골 2:17 “이런 것은 앞으로 올 것들의 그림자일 뿐이요, 그 실체는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히 10:1 “율법은 장차 나타날 좋은 것들의 그림자일 뿐이요, 실체가 아니므로, 해마다 계속해서 드리는 똑같은 희생제사로써는 하나님께로 나오는 사람들을 완전하게 할 수 없습니다”, 8:5 “그러나 이 제사장들은,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조품과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땅 위에 있는 성전에서 섬깁니다. 모세가 장막을 세우려고 할 때에 ‘너는 명심하여, 산에서 네게 보여 준 그 모형을 따라서 모든 것을 만들어라’ 하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지시를 받은 것입니다”).
예수는 자신의 인간적인 몸을 가리킨다. 그는 자신의 지상적인 몸의 성전도 파괴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부활할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성전 곧, 영원한 성전은 부활하고 변모한 그의 몸이 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을 위해 친히 세우시는 그리고 그의 아들을 위해 세우는 집이다. 하나님만이 아니라 새로운 인류, 곧 그리스도의 교회도 이 집 안에 참으로 거한다. 인간이 되신 그리스도 자신이 곧 완성된 성전이다. 이것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새 예루살렘에 대해 말하는 것과 일치한다. 그곳에는 성전이 없다. 왜냐하면 전능하신 하나님과 어린양이 그들의 성전이기 때문이다(계 21:22 “나는 그 안에서 성전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전능하신 주 하나님과 어린 양이 그 도시의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
성전은 인간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현존과 거주의 장소이다. 이와 동시에 성전은 교회가 하나님에 의해 용납되는 자리이다. 이 둘은 오직 인간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참된 것이 되었다. 여기서 하나님의 현존은 참되고 육체적이다. 인류는 참되고 육체적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인류를 그 자신의 몸 안으로 용납하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용납과 화해, 평화의 자리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하나님에 의해 용납되었음을 발견한다. 그리스도의 몸은 산돌로 세워진다(벧전 2:5ff. “여러분도 살아 있는 돌과 같이 되었으니, 신령한 집을 짓는 데에 쓰이도록 하십시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십시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보아라, 내가 골라낸 귀한 모퉁잇돌 하나를 시온에 둔다.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사 28:16 그러므로 이 돌은, 믿는 여러분에게는 귀한 것이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집짓는 자들이 버렸으나,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 돌"이요, 시 118:22 또한 "걸리는 돌과 넘어지게 하는 바위"입니다. 그들이 걸려서 넘어지는 것은 말씀을 순종하지 않기 때문이요, 또한 그렇게 되도록 정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사 8:14 그러나 여러분은 택함을 받은 민족이요, 왕의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국민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그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분의 업적을, 여러분이 선포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사 43:20; 출 19:5-6; 사 43:21”). 신령한 집이다(루터).
오직 그리스도만이 이 성전의 토대와 머릿돌이시다(엡 2:20~22 “여러분은 사도와 예언자의 터 위에 세워진 건물이요, 그리스도 예수 스스로가 그 모퉁잇돌이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건물 전체가 서로 연결되어서, 주님 안에서 성전으로 자랍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와 연결되어서 함께 건물을 이루어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거하실 곳이 되어갑니다.”, 고전 3: 9~13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밭이며, 하나님의 집입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혜를 따라, 지혜로운 건축가와 같이 터를 닦아 놓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이가 그 위에다가 집을 짓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집을 지을지 각각 신중히 생각해야 합니다. 아무도 이미 닦아 놓은 터 곧 예수 그리스도 밖에 또 다른 터를 놓을 수 없습니다. 누가 이 터 위에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집을 지으면, 각 사람의 업적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 날이 그것을 밝히 보여 줄 것입니다. 그 날은 불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불이 각 사람의 업적이 어떤 것인가를 검증하여 줄 것입니다”). 이와 동시에 그리스도는 성령이 거하는 , 그리고 신자들의 마음을 채워 주고 거룩하게 하는 성전(루터는 “건물”)이기도 하다(고전 3:16, 17 “여러분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성전이요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 가운데 계시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을 멸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6:19,20 “ 여러분의 몸은 성령의 전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을 받아서 여러분 안에 모시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스스로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하나님께서 값을 치르고 여러분을 사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십시오”). 몸으로 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영혼의 사귐이 아니라 교회의 몸들이 그리스도의 몸을 구성한다. 하나님의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존재하는 거룩한 공동체이다.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님과 새 인류의 살아있는 성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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