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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와 선거

홍성표 (서울북노회,예수제자,목사) 2014-04-16 (수) 18:08 5년전 1159  

현대 인간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일들이  여러가지가 있다.그 것 중에 두 가지는 역시 정치와 경제이다. 자본의 종국을 가고 있는 맘몬의 시대에는 정치의 권력보다는 단연코 경제가 우위일 것이다. 돈은 인격의 가치도 끌어내리고사람을 왜소하게 하고 소외시키는 악의 본질 같다. 물론 물질 자체가 악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필요의 조건이다. 문제는 그것이 인간의 삶 전반을 조정하고좌우하는 현상과 현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물질의 결핌으로 좌절하고 자신의 삶을 마감하려 든다.물질 때문에 가정이 해체 되고 친구의 우정이 깨어지며  존재의 의미가 상실 되는  최악의 결과를 낞는다.

예수 그리스도가 공관복음서를 통하여 선포하는 하나님의 나라 이치는 너희는 밥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라고 선포한다. 밥은 필요하지만 그것으로 ㅇ리의 삶이 좌우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것 조차도 서구신학의 틀에 가치는 것이라는 비판을 상정할 수 있다.  바울과 어거스틴을 거쳐 루터와 캘빈 바르트의 초월적이고 수직적인 신의 이해가 과연 굶주리며 억압을 당하는 민중들에게는 사치스런 신학의 한계를 인식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역사적 예수의 신성과 인성의 그리스도 논쟁이 이천 년 기독교의 역사이다. 역사적 ㅇㅖ수가 초월적 하나님의 안들이심을 우리는 믿느다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확신한다. 우리는 신학과 역사의 모슨과 부조리와는 관계 없이 예수그리스도가 우리의 메시아이며 구주이며 우리의 삶을 좌우하는 존재의 근거요 생명의 원천 임을 믿는다.

예수의 길이 단지 실존적인 결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의 완성을 이룰 주님의 뜻인 것을 믿는다. 개인의 실존을 구원하는 것만의 복음이 아니라 역사 전체와 우주까지 구원하실 만물의 구원자 이심을 믿는다. 따라서 우리의 실존을 악의 세력으로부터 방어하고 물리칠 필요이지만 그 실존의 방어와 구원을 넘어서 자연과 우주 그리고 나와 너를 위한 모두의 구원임을 믿는다. 

억압과 불의 학살과 인권을 짓밟는 상화에서 태동된 민중신학과 3%가 97 %의 재물을 가지고 있는 남미에서의 해방신학과 인종차별 속에서 부르지전 흑인신학 과 아프리카 신학과 제삼 세계의 신학들은  오늘의 아벨의 의 피를 호소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하나님의 시대적 음성이 아닐 수 없다.


계몽주의와 합리주의 신학과 철학적 사조를 타고 진행된 낙관적이고 낭만적인 진보와 이성의 역사의 "절대 정신"이 세계 1-2 차 대전을 통하여 막을 내리고 새로운 하나님의 발견을 한 칼바르트의 소위 " 위기신학" 은 다시 인간의 "전적 타락"을 선언하고 하나님의 초월적 신학으로 신학의 혁명을 이루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수직적이고 초월적인 "밖으로부터 오는 타자"의 힘 만을 의지하기에는 우리의 역사는 너무도 절박한 종말의 삶을 살고 있다. 후꾸시마와 체르노빌의 인간의 미래를 위한 파과와 희망에 대한 협박은 과거의 잘못된 역사의 미청산과 함께 우리를 불안하게 하며 소망에 대한 불확실성을 조장하고 있다.


서구의 합리적 진보 이성의 과학주의의 결과를 경험하고 히틀러와 뭇솔리니 일본의 군국주의한 세계에 대한 잔혹성을 목격한지 벌써 한 세기를 지났고, 특히 세계 1-2차 전쟁보다 더 참혹한 한반도의 세계 전쟁을 경험한지 거의 70 년의 세월이 흐르고 있는 이 싯점에서 의 인간의 거짓됨을 보며 우리는 더욱 큰 문명의 좌절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럴수록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희망을 기대하고 믿으며 바라게 된다. 여전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처음과 완성의 우리의 희망이다. 원죄와 구조악이 우리의 목을 조이고 숨통을 끊을 것 같은 긴박성이 존재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고 인간의 모든 부조리를 성령의 불로 태우고 그 옥토에 말씀의 생명의 씨앗은 삼십 배 육십 배 풍성한 열매를 맺을 것이다.

여기에 하나님과 우리의 힘의 합일과 깊은 연대가 필요하다.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자유와 해방이 이룩 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것은 위에서 오는 하나님의 초월과 우리의 응답이 이루어지는 생명 잉태의 접점으로 이루어질 하나님과 우리의 우정과 친구 죔과 부모와 자녀 됨의 연대이다.

선거는 하나의 선택이다. 우리는 정치에 대한 깊은 불신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는 민주주의 원칙을 실현하기 위해서 누군가를 선택해야만 한다. 하기 싫고 무관심하며 보고싶지않고 방치해버리며 폐기시키고 싶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누군가를 선택해야만 하는 절박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정치가 가지는 우리의 삶의 좌우를 결코 무관심 할 수 없고 폐기처분 할 수 없는 구체적인 현실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는 관계이고 구조이다. 완성 된 것은 아닐지라도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향한 우리의 노동과 기도를 멈출수가 없는 것이다. 종말은 끝이나 마지막이 아니다. 종말은 새로운 희망이고 새로운 생명의 창조이며 완성을 향한 하나의 출발이다.

우리가 생명의 존재를 근원적으로 무시하거나 방치해 버리면 하나님도 우리의 희망을 포기할수도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경우에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에 대한 희망을 기대하고 붙잡기를 원하신다. 그 희망의 완성자는 우리가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우리가 희망을 원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역사 안에서 희망에 대한 역사에 침묵할 수 있다.

선거는 우리의 삶의 하나의 선택과도 같다. 맘에 들지 않지만 해야하는 필연 적인 것이다. 우리는 매순간 선택해야만 할 선거와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선택은 우리의 자유이고 자율적 종목이다. 우리가 믿음의 선택을 하나님을 통하여 확정한 것처럼 생명을 살리며 사랑하는 지도자를 선택하는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돨 것이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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