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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열반과 기독교의 영생 비교.

진상옥 (서울남노회,성광 장애인 복지공동체,목사) 2014-11-01 (토) 14:15 5년전 1968  
불교의 열반과 기독교의 영생 비교.

1.불교가 지향하는 것과 기독교가 지향하는 내용의 차이점은?

불교는 윤회로부터의 해탈하여 열반(涅槃)에 들어가는 것을 지향하는 가르침이다.
무엇으로부터의 해탈은 바로 윤회로부터의 해탈이다.
즉, 반복해서 죽고 태어나는 생사의 윤회(生死輪廻)로부터 해탈이다.

해탈이나 열반에 대해 이해하려면먼저 ❛윤회설❜을 살필 필요가 있다.
윤회설이란 세상은 아득히 먼 옛날부터 존재해 온 것이라 했다.

예를 들어 법화경을 보면 석가는 인간계에 처음 나타난 부처가 아니라 일곱 번째로 나타난 부처로 되어 있다(과거 일곱 부처 사상). 그리고 여섯 번째 부처와 일곱 번째 부처 사이에는 180겁이나 되는 긴 세월의 간격이 있다. 불교 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1겁(천지가 한 번 개벽한 때부터 다음 개벽할 때까지의 기간)은 43억 2천만년이라는 장구한 기간으로, 크기가160평방킬로미터인 바위 위를 날개옷을입은 선녀가 3년에 한 번씩 스쳐지나감으로써 그 바위 가 다 달아 없어질
때까지의 기간이라 한다.

만약 1겁을 43억 2천만년으로 계산하면, 180겁은 7,776억년이 된다.불교에서는 이처럼 아주 오래 전부터의 인간과 인간 사회가 존재했다고 하는 인간 세계에 대한 내용도 있다.

결국 불전은 우주, 지구, 인간 사회 이 모든 것이 몇 천억 년, 몇 조 년, 아니 더 이전부터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존재했다고 보는 것이다.

한편, 윤회설에 따르면 생명은 다음 여섯 세상 사이를 영원한 옛날부터 영원한 미래에 걸쳐 계속해서 윤회전생(輪廻轉生)한다고 한다.

첫째 / 지옥(地獄): 중생이 자기의 지은 죄업으로 가게 된다는 지하의 세계로 모두 136종류가 있다 한다

둘째 / 아귀(餓鬼): 파율(破律)의 악업을 저질러 아귀도에 빠진 이들의 세계로 늘 굶주린다고 함

셋째 / 축생(畜生): 짐승의 세계

넷째 / 수라(修羅): 악귀와 괴물의 세계

다섯째 / 인간(人間)과: 인간 세계

여섯째 / 천상(天上): 하늘에서 사는 신들의 세계.

이들 가운데 인간계와 축생계는 우리도 직접 육안으로 보고 있는 세계인 반면,
나머지 네 세계는 상상의 세계이다. 따라서 생명은 이 여섯 세계를 영원
히 윤회전생한다는 것이다

인도인들은 이 모든 세계를 ‘고통의 세계’라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불교에서는 누구든지 한 번 지옥에 가면 아무리 짧아도 1조6,200억 년 동안은 고통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그러니 지옥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곳일지는 자명한 일이다. 아귀와 수라와 축생의 세계도 고통의 측면에서 보면 그리 만만치가 않다. 이는 인간 세계도 마찬가지이다. 생로병사의 고통을 비롯한 애별리고
(愛別離苦, 사랑하는 자와 헤어지는 고통), 원증회고(怨憎會苦, 증오하는 자와 만나는 고통), 구불득고(求不得苦, 구하는 데 얻지 못하는 고통), 오음성고(五陰盛苦, 번뇌의 고통) 등 사고팔고(四苦八苦)라 불리는 갖가지 고통이 가득하다. 반면 천상 세계는 여러 가지 쾌락으로 가득 차 있어, 가장 고통이 적은 세계이다. 그러나 고통이 전혀 없는것은 아니다
하늘에 사는 자들에게도 죽음이있다.
이들은 가장 수명이짧은 자라도 900만년의 수명이 약속되어 있지만 언젠가는 죽게 된다. 그리고 다시 윤회의 세계 속 어딘가에 태어나지 않으면안된다. 그런 의미에서 불교에서 말하는 천상
은 영생의 세계인 기독교의 천국과는 매우 다르다.

2.기독교의 구원이란 ?
위대한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이다.불교에서는 철저히 생(生)을 부정하려 하는 반면 기독교에서는 생을부정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독교는 생명을 고집하며, 그리스도인은 참된 생명, 충실한 생명,영원한 생명을 추구한다.

이것이 바로 윤회설에 입각한 불교와 창조론에 입각한 기독교의 차이이다.
기독교에서는 세상이나 인간은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창조된 것으로 영원부터 존재해 오던 것이 아니다. 세상과 인간은 모두 시작이 있었다. 또한 현재 우리들의 삶은 처음 삶이며,전생은 없었다. 게다가 죽은 후 다시 동물이나 다른 사람으로 태어난다고 하는 윤회 전생설은 믿지않는다

현재 우리의 삶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단 한 번뿐인 소중한 삶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이 삶을어떻게든 소중히 영위하고자 한다. 불교에서처럼 더 이상 다른 어떤존재
로 다시 태어나지 않기를 염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세상에서 살게 된 것을 감사한다.

그러기에 기독교는 생존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현재의 생명에 사명을 부여해 생존에 사랑과 성결함과 약동과 기쁨과 영원성을 부여하길 원한다. 기독교는 무(無)로 탈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위대한 영생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향한다. 생명 밖
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크신 생명의 약동 속으로 되돌아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불교의 열반이 ‘아무것도 없는 우주 공간으로 날아가는 것’으로 비유된다면, 기독교의 영생은 “생명의 큰 바다에 들어가 헤엄치는 것”이다. 여기서 큰 바다는 물이 아닌 생명과 빛으로가득찬 바다이며, 그곳에 들어간자는사랑과 능력과 환희와 거룩함과 끝없는 평안으로 가득 차게 된다.

또한 열반을 ‘거센 바람에 꺼져 버린 불꽃’에 비유한다면, 하나님의 영생은 오히려 “꺼지지 않고 계속 피어나는 영원한 에너지”에 비유할 수있다.

이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않는떨기나무”(출3:2)와 흡사하다.

영생은 빛과 열(熱)과 사랑으로 크게 약동하고 있는 것이다. 불교의 열반에서 우리는 부정적인 것 밖에 느낄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생은 매우 약동적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은 하나님의 크신 영생 속에 우리가 참여하는 것이다. 영원한 생명 속으로 들어가 사랑과 거룩함과 기쁨과 끝없는 행복에 우리를 맡기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천지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에게서 나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당신은 이미 하나님과 그리스도와의 ‘사랑과 생명의 사귐’ 속에 있는 것이다(요일1:3). 그리고 이러한 사귐이 바로 영생이다. 당신의 영생은 현재의 세상에서는 믿음에 의해 작은 씨와 같이 당신의 영혼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마침내 예수님의 재림으로 다가 올 영원한 세상(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꽃이 만개할 것이다. 이것을 기독교에서는 ‘부활 생명’이라 한다. 구원이란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가지고 계신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받게 되는 것을 말한다. 행복한 주말 되세요.
2014-10-25 21:30:37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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