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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자와 지혜로운 사람

홍성표 (서울북노회,예수제자,목사) 2014-11-08 (토) 22:42 5년전 1944  
성경에는 열 처녀의 비유(25:1-13), 달란트 비유(25:14-30 혹은  눅가복음, 15:11-32 의 집을 나간  아들 혹은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 이 밖에도 부자와 나사로, 부자 청년의 이야기 등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를 분별 할 수 있는 말씀은 즐비하다. 시편 1편의 복 있는 자와 그렇지 못한 죄인과 오만한 자 그리고  악인 등의 모습을 통하여서도 우리는 어리석은 자와 지혜 자의 모습을 살펴 볼 수 있다.

우리는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을 삶의 경험을 통하여 이야기해 볼 수 있다.
어리석은 자는 은혜를 배은망덕으로 사는 자이다.
어리석은 자는 자신이 있을 때에 없는 자와 나누지 못하고 사는 자이다.

권력이 있을 때
힘이 있을 때
물질이 풍족히 있을 때
지식이 풍족 할 때
먹을 것이 많을 때
건강이 있을 때
이웃을 돌볼 수 있을 때
용서할 수 있을 때
회개할 수 있을 때
죄로부터 돌아 설 수 있을 때
정의와 옳은 일을 행할 수 있을 때
자비와 사랑을 베풀 수 있을 때
무엇인가 타자를 위하여 봉사 할 수 있을 때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할 수 있을 때
정직과 진실을 행할 수 있을 때

이 때들을 놓치고 행치 못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이다.
이 좋은 때를 놓치지 않기 위하여 몇 가지 준비 과정이 필요하다.

첫째는 욕심을 비우는 것이다.
 이것은 고도의 영적 훈련이다.
자기를 비우고 탐욕을 버리는 것은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매 순간, 매 시간, 매일 매일 지속적인 훈련의 과정을 가져야 한다.

마음을 비우는 것은 육적인 비움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
그것은 생각의 비움으로부터 시작 된다.
자신을 자연의 일부로 생각하고
우주의 한 존재로 생각하며
마침내는 존재의 가치를 비우는데까지 이르게 될 때 진정한 비움이 시작 된다.

그것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
그것은 보고 만지며 들을 수 있지만 그 모든 것을 정지하고
그 고리를 끊는 곳에 없음으로 자리매김 하는 것이다.

그 비움은 모든 관계를 가지고 있지만 그 모든 관계를 무로 돌리고
새로운 관계를 잉태하는 자리로 전 존재를 질적 변화를 있게 하는 것
있지만 없고 , 없지만 새 생명의 발아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것은 존재와 존재의 근원을 없애며
전혀 다른 새로운 존재와 일치를 추구하고
마침내는 그 존재와 하나가 되어 이전에 존재를 알 수도 없게 되는
새로운 존재와의 합일을 성취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자아나 초자아, 초월도 없고
위와 아래도 없으며
같음도 없고
차이도 없으며
다름도 없고
닮은 것도 없는
유일한 것도 아니고
다양성도 아닌 하나가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비우고 비울 것이 더 없으며
비운 것을 채울 것도 없는
존재도 비 존재도 아닌
그러나 모든 것을 담아 낼 수 있는
모든 존재의 생명력이 꿈틀대는 그런 것이다.
이러한 비움의 자리에 가면 우리는 지혜의 자리에 들어 서게 된다.

어리석은 자는 자신의 그릇에 모든 것을 채우고자 하는 자이다.
모든 것을 자신과 하나가 되게하는 것이다.
이웃도 타자도 없고 오직 자신을 위하여 그것들이 존재하는 환상과 착각에 삶을 전개하고자 한다.

교만이 하늘을   찌르고
타자를 억압하거나 협박하고 죽이고 살인하며
그들의 피를 보고 즐거움을 사는 자이다.

타자의 불행을 단지 운명과 자연으로 돌리고
타자 자신의 무능력과 그들 자신의 죄의 대가의 결과로 치부한다.
어리석은 자는 결단코 자신을 비우지 못한다.
비우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이기지 못하고 부서지고 깨어지며
폭발해 버린다. 그 결과 자신과 타자를 죽음과 멸망으로 이끌어 간다.
모두의 불행한 결과를 초래한다.

낙엽은 떨어져 흙에 묻히고 썩어서
존재의 근원이 되는 거름이 된다.
썩고 떨어져 묻히고 거름이 되는 자가 비운자이다.
그리고 그런 자들을 통하여 역사는 파멸을 모면하고 비워진 하늘을 채워 간다.
남은 자들은 그들의 살과 피를 먹고 그 거름 더미를 양분으로하여 생명을 이어간다.

자신의 이웃이 누구인지
자기의 사람이 누구인지
자기의 적과 아군이 누구인지를 구별하지 못하고
자기의 그릇을 채우고자 하는 자의 말로는 매우 외롭고 고독하며 쓸쓸한 최후를 맞게 된다.
채우고자 하는 자는 모든 것을 잃고
모든 것을 비우고자 한자는 모든 것을 채우게 되는 것이다.

거짓과 이중성
자기 유익을 구하는 자의 삶은
자기 꾀에 빠져 더 이상의 하늘을 바라 볼 수 없게 된다.

자본주의건
사회주의건
공산주의건 간에
진정으로 이웃과 타자를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로운 생명의 거름이 되고자 하는 것이 최후의 승자가 될 것이다.

태초 이전부터 유사 이래로
비운자를 통하여 역사의 존재가 가치를 가지게 되었다.
예수는 그 비운 자의 으뜸이시다.
우리는 그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지금 이렇게 존재로서 존재한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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