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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봄 문익환 목사 26주기 추모예배 총회장 설교문

관리자 (기타,총회본부,목사) 2020-01-23 (목) 10:54 1개월전 388  

늦봄 문익환 목사 26주기 추모예배 설교문

(2020년 1월 18일(토), 마석 모란공원)

 

설교: 총회장 육순종 목사

성경: 마가복음 3장 1-6절

제목: 늦봄의 파격

 


  늦봄 문익환목사님은 우리 시대의 파격이었습니다. 제가 신학교에 입학하던 1977년, 문목사님은 학교에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바로 한 해 전 1976년 ‘3.1 민주구구선언’을 하시고 구속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977년 연말 형집행정지로 출소하시고 78년 봄 수유리 캠퍼스 채플실에 오셔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 날의 설교를 저는 잊지 못합니다. 설교 중 운문식으로 던지시는 몇 마디 말씀이 제 마음에 꽂혔습니다. “산다는 것 말이에요. 사랑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사랑한다는 것 말이에요. 모든 것을 다 내어주는 것이에요. 목숨까지도 내어주는 것이에요. 사랑한다는 건 죽는다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산다는 것 말이에요. 죽는 것이에요.”


  ‘산다는 것은 죽는 것이라는.’ 이 역설적인 선언의 울림은, 20대 초반 저의 의식과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신학을 공부하면서 ‘죽어야 사는’ 복음의 역설적 진리가 저에게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늦봄과의 첫 만남은 이렇게 저에게 파격이었고, 신학하는 눈을 열어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후 모두가 기억하듯이 1989년 3월 그의 방북은 우리 모두에게 충격이었고 파격이었습니다. 당시 30대였던 저는 당시 문목사님의 방북이 우리 사회와 교계에 준 충격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가슴이 철렁하고 머리가 멍해지면서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아, 70이 넘어서도 선을 넘는 구나’ 역사는 언제나 선을 넘는 사람들에 의해서 새로운 시대를 연다는 지식이 있었지만, 그 산증인을 목격하였고, 그 분이 이제 70줄에 접어든 문목사님이셨다는 것이, 당시 제도권 진입의 문턱에 서 있던 30대의 저에게는 충격이 컸습니다. ‘아, 선을 넘어야 하는 거구나’ 라는 울림이 있었습니다.


  산다는 것은 사랑하는 것을 위해 목숨을 거는 일이라는 것, 제도와 세상이 그어놓은 선을 넘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늦봄의 파격이 준 교훈이었습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은 예수의 파격을 다룬 말씀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한 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 준 사건입니다. 안식일 법을 위반하신 것입니다. 당시로서는 대단히 파격적인 행동이었습니다. 안식일 준수는 그냥 여러 가지 계명 중의 하나가 아닙니다. 오경을 읽어보면, 안식일 준수는 단지 하루를 잘 지킨다는 뜻이라기보다, 모든 율법을 완전하게 지키겠다는 결단의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말하자면 안식일 준수는 율법 전체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계명이었던 것입니다. 안식일 법은 이토록 매우 중요하고도 엄격한 법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는 당시 유대교가 규정한 그 안식일법을 어기고, 손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

 

  그 파격의 이유가 예수를 고발하려 둘러싼 사람들을 향한 예수의 발언 속에 담겨 있습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율법의 핵심과 본질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임을 간파하신 예수는, 율법의 껍데기인 문자만 붙들고 있는 유대인들의 고정관념의 선을 뛰어 넘으신 것입니다. 율법의 본질과 핵심인 사랑을 붙잡고 계셨기에 그런 파격을 행하신 것입니다.

 

  미술에서는 현실화에 능통해야만 비로소 파격이 가능한 추상화를 그릴 수 있다고 합니다. 음악에서 애드립과 재즈 기법을 구사하려면 본래의 정 박자와 멜로디를 귀신처럼 연주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파격은 본질과 핵심을 아는 사람이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안 그러면 어설픈 파격이 되고 파괴적인 일이 되고 맙니다. 예수는 율법의 본질과 핵심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에 사람을 치료하는 파격을 행하신 것입니다.

 

  저는 늦봄의 파격은 그가 기초가 튼튼한 구약성서 학자이며, 8년 동안 성서공동번역의 번역책임위원으로 일한 이력과 무관하지 않다고 믿고 있습니다. 늦봄은 구약성서의 예언자 전통과 구약의 시인들을 마음을 깊이 읽고 있었고, 성서를 관통하고 있는 하나님의 마음의 핵심을 읽고 있었습니다. 성서의 본질과 핵심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성서를 보는 그 눈으로 한국역사를 바라보며 한국현대사의 맥을 정확히 짚고 있었습니다. 늦봄의 거침없는 파격의 힘은 거기에 있었다고 저는 믿습니다.  

 

   저는 오늘 문익환목사님 26주기 추모예배를 드리며, 예수의 파격, 늦봄의 파격을 묵상합니다. 어떻게 우리가 예수처럼, 늦봄처럼 선을 넘는 파격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요즈음 여전히 불확실성에 휩싸여 있는 한반도 상황을 보면서, 제 마음 속에 울림이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는 안 된다. 선을 넘어야 한다. 이리저리 계산해서 한반도의 미래는 없다. 선을 넘어야 한다.’ 파격이 필요한 거죠. 그러나 파격 자체가 우리의 목표는 아닙니다. 어설프게 파격적이다가는 큰 일 날 수 있습니다. 핵심과 본질을 붙잡으면 파격은 저절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 때 파격은 파괴가 아니라 창조일 것입니다. 예수도, 예수를 따르던 늦봄도 본질과 핵심을 붙잡고 있었기 때문에 비 본질과 껍데기에 붙잡혀 있던 세상에 파격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여기 저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늦봄의 파격에 많은 도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우리 시대는 선을 넘는 파격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바라기는 그의 파격의 원동력이었던 복음의 본질과 핵심을 우리도 붙잡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가 사로잡혔던 사랑의 본질과 핵심에 우리도 사로잡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도 본질과 핵심에 붙잡히고 사로잡혀, 역사의 화살촉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파격으로 살아가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오늘 하나님 나라의 핵심과 본질을 붙들므로 파격의 삶을 살았던 늦봄 문익환목사님을 추모합니다. 그 공고한 분단의 벽을 허물려 선지자의 삶을 살았던 목사님을 추모하며. 우리도 그가 붙잡혔던 진리와 생명에 사로잡혀, 파격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깃발이 되게 하옵소서. 막힌 담을 허무시고 우리를 하나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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