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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닮은 사람들

윤응진 (충북노회,한신대학교,목사) 2010-03-23 (화) 18:01 14년전 6204  
2006년 8월 20일
(한신대학교 대학교회 및 외국인 노동자 교회 연합예배)

하나님을 닮은 사람들
창 1:1-5,26-28


1. 세상은 아름답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된 것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기회로 생각하여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무더운 날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여름 날씨에 잘 적응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름은 더위로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참으로 생명력이 넘치는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우리는 이 여름에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 더위를 식히려 합니다. 그래서 도로마다 휴가차량들로 가득합니다.
물론 마음이 편하지 않으면, 아무리 아름다운 풍경도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불행한 삶을 살면서도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려 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오늘 우리가 함께 경청한 성경말씀들을 기록한 유대인들입니다.
유대인들이 이 성경말씀을 마음으로 경청하고 기록한 시기는 대략 기원전 550년 쯤 됩니다. 그 때에 그들은 바빌로니아 제국에 나라를 빼앗긴 채, 전쟁포로로 납치되어 지금의 이라크 땅에서 살아가야 했습니다. 먼 이국땅에서 2등 국민처럼 차별받으면서 살아가던 그들에게 세상이 아름답게 보였을 리 없습니다. 그들은 나라를 빼앗긴 데에 대한 후회와 원망, 자책감과 분노로 시달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라를 되찾을 힘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깊이 절망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좌절과 절망의 시간에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맨 처음에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에는 모든 것이 보기에 참 좋았을 것이라는 깨달음 말입니다.
그 깨달음이 오늘 우리가 경청한 창세기 1장에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 전쟁포로들은, 하나님은 어둠과 혼란과 무질서를 몰아내심으로써 빛과 질서를 창조하신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신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이 담고 있는 뜻은 무엇입니까? 창조주 하나님의 뜻은 세상을 어둡게 하는 혼란과 무질서를 추방하고, 빛과 질서와 아름다움을 창조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죽어가는 것들에게 생명을 허락하시고 보존하신다는 것입니다.
강대국이 폭력으로 이루어 놓은 것은 질서처럼 보이지만 무질서입니다. 지배자들이 이루어놓은 문명은 화려한 광채를 내는 것 같지만, 인류를 어둠으로 몰아넣는 것입니다. 그들의 문화는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것 같지만, 오히려 진정한 아름다움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바빌로니아 제국의 지도자들은 그 진실을 바라볼 수 있는 지혜가 없었습니다. 너무 많은 권력과 물질과 영광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소유물과 기본적인 인권마저 박탈당한 유대인 포로들은 그 진실을 통찰할 수 있는 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지배자들이 파괴하고 있는 세상을 새롭게 하기 위하여 일하고 계신 하나님의 손길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그리고 창조하고 계시는 세상은 본래 참 좋았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세상을 향해 “참 좋다”고 말할 수 있는 하나님의 관점은 부자들과 힘 있는 지배자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참 좋은” 세상은 그들에 의해 파괴되고 있는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시고 유지하기를 원하시는 본래의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향해 “참 좋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은 억압과 부정의를 몰아내고 세상을 ‘처음처럼’ 새롭게 재건하려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지금 억압과 부정의로 고통을 받고 있으나, 새 내일에 대한 꿈을 잃지 않은 신앙인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두운 세상을 처음 세상처럼 밝고 새롭게 만드실 것이라는 믿음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1장이 증언하는 “참 좋은” 세상은 과거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의 회상이 아니라, 새로운 미래를 열려는 사람들의 꿈이며,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는 다짐입니다.


2. 하나님을 닮은 사람들: 계급과 인종을 뛰어 넘는 대동세상에 대한 꿈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창조물 가운데 가장 훌륭한 작품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세상을 짓밟고 망쳐놓는 것이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세상을 새롭게 할 일꾼들도 사람들입니다. 유대인 포로들은 정복자들의 땅에서 차별을 받고 살면서도,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당시 바빌로니아 제국에는 인간 차별이 아예 제도화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종교는 그렇게 사람을 차별하는 세상을 신의 이름으로 정당화 하였습니다. 바빌로니아의 종교적 가르침에 따르면, 왕과 귀족들만이 신을 닮은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일반인들을, 그리고 전쟁포로들과 노예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유대인 포로들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닮은 존재들이라고 고백 합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으니,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1:27) 이것은 당시 사회에서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장엄하고 혁명적인 선언이었습니다. 이 신앙고백은 당시의 사회제도와 관습과 가치관에 대한 저항선언이었기 때문입니다.
왕과 귀족들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즉 남자와 여자가, 주인과 노예가, 바빌로니아 국민과 전쟁포로가, 어른과 아이가, 노인과 청년이, 인종과 계급을 넘어서서 ‘모두’가 하나님을 닮은 소중한 존재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억압하고 학대하고 차별하는 것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행위이며, 하나님을 향한 반역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고대의 인간평등선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선언이 성경말씀의 기본 전제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 신앙고백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이라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신앙고백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성경말씀의 한 줄도 바르게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교회들과 신앙인들이 이 신앙고백을 외면하려 하였습니다. 그러한 교회들과 신앙인들은 세상을 비추는 등대역할을 담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럼 하나님을 닮은 사람이 하여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오늘의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하나님을 닮은 존재로 창조하신 이유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모든 생물들을 다스리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억압하고 지배하기 위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만물들을 돌보기 위해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남자와 여자를 축복하시면서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라.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1:28) 여기에 사람들이 이 땅 위에 존재하여야 하는 이유가 명백히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위임하신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사람들 마음대로 모든 생명체들을 짓밟아도 좋다는 허락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생명체들을 관리하여야 한다는 사명을 일깨우고 있는 것입니다.


3. 사람이 희망이다!

유대인들은 힘없는 사람들과 대자연의 생명을 짓밟는 정복자들의 희생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강대국의 배자들이 저지르는 범죄를 눈여겨보았고, 그 범죄의 결과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몸으로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을 닮은 사람들이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닮은 사람들답게 살기를 원했습니다. 즉 정복자들과는 다르게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기를 소망하였습니다.
정복자들의 폭력과 착취로 인하여 파괴되고 더럽혀진 세상 한복판에서 그들은 좌절하거나 절망하여 세상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세상을 아름다운 삶의 터전으로 회복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었던 것입니다. 바로 자신들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희망을 발견하였던 것입니다.
멀리 낯선 나라에서, 특히 단일민족 이데올로기가 강한 한국 땅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단일민족 이데올로기는 비성서적인 것이므로 극복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닮은 소중한 존재라는 신앙고백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관념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역시 단일민족 이데올로기가 강하게 남아 있는 독일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일하던 아내의 도움으로 공부를 마쳤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이 겪고 있을 어려움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닮은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시간에 여러분들이 한국인들로 인하여 겪고 있는 차별과 억압과 고통에 대하여 사죄하는 마음으로 사과드립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을 통하여 한국인들이 지니고 있는 단일민족 이데올로기와 편견들이 깨어지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사람을 구조적으로 억압하고 차별하는 세상에서 살게 되면, 우리 스스로도 다른 사람들을 억압하고 차별하는 일에 익숙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힘없는 사람들은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고, 사람이 싫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세상을 외면하게 됩니다. 그런데 가수 안치환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라고 노래했습니다. 그리고 시인 박노해는 그의 시, “사람만이 희망이다”에서 이렇게 우리의 가슴에 희망의 불씨를 지피려 합니다:
    
“사람만이 희망이다
희망찬 사람은
그 자신이 희망이다.

길 찾는 사람은
그 자신이 샛길이다
참 좋은 사람은
그 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

사람 속에 들어 있다
사람에서 시작된다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


안치환과 박노해는 한국사회를 더욱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모두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투쟁하고 고난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한결같이 사람에게서 새로운 희망을 찾으려 합니다. 그리고 그들 스스로가 희망의 실마리가 되려 합니다. 그들의 노래와 시는 바로 유대인 포로들이 고백한 신앙고백과 맞닿아 있습니다.

저는 어제(2006년 8월 19일) 「한겨레신문」에서 감동적인 기사를 읽었습니다. 어느 할머니가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어렵게 살다가 숨졌습니다. 그런데 그 할머니는 아들을 통해서, 자신을 돌봐준 사회복지사에게 “그동안 정말 고마웠다”는 마지막 인사편지와 함께 100만원의 현금을 이웃돕기 성금으로 기탁하였다는 것입니다.
동사무소에서 할머니에게 매달 전해준 보조금이 40만원이었습니다. 그 돈을 15만원은 방세를 내고 나머지로 생활비와 약값을 쓰면 남는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할머니에게 100만원은 사실상 평생 모은 돈이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가난하고 외롭고 병고에 시달렸지만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았던 할머니는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 달라고 그 돈을 맡긴 것입니다.
저는 이 할머니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바로 위에 소개한 안치환의 노래와 박노해의 시가 떠  올랐습니다. 그리고 유대인 포로들의 신앙고백이 더욱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본래 하나님을 닮은 존재입니다. 가난하고 힘들었지만 자신보다 더 가난할 이름 모를 이웃들을 배려하는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은 진정 꽃보다 더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있기에 우리는 어두운 세상 한복판에서도 아직 희망을 말할 수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희망을 찾으려 하기보다는 먼저, 우리들 자신이 이웃의 희망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꽃보다 더 아름다운 존재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가 하나님을 닮은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모습이 더욱 환하게 드러나게 되기를, 그리하여 세상이 더욱 아름답게 변화되기를 기대합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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