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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위하여!

윤응진 (충북노회,한신대학교,목사) 2010-03-23 (화) 18:05 14년전 5840  

2008.8.10.
자유를 위하여!
(출애굽기 20:1-3, 요한 8:31-32,  갈라디아서 5:1,13-14)


1. 출애굽의 하나님만을 섬겨라!
우리가 경청한 첫 말씀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정체를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나는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을 멋대로 상상하도록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분 스스로가 자신의 정체를 분명히 제시하는 것은 바로 그 까닭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신의 정체를 이집트제국으로부터 노예들을 해방시킨 ‘출애굽 사건’과 관련시켜 드러내십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낯선 분으로 다가오십니다.
하나님은 종교의 영역에 갇혀 있는 신이 아니라, 삶의 한복판에서 그의 뜻을 펼치시는 역사의 주님이심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속적인 영역, 그것도 억압과 착취가 구조적으로, 조직적으로 자행되고 있는 구체적인 삶의 영역에 뛰어들어 세상을 자유롭고 평등한 삶의 터전으로 변화시키시는 구원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야훼 하나님은 제왕과 귀족들만 자유를 누리던 이집트의 노예제도를 철저히 거부하고, 그 체제의 희생자들인 노예들을 구원하는 해방자로 행동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선언 하십니다: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섬기지 못한다.” 이 선언을 우리는 십계명의 첫 번째 계명이라 부릅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하나님만을 숭배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출애굽의 하나님’으로서만 섬기도록 요청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하여 헌신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우리를 정당화하거나 우리의 뜻을 실현시키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려 한다면, 우리는 이 계명을 폐기하는 것입니다.
출애굽의 하나님만을 섬긴다면, 우리는 예배당 안에서만 하나님을 숭배할 수 없습니다. 지배계층만 자유를 누리는 세상을 묵인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모순된 사회체제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것을 용인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유를 누리게 될 때까지 우리는 문제를 제기하고, 저항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땅 위에 교회들은 많은데, 진정으로 출애굽의 하나님만을 섬기는 교회는 얼마나 될까요?  

2. 자유롭게 하는 진리의 선포자 예수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허락하신 자유에는 두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1) 무엇으로부터의 자유, 2) 무엇을 위한 자유.
억압과 착취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은 자유인이 되기 위한 필요조건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자유인으로서 살아가는 삶의 이유가 분명하지 않는다면, 자유는 방종을 낳게 되고, 결국 자신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 것입니다. 따라서 자유의 완성을 위해서는 자유인답게 살아가는 바른 삶의 자세가 요청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사건 이후에 해방된 노예들에게 열 가지 계명을 주심으로써 바른 삶의 지침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십계명의 전반부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바른 삶의 자세를 지닐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후반부는 이웃들과의 관계에서 바른 삶의 실천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계명들은 인간을 얽매는 족쇄가 아니라, 이미 자유롭게 된 인간이 정의롭고 평화로운 자유공동체를 형성하도록 돕기 위한 배려로 허락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계명들 안에는 인간을 모든 형태의 억압과 착취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하나님의 복음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특히 이스라엘에 제왕제도가 도입되면서, 모든 인간에게 자유로운 삶을 살도록 주어진 생명의 말씀들이 왜곡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제왕제도에 병행하여 종교제도가 정착되면서, 율법은 생명의 말씀이 아니라 인간들을 지배체제에 길들이는 도구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경청한 요한복음 8장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말씀이 선포된 맥락을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8장만 살피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왜곡되고 있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8장 1절 이하에는 ‘음행하다 잡혀 온 여인’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율법학자들은 이 여인을 데리고 와서 예수님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본래 십계명의 간음금지 조항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이룬 가정을 권세 있는 남성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선포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가난한 여성에 대한 정죄의 논거로 이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간음죄는 혼자서, 그것도 힘없는 여성이 주도권을 잡고 저지를 수 있는 범죄가 아닙니다. 그런데 율법학자들은 그 여자를 당장 ‘율법에 따라’ 처형할 것처럼 살기등등합니다. 게다가 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고 고소할 구실을 찾기 위해 예수께 입장표명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율법은 사람들을 생명의 길로 안내하는 삶의 지침이 아니라, 생명을 박탈하기 위한 지배자들의 도구로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과 이웃 앞에서 바르게 살아가도록 방향을 제시하는 진리의 말씀이 힘 있는 자들이 자신을 정당화하고 무기력한 이웃을 정죄하는 무기로 변질된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 남성들에게 대답 합니다: “죄가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스스로가 율법을 내세워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하려는 자들에게 예수께서는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항거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율법의 정신을 다시 깨닫도록 사람들을 계몽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율법 속에 담겨진 진리가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그렇습니다. 인간을 자유롭게 해방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가 아닙니다. 만일 진리라고 여긴 것이 인간에게 족쇄가 된다면, 혹은 나만을 정당화하고 이웃은 정죄하는 무기가 된다면, 그것은 주님께서 가르치신 진리가 아닙니다. 다만 모든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삶의 지침들만이 우리가 실천해야 하는 진리입니다.
이 땅 위에 신앙인들은 많은데,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진리로 무장한 그리스도인들은 얼마나 될까요?

3. 사랑할 자유를 위하여!
우리가 경청한 갈라디아서의 말씀은 바로 주님의 가르침을 왜곡시키는 세력들에 대한 저항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갈라디아 교회는 지금 터어키의 앙카라 지역에 세워진 개척교회였습니다. 이 교회에서는, 신앙의 완성을 위해서는 구약성서의 율법을 지켜야 하며 무엇보다도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그릇된 가르침에 저항하여 이 서신을 쓰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 하나님께 대한 관계를 종교적 규정들의 준수 여부에 따라 규정하려는 경향성에 대해 강력히 거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은 율법을 행한 공로로써가 아니라 믿음을 통하여 의롭게 된다고 강조합니다(갈라디아서 3:11). 그는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통한 자유와 율법에 종속된 종살이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하도록 요청합니다.
바울에 따르면,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목표는 하나님의 '성숙한 자녀'로서 자유롭게 살아가도록 하려는 것입니다.(갈라디아서 4:1-7) 그러므로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해 이렇게 선언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셔서,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독일어 취리히역: '자유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Für die Freiheit hat uns Christus frei gemacht) (갈 5:1)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그리스도인 스스로가 쟁취하는 것도, 다른 어떤 영웅적인 존재가 마련해주는 것도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해방운동의 결과로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선물입니다. 또한 동시에, 자유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자유를 위해 자유롭게 된 존재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그리스도의 사역에 참여하기 위한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를 향해 이렇게 경고 합니다: “굳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매지 마십시오.” 바울이 이렇게 경고하는 이유는, 갈라디아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허락된 그 자유를 상실하고, 스스로가 다시 종의 멍에를 매게 될 위험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가 자유 안에 굳게 서서, 즉 그 자유를 행사함으로써, 자유를 보존하라고 촉구합니다.
바울의 경고와 촉구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역사에서는 늘 다시금 인간들에게 율법의 멍에를 씌우려는 어리석고 사악한 시도들이 반복되었습니다. 교회들이 만들어 놓은 각종 규율과 관습들이 인간을 억압하곤 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한국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께서 허락하신 자유의 기쁨보다는 지옥의 형벌에 대한 지속적인 불안감과 도덕적인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정치적 억압 못지않게 종교적 억압도 인간을 비참하게 만들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바울의 말씀을 다시 경청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부르셔서, 자유하게 하셨습니다.”(5:13a)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자유를 남용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또 이렇게 경고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 자유를 육체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구실(=기회)로 삼지 말고, 사랑으로 서로 섬기십시오(=사랑으로 서로 종이 되십시오.).”(5:13b)
바울은 자유인이 된 것은 사랑으로 섬기기 위한 것임을 환기시키고 있습니다. 사랑으로 섬기는 사람만이 자유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자유는 사랑으로 섬기기 위한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상당수의 한국교회들과 그리스도인들은 '사랑으로 섬기는 자유'를 실천하기보다는, 오히려 서로를 분열시키고 파괴하는 일에 가담함으로써, 스스로 종의 멍에를 매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에서 수입된 반공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교회들과 그리스도인들은 북한 동포들에 대한 선입견과 적대감을 드러내는 데에 주저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신앙의 행동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모든’ 인류를 사랑하기 위하여 자유인으로 사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행동일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으면서도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으로 여기는 것은 위선이며 자기기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자유를 위하여 부름 받은 신앙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이 시대에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4. 해방의 완성을 위하여
우리가 일본제국주의의 만행으로부터 해방된 지 올해로 63년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해방은 우리가 쟁취한 것이 아니며, 미국이 선물한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잊을 수 없는 출애굽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해방이후, 강대국들이 설정한 분단체제 아래에서 우리는 자유의 이름으로 자유를 억압하는 구조적인 부조리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친미반공주의 노선만이 자유를 위한 유일한 선택으로 강요되고 있습니다. 대안적인 다른 노선들은 자유를 거부하는 반민족적이며 반기독교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배자들은 자유의 이름으로 자유를 제한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허락하신 자유가 지배자들의 독점물이 되었으며, 마침내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변질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다른 한편으로, 자유는 개인주의적인 방종과 탐욕을 정당화하는 구실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자유분방한 사람들에게는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다만 자신의 권리 주장과 이익 실현만이 유일한 관심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경청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전혀 다르게 생각하고 행하라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그 자유를 실천하라 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에 참여할 자유, 시대적 풍조를 거슬러 다르게 생각할 자유, 그리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 세상과 다르게 살아갈 자유, 즉 이웃을 사랑하고 섬길 자유를 지금 실행하라 하십니다. 우리는 바로 예수께서 가르치고 실행하신 그 자유에 참여하기 위해 부름 받았기 때문입니다.
국민들에게 지배자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말할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한, 지도자들이 국민을 사랑으로 섬기지 않는 한, 촛불시위를 통하여 드러난 국민들의 소리를 경청하지 않는 한, 강대국들을 향해 당당하게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한, 북한의 동포들을 이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한, 광복절 행사는 아무런 의미를 지닐 수 없습니다.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 해방절 행사는 자유를 또 다시 지배 이데올로기로 변질시키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억압과 편가름에 저항하여 모든 이웃을 '사랑으로 섬기는 자유'를 실천하는 일! - 이것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해방의 완성을 위해 우리 모두가 수행해야 하는 과제입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는 자유인으로 살아가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살아갈 때에만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존재의의를 지니게 되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해방을 완성시키는 자유인의 삶을 실천함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소중한 일꾼들이 되시기를 기대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을 통하여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복된 삶에 참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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