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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현 박사의 “절대자에 대해 동양적 사고로 이해하기

박재순 (서울북노회,,목사) 2010-03-23 (화) 18:46 14년전 6322  
윤정현 박사의 “절대자에 대해 동양적 사고로 이해하기 - 유영모의 하느님 이해를 중심으로 -”를 읽고
박재순

윤박사에 따르면 서구철학은 존재와 有에 집중하고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배타적 논리에 의존하고, 상호조화적이고 보완적인 “이것도 저것도”,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의 논리에 의존하는 동양철학은 비존재와 무에 근거한다. 윤박사는 유영모의 하나님 이해가 동양철학에서 강조하는 비존재와 무, 상보적 논리에 근거해 있다고 보았다. 이렇게 이해된 유영모의 하나님 이해는 범신론과 범재신론에 속한다고 보았다.
윤박사는 다석의 사상을 한국의 다종교문화의 상황에서 이루어진 상황신학으로 이해한다. 상황신학은 개인의 체험에서 출발하며(베반스), 구성 또는 재구성하는 것이며 재개념화하는 것(카우프만)이다. 윤박사에 따르면 다석은 하나님을 태극, 태허, 도, 절대무와 같은 동양적 개념으로 파악한다.

나는 윤박사의 이런 접근에 대체적으로 동의하면서 몇 가지 문제를 제기하려고 한다.
첫째 서구의 학문세계에서 사용하는 개념과 용어들, 다시 말해 상황신학, 현상과 초현상, 범신론과 범재신론, 재구성과 재개념화 등과 같은 말들이 무비판적으로 또는 무반성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상황신학이란 말은 성서본문이나 교리, 신앙내용보다는 오늘의 주어진 상황에 충실한 신학이다. 본문(경전)과 상황 가운데 상황을 선택하도록 강요한다. 유영모는 상황신학이나 경전신학 가운데 선택하지 않고 상황과 경전, 나의 삶과 경전(그리스도)의 생명을 통전하는 사상가였다. 현상에서 태극을 보고 초현상에서 무극을 본다는 것도 다석에게는 지나치게 이분법적이다. 범신론과 범재신론은 만물 속에서 또는 만물과 관련해서 하나님을 이해하는 존재 중심적 사유이며 개념이다. 다석이 공과 무에서 하나님을 보는 것과는 다른 사고이다. 또한 다석이 기독교 신앙과 하나님 이해를 재구성하고 재개념화한 것은 사실이지만 다석의 사상을 사상의 재구성이나 재개념화로 보는 것은 다석사상을 논리와 개념을 중심으로 하는 관념적 논의의 지평으로 끌고 가서, 해석학적 이해와 해석의 지평에 한정시킬 수 있다. 서구적인 개념과 학문방법론이 다석연구를 지배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서 다석연구가 언어와 개념의 논의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다석사상은 삶, 깨달음, 실천을 떠나서는 이해될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 기독교에 대한 하르낙의 이해도 하르낙 당대의 사회적 가치와 관념, 다시 말해 19세기, 20세기의 자본주의적 관념적 가치관과 인간관을 반영한다. 기독교는 “그리스도의 옷을 입은 희랍사상”이라고 보는 것이나 삼위일체론의 교리도 희랍 존재론의 존재와 본질에 근거를 둔다고 본 것은 개념과 용어를 중심으로 기독교를 이해한 것이다. 삼위일체적 신관은 역사 속에서 인간과 더불어 인간을 구원해가는 창조적 초월자에 대한 성서적 믿음에서 나온 것이다. 성서와 기독교(교리)는 삶의 중심에서 역사와 사회의 한 가운데서 이해되고 실천되어야 한다. 깨달음의 체험과 행동의 실천 속에서 역사의 맥락과 사회적 관계 속에서 이해되고 체현되어야 한다. 다석 사상도 깨달음과 실천 속에서 닦여지고 표현된 것이다.

다석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개념이나 논리, 해석학적 이론을 사용할 수 있으나 매우 제한적으로만 사용해야 한다. 다석의 신학이 있다면 그 신학의 핵심은 논리에 있지 않고 깨달음의 체험과 사건에 있다.
다석의 사상적 과제는 일차적으로 해석학적 과제도 아니고, 재개념화도 아니었다. 그것은 살고 죽는 문제였고, 생사를 넘어, 시공을 넘어, 물질에 대한 욕심과 집착을 넘어 대자유에 이르는 것이었고, 나와 너와 그를 넘어 하나로 귀일하는 것이었다.
다석에게서 無와 空의 개념도 존재론적 개념이 아니라 삶과 깨달음의 문제이고 차원이고 경지였다. “없는 것”이 “내가 되는 것”이란 말은 모든 것이 “나”의 문제이며 “나”로 귀결되고 “나”는 하나님, 우주, 인류와 하나로 되는 공동체적 대동의 주체이고 근거였다. 무와 비유(非有)가 서구철학에서는 존재론적 개념이고, 인도의 철학에서는 사변적 논리의 대상이었는지 몰라도 다석에게는 영성적 깨달음의 자리이고 차원이며, 논리였다.
다석에게서 공과 무는 우주를 끌어안는 품이고, 모든 존재의 바탕이며, 모든 것을 “하나”로 귀일시키는 하나님이고,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이고 내가 “나”로 되는 자리이며, 자유와 초월의 놀이 공간이고, 빈부귀천, 신분과 계급을 넘어 씨알의 대동세상으로 들어가는 문이며, 햇볕에 그을린 농부의 얼굴에서 화광동진(和光同塵)을 보는 진인(眞人)의 경지이며, 영생의 길이다. 이 깨달음과 실천의 삶과 사건, 정신을 이해하고 드러내고 다석의 정신과 삶에 참여하는 일이 다석연구의 일차적 과제이다. 논리와 개념을 넘어서는 존재와 깨달음의 경지를 드러내는데 필요한 만큼만 논리와 개념, 언어와 이론을 사용할 때 다석 연구가 다석의 정신과 사상에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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