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 ::
 
 
 

강성영 교수의 글 “하나님의 고난과 뒤따름의 의미

박재순 (서울북노회,,목사) 2010-03-23 (화) 18:47 14년전 6353  
강성영 교수의 글 “하나님의 고난과 뒤따름의 의미-본회퍼와 한국교회의 만남”을 읽고



강교수는 본회퍼의 죽음에서 논의를 시작했다. 그는 본회퍼를 “과거의 역사 속에서 기념할 만한 한 사람의 독일신학자”로 보지 않고 우리의 삶과 역사의 밑바닥에서 만날 수 있고 우리 속에 살아 있는 존재로 보았다. 강교수는 “각각의 우물에서 길어 올리는 샘물이 역사의 지층 밑바닥을 흐르는 경험의 물줄기에 닿아 있는 것과 같이 본회퍼와 우리는 고난의 경험을 통해 시공(時空)을 넘어 연결될 수 있다.”고 했고, 더 나아가서 본회퍼는 정의와 민권을 위해 싸우다 희생된 세계의 민중의 “가슴 속에···형제로서 남아 있다.”고 했다. 나는 강교수의 이런 본회퍼 이해에 전적으로 공감하고 동조한다. 참으로 본회퍼는 이론적 학문적 학자로 머물지 않고, 삶과 행동의 신학자로서 오늘도 그 정신과 뜻이 뚜렷이 살아 있는 신학자이다.

이 글에서 강교수는 본회퍼의 신학과 민중신학을 비교하며 공통점을 밝히고 신학적 차이도 지적했다. 먼저 강교수는 민중신학자들이 본회퍼를 만난 자리가 “감옥”이고 감옥이 신학함의 장소였다고 한다. 장소는 실존적 삶의 자리이며 신학함의 장소가 신학의 내용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몰트만도 “본회퍼 신학이 지닌 매혹적 신비”라는 글에서 본회퍼 신학의 장소를 논하면서 『윤리』는 저항운동에 기여한 정치신학, 『저항과 복종』(옥중서신)은 옥중신학이라고 하면서 『윤리』와『옥중서신』을 통해 “매료되었고, 황홀했고 해방되었다.”고 말했다.(기독교사상. 2006. 10. 23-4쪽) 본회퍼의 신학은 서재의 신학이 아니었고 삶의 신학, 행동의 신학이었다. 그의 비종교적 해석도 이론적 해석학이 아니라 실천적 윤리적 해석학이었다.
강교수에 따르면 본회퍼의 신학과 민중신학은 신학함의 자리에서 그리고 선교적 실천과 저항운동의 관점에서 만난다. 본회퍼는 감옥에서 민중을 발견하고 저항운동의 과정에서 세계역사를 “아래로부터 보는 관점”을 배웠다. 민중신학자 안병무도 감옥에서 본회퍼를 발견하고 본회퍼를 따라서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 하나님과 더불어” 고난당하는 민중을 발견했다.
강교수는 본회퍼와 민중신학자가 고난의 경험을 공유하고 고난 속에서 하나님과 민중을 보고 신학을 형성했으나 양자 사이에 차이가 있음을 지적한다. 본회퍼에게서 민중의 고난은 하나님의 메시아적 고난과 질적인 차이를 가지나 민중신학에서는 민중의 고난 속에서 예수의 고난을 발견하고 동일시했다는 것이다. 이런 차이는 민중신학과 본회퍼 신학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독일과 한국의 역사적 차이를 주목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독일과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민중의 구실이 달랐다. 한국에서는 지배 엘리트(실학자들과 개화파)의 근대화와 개혁 노력이 실패로 끝나고 동학혁명 이후 7-80년대에 이르기까지 민중이 역사의 중심과 선봉에서 역사를 이끌어왔다. 이에 반해 독일에서는 비스마르크 이래 지배 엘리트의 근대화와 개혁 노력이 역사를 주도해갔고 민중의 주체적 해방투쟁 경험이 부족했으며 히틀러 집권 시기에는 대다수의 민중이 히틀러를 맹목적으로 추종했다. 본회퍼는 히틀러를 추종하는 독일국민들을 보면서 고난당하는 민중을 위해 행동했으나 민중을 역사의 주체로 보지는 못 했다. 이에 반해 민중신학자들은 민중을 역사의 주체로 발견하고, 민중의 고난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사를 보았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신학은 강교수가 말하듯이 “복음의 본질을 발견하고 약자를 편드는 하나님의 정의를 선포하고 이에 상응하는 책임적인 삶을 추구했다는 점에서...커다란 동질성을 보여 주고 있다.” 본회퍼가 추구했던 신학과 실천, 특히 옥중에서 구상했던 비종교적 해석은 삶과 역사의 한 가운데서 종교 냄새를 피우지 않고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는 것을 지향했다. 어쩌면 본회퍼가 지향했던 것을 우리의 선배 그리스도인들은 본회퍼를 모르면서도 또 본회퍼가 그런 생각을 하기도 전에 실천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안창호, 이승훈, 조만식, 유영모, 함석헌, 송창근, 김재준, 문익환, 민중신학자들과 민중선교자들, 전태일은 삶과 믿음의 일치 속에서 공동체적이고 사회적인 영성을 깊고 풍성하게 실현했던 것은 아닌가?


hi
이전글  다음글  목록 글쓰기

츲ҺڻȰ ⵵ ȸ ѱ⵶ȸȸȸ ()ظ ѽŴѵȸ μȸڿȸ ȸ б ѽŴб ûȸȸ ŵȸ ŵȸ ȸÿ ѱ⵶ȸȸͽ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