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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마누엘'

박경철 (전북노회,한신대학교,목사) 2010-03-31 (수) 16:21 14년전 5701  
제목: “임마누엘”
성경: 구약: 이사야 7:14 신약: 마태복음 1:23

오늘은 대림절 넷째주일임과 동시에 내일 성탄절을 맞이하여 본 교회에서는 오늘 성탄예배를 함께 드리고 있습니다. 성탄을 맞이하여 전 세계 교회가 함께 기쁨과 찬양으로 이 땅에 평화의 임금으로 오시는 아기 예수를 경배하는 예배와 미사가 드려집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라고 반갑게 인사하는 날이지만, 오늘 우리들에게 성탄의 반가움과 즐거움은 그리 크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쩌면 농촌교회마다 성탄을 맞아 흥겹게 즐길만한 젊은 세대들이 없어서일지도 모릅니다. 농촌교회의 성탄절은 점점 쓸쓸해져 가는 듯합니다. 그러나 성탄의 의미가 반드시 화려한 조명아래 떠들썩해야만 성탄을 느끼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성탄절, 우리는 어떻게 보내야 할까요? 성탄절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와야 할까요? 성탄은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뻐하는 날이지요. 그런데 성탄의 주인공, 예수가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수가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이 오늘 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신약성서는 아기 예수의 탄생의 의미를 그의 이름에 담았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는 아이에게 평생의 좌우명과 같은 의미로 이름을 지어주지요. 유대인들도 그랬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마태복음서의 기자는 메시야로 태어나는 아이에게 세상의 구원자라는 뜻으로 ‘예수’라는 이름을 지어줌과 아울러, 당시 성서였던 구약성서 중에서 가장 좋은, 가장 잘 어울리는 이름을 골랐습니다. 곧 이사야서 7장 14절 말씀에 들어 있는 한 젊은 여인이 낳을 아이의 이름이었던 ‘임마누엘’, 곧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다’라는 뜻으로 아기 예수의 탄생의 의미를 온 세상에 밝혔던 것입니다. 예수가 이 땅에 오시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성탄의 진정한 의미가 있습니다.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좋은 말 중에 이 보다 더 한 것이 또 어디에 있을까요? “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교인들은 많지만, 그들의 삶에 진정 하나님이 계신가요? 아니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가의 물음입니다. 기독교 복음의 가장 중심이 예수가 곡 구세주라는 것이지요. 예수가 나를 구원해 주시니, 그를 믿기만 하면 구원받고 천당에 간다는 믿음이 팽배해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예수’는 신앙고백으로는 있지만, 믿는 이들의 공동체 안에 ‘임마누엘’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 공동체 안에 진정 ‘하나님이 함께’하시는가는 의문입니다.

신앙의 개인주의는 날로 극성스러워지고, 자기만 ‘예수’로 구원 받으면 다 된 것으로 알고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남이야 어찌되든 나만 잘되면 그만이라는 이기주의는 결코 기독교 신앙과 동일시 될 수 없습니다. 예수의 오심이 구원의 징표가 되려면, 탄일밤의 밝은 다윗의 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난의 십자가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지요. 구원은 그의 탄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죽음에 있기 때문인 것이기에 말입니다.

성탄이 진정 기쁜 날이기 위해서는, 이 날에 기쁨에 참예할 수 없는 이들에게 기쁨을 나누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나만의 선물과 기쁨의 축제자리가 아니라, 슬픔과 가난, 질병과 기득권의 사회로부터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는 기쁨의 자리가 되어야 하지요. 나아가 성탄은 기쁨만을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헌신하고 희생하여 고통 받는 이들의 아픔을 내가 지는 십자가의 길이지요. 베들레헴에서 그치는 성탄이 아니라, 갈보리까지 이어지는 예수의 삶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때라야 그들에게 이 성탄의 진정한 기쁨과 해방의 축제에 그들이 참예할 수 있지 않을까요? 기쁨과 축제는 이렇게 ‘우리’가 함께 하는 삶에 있지요. 바로 그 안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기에 말입니다.

오늘 ‘예수’ 탄생의 성탄의 기쁨은 교회 안에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함께 하는 임마누엘의 성탄은 믿는 이들뿐 아니라, 우리의 이웃들, 나아가 타종교인들까지 포함해서 나를 넘어 ‘우리’ 안에 하나님이 함께 하는 것이지요. 성탄절을 맞이해 사찰에서 ‘아기예수 탄생을 축하합니다’ 현수막이 걸리는 것을 보면, 세상이 참으로 많이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곧 ‘임마누엘’의 성탄이 되는 것이지요.

이해와 용서, 화해와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이지요. 성탄절은 있지만, 여전히 우리 안에 미움과 불신, 갈등과 반목, 싸움과 전쟁이 계속 이어진다면, 2천 년 전 역사적 ‘예수’는 이 땅에 왔어도, 그가 이 세상에 와서 이루고자 했던 ‘임마누엘’의 하나님 나라는 여전히 지금도 진행형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이라크에서는 미군병사들이 전쟁터에서 크리스마스 캐롤을 부릅니다. 그리고 또 다시 내일은 총을 들겠지요. 그들에게 성탄절은 단지 하루 뿐 입니다. 아기 예수는 그들에게 보일지 모르지만, ‘임마누엘’의 하나님은 그들에게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 혼자서는 보지 못합니다. ‘우리가 함께 하나일 때’ 그 안에서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임마누엘’의 성탄절을 오늘만 아니라, 매일 매일 맞이합시다. 나만의 성탄절이 아닌, 우리의 성탄절을 만들어 갑시다. 오늘 내가 당신을 모심으로,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오십니다. 오늘 나를 당신께 드림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복된 소식이 들려옵니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임마누엘~~·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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