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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셈의 삶과 뺄셈의 삶

김민수 (서울북노회,한남,목사) 2010-04-26 (월) 18:39 14년전 4040  

오늘 우리가 사회가 빠진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맘몬지향적인 삶이 곧 성공의 삶이라고 여기는 데 있다.

맘몬지향적인 삶이란 물질중심적이고, 외향적인 삶의 태도를 통칭하며 오늘날 물질의 대명사인 ‘돈’을 지향하는 삶이라고 하겠다.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말은 진리처럼 이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으며, 금력에 따라 사회적인 지위와 권력이 결정되고 있는 것이다. 안타까운 점은 이런 것들이 종교계까지 깊숙하게 침투하였으며 개신교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니, 벗어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갖지 못해 안달하는 형국이며, ‘부흥’이라는 단어로 포장해서 맘몬(우상)을 하나님 자리에 앉혀놓았다.  _?xml_: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맘몬지향적인 삶은 우리에게 덧셈만이 살길이요, 성공이요, 부흥이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필요하지도 않은 것을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만들어 놓고, 없어도 되는 것을 없으면 안 되는 것처럼 착각하게 한다. 이미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끊임없는 신상품에 대한 소유의 욕구에 불을 지피는 것이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 더 성공한 삶, 더 축복받은 삶이란 지금 가진 것보다 뭔가가 더해진 삶이라고들 생각한다. 쉬운 예를 들자면 30평 아파트에서 40평 아파트로, 평면 TV에서 3D TV로, 소형차에서 중형차로, 100명 교인에서 200명 교인으로 이렇게 가는 것이야말로 성공한 삶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방법을 친절하게 가르쳐준다는 책들이 종교계에까지 깊숙이 파고 들어와 베스트셀러가 되어 활개를 치는 것이다.  

긍정의 힘이니, 블루오션이니,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느니 하는 책들의 면면을 보면 그 어디에도 뺄셈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오로지 더하기의 삶이 있을 뿐이다. 이런 류의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많은 이들에게 읽히고, 이런 책에서 주장하는 것들이 마치 축복받은 삶인 양 포장되면서 뺄셈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삶은 실패한 삶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 이 사회가 건강성을 회복하려면 덧셈의 삶이 아니라 뺄셈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현대인들은 너무 많은 것을 가진 까닭에 자기가 소유한 것의 주인이 아니라, 노예로 전락했다. 인간이 소유한 것들이 인간을 소비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자연에는 소비자가 없다. 소비하는 동시에 생산자로서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독 인간만은 불명예스러운 ‘소비자’라는 말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간다. 그러나 깊은 내면을 살펴보면, 인간은 자신이 가진 것들을 유지하려고 ‘소비자’가 되어 자신의 삶을 ‘소비’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소비자’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고 살아간다는 것은, 인간이 아직도 자신들이 자신들의 삶에서 얼마나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지 알지 못한다는 반증이기도 한 것이다. 

우리 삶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버린다고 생각해 보라.
결국에 남는 것은 최소한의 의식주일 것이다. 만약, 우리가 최소한의 의식주를 해결하면서 사는데 자족한다면 그 삶이 얼마나 여유로운 삶이 될까?  

오늘날 경쟁이란,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더 가지려는 경쟁이다.  

끊임없는 생존경쟁을 이야기하지만, 이미 지구 상에는 생존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이 충만한 것이다. 단지, 나눔의 부정의가 존재할 뿐이다. 내일의 양식을 위해서가 아니라 옆 사람을 뛰어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경쟁을 부추기는 것이다. 이 현상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없으며, 구원의 길에 이를 수 없다. 

교회는 이것을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종교지도자는 솔선수범으로 뺄셈의 삶을 살아감으로 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종교지도자들이 뺄셈의 삶에 대한 의식도 없이, 그저 더 많이 가지는 것을 축복이라고 가르친다면 희망은 없다. 

뺄셈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불편하다. 모두 덧셈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뺄셈의 삶을 살아간다면 바보처럼 보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에서 약사 빠른 사람과 바보 중 어느 누가 하나님의 말씀과 가까운 삶을 사는 것인지는 자명한 일이다. 

당장에는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것들이 사라졌을 때 인간은 대안을 찾게 마련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는 말씀은 오로지 이 땅에 자연인으로 몸뚱이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도록 창조되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컴퓨터 게임과 학원과 학교만 오가던 아이들도 문명의 이기와 동떨어진 곳에서 며칠만 지내면 자연에서 놀잇감을 얻는다. 그리고 이내 도시에서보다 더 신나고 재미있게 논다. 아이들에게서 컴퓨터와 학원과 학교를 빼내니 아이들이 더 아이들다워지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어른들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뺄셈의 삶,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에 훈련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그 훈련의 장으로 우리에게 자연을 주셨다.
이제부터라도 뺄셈의 삶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한 초보자라면, 숲길을 산책하는 것이 아주 좋은 방법이다. 그냥 거닐면서 숲을 느끼라. 그렇게 숲과 호흡을 한 후에는 하나 둘 산책길에 만나는 것들을 바라보라. 꽃, 나무, 풀, 새 등등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피조물들이 그곳에 있는지 바라보라. 그리고 그것을 보는 눈을 떴다면, 이제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라. 이 과정은 어쩌면 이전의 과정보다 오랜 인내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결국, 사랑하는 것의 구체적인 증거는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그리고 이젠 그 피조물 속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읽어라. 이 지구 상에 허투루 창조된 것은 하나도 없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이제 자신의 삶으로 자연스럽게 돌아오게 된다.

그동안 덧셈의 삶만을 추구해온 자신의 삶의 문제가 무엇인지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부터가 진짜 신앙인으로서의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제, 내 삶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알겠지만, 그 문제에서 벗어나는 것이 너무도 어렵다는 것을 아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이런 갈등을 나는 거룩한 갈등이라고 부른다. 물론, 이 거룩한 갈등을 위해서 위에서 소개한 숲길을 거닐며 자연과 대화하는 방법이 유일한 통로는 아니다. 그것은 단지, 내가 도달한 방법의 하나다. 

나는 틈만 나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이 숨 쉬는 곳으로 달려간다.

때론 신음하는 모습도 보고, 때론 생명기운이 충만한 자연을 만나기도 한다. 그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내 삶에서 빼내야 할 것들, 버려야 할 것들을 만난다. 성숙한 삶이란, 구도자의 삶이란 가벼운 삶이라고 고백한다. 아직도 버리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아 늘 한탄하며 살아간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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