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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소리를 듣는 것은 샤머니즘?

김민수 (서울북노회,한남,목사) 2010-05-09 (일) 08:16 13년전 3456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하지니라(로마서 1장 20)

기독교조직신학 인간론에 의하면 인간을 이해하려면 두 가지 기본 전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인식이요, 또 하나는 성육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결국, 참 나를 알고, 참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면 결국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하나님(참 하나님과는 다른)을 믿게 되는 것이니 참 나를 알고, 참 하나님을 아는 일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참으로 은혜가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그가 만드신 만물을 통해서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보여주시어, 누구든지 하나님을 알게 하셨으니 말입니다.

하나님을 안다.

기독론에서 '인간의 인식 안으로 들어오는 하나님이 하나님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지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인간 포함)을 통해서 알려주신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자연이 들려주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자연에서 하나님을 보려는 시도는 그 자체를 신성시하는 샤머니즘과는 다른 것임에도 불구하고, 보수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는 분들은 동양적인 사상이 많이 들어있다하여 배척을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시대마다, 지역마다 예수는 다른 모습으로 전파되었습니다. 그것은 예수가 달라서가 아니라 예수를 설명하는데 어린 아이에게 설명하는 방식과 어른에게 설명하는 방식이 다른 것 정도로 생각하시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동양사상은 모조리 미신적인 것처럼 매도해 버렸고, 결과 우리말로 신학을 하기도 어려운 풍토를 만들어 버렸습니다.

우리 안에 무의식적으로 내재되어있는 동양적인 정신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잘 심으려는 의도는 다원주의로 치부되기도 합니다. 다석 유영모 선생과 씨알 함석헌 선생이 그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위의 본문은 복음이 전파되기 전에 죽은 이들의 구원에 대한 의문에 대한 사도 바울의 대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미 예수라는 이름은 부르지 않았지만 자연을 통해서, 삼라만상을 통해서 누구나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자연만물을 보면서 하늘의 섭리를 깨닫고, 예수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뜻에 비추어 합당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열려있는 것이요, 이미 구원을 받은 것이지요.

오늘 날, 현대인들은 자본주의적인 사고방식에 길들여져 있습니다.

그래서 경쟁과 맘몬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 천천히 느릿느릿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며 물질을 추구하지 않고 자연을 추구하며, 이 시대의 흐름과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단시하고 있습니다. 누가 이단인지 모르겠습니다.

참과 거짓을 구분하는 것은 참 쉽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참 쉽다 말하기까지는 몇 번의 깨어짐의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 깨어짐의 과정(거듭남의 과정)을 두려워하거나, 그것 없이 구원의 확신을 말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것은 참 하나님을 만난 것이 아니라 자기가 이해한 하나님을 만난 것에 불과합니다. 자신의 지식으로 왜곡된 하나님, 그것에 대한 확신은 이단사설보다도 더 무섭습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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