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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

십자가와 걸레

김성 (서울동노회,예수원교회,목사) 2010-06-25 (금) 12:38 13년전 4578  

                                                           십자가와 걸레



시골에서 목회하는 마흔을 갓 넘긴 젊은 목사가 승합차를 몰고 마을 앞 신호등 앞에서 신호 대기하고 있다가 졸음운전으로 중앙선을 넘어 달려온 유조차에 받혀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2004년 11월, 4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그는 <하나님·사람·자연이 숨쉬는>이라는 부제가 붙은 <샘>이라는 계간지를 발행하던 감리교 목사 채희동입니다. 채희동 목사는 "예수 믿고 구원받아 천국가자"는 한국교회의 외침 속에서 지금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 땅에서 아픈 이와 슬픈 이의 고통에 동참해 보자고 조용히 속삭였던 사람입니다.

"당신은 왜 자꾸 하늘만 바라보고 있나요? 당신이 믿는 예수님은 하늘의 자리를 버리고 이 땅에 내려와 가난한 이들과 병든 세상을 돌보시다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는데 말입니다. 아직도 당신의 가난한 이웃은 차가운 땅에서 따스한 당신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데, 남과 북으로 갈라진 이 민족은 당신의 평화와 통일의 외침을 바라고 있는데,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은 사람들의 탐욕으로 파괴되어 가고 있는데, 당신은 여전히 선녀처럼 하늘로 올라갈 생각만 하고 있구려"

당신은 왜 자꾸 하늘만 바라보고 있나요? 채희동 목사의 이 말은 하늘로 승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느라 하늘만 쳐다보고 있던 제자들에게 천사들이 나타나 한 말과 똑 같습니다. 행1:10-11절<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세상에 가득한 하나님의 일을 하시려 하늘을 떠나 이 땅에 오셨던 주님! 그 주님을 믿는 우리가 하늘만 쳐다보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우리는 이 땅에 가득한 하나님의 일을 찾아서 부지런히 주님처럼 일해야 합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당회실에 들어와 잠깐 책상에 앉아 책을 폈습니다. 제가 3월의 추천도서로 교인들에게 일독을 권한 <우리가 몰랐던 이 땅의 예수들>이란 부제가 붙은 <울림>이라는 책입니다. 채희동 목사가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조용히 책을 펼쳐 두 세 장을 읽고 있는데 교회당에서는 누군가 울면서 기도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책에서는 어떤 동료목사가 채희동 목사가 죽었다는 갑작스런 비보를 듣고 그의 시신이 안치된 병원 영안실에 들어섰을 때 벌어졌던 놀라운 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조문을 온 동료목사에게 채희동 목사의 영이 임해서 동료목사의 입을 통해서 갑작스런 자신의 죽음에 충격과 슬픔에 잠겨있던
사람들을 위로하더라는 것입니다. "나는 너무 너무 좋은 곳에 왔으니 아무런 걱정하지 말라. 난 할 일을 다했다. 그래서 가는 것이니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마라" 이 대목을 읽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져 책상에 그대로 엎드러져 울었습니다. 자신의 죽음을 애통해하며 위로하러 온 사람들을 되레 안심시키고 위로하는 채희동 목사의 마음이 곧 예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유조차에 받혀 그 자리에서 즉사한 자신의 비극적인 죽음이 결코 허무한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다 하고 좋으신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알려줌으로써 비통에 잠겨있던 사람들을 위로하고 떠나는 채희동 목사의 그 마음은 정녕 예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무덤으로 자신을 찾아온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곧 내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단 한번 살기에 일생(一生)이라 부르는 우리의 인생,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할 일을 다해 하나님이 오라 부르시면 어떤 모양으로 죽어도 좋은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채희동 목사의 <십자가와 걸레>라는 글은 우리가 이토록 짧게 세상을 사는 동안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하며 살아야 하는 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세상을 깨끗하게 닦는 십자가 걸레를 손에 쥐고 하나님이 만드신 아름다운 세상에 더럽게 낀 때와 얼룩을 부지런히 씻어내고 닦아서 세상을 깨끗하게, 아름답게 만드는 하늘의 청소부가 됩시다.

<십자가와 걸레>

임신 두 달째 접어들어 입덧이 심한 아내를 위해 청소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밥도 지으면서 나는 걸레와 많이 친해졌다. 걸레는 자신의 몸으로 더럽고 먼지 낀 곳을 닦고 닦아 깨끗하고 아름답게 만든다. 만약에 이 세상에 걸레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세상은 온통 오염덩어리요, 시궁창보다 더 더러워서 살기 힘든 곳이 될 것이다. 거리에 환경미화원이 없다면 거리는 오물투성이일 것이요, 집에서 걸레를 들고 청소하는 이가 없다면 집 안은 난장판이 될 것이다. 오염된 공기, 오염된 물을 정화해주는 자연이 없다면 사람은 한순간도 살 수가 없을 것이다.

이 세상이 이나마 살 만한 것은 이처럼 소리 없이 빛도 없이 자신의 몸으로 걸레의 삶을 살아가는 생명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걸레를 바라보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이 있다. 십자가였다. 십자가 역시 누군가가 짊어져야 십자가이지, 짊어지지 않는 십자가는 나무토막에 불과하다. 그렇구나. 십자가야말로 이 세상의 걸레이구나. 예수께서 십자가를 짊어지셨기에 예수는 우리의 주님이 되셨고, 그 십자가가 우리를 살리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너무 추상적으로, 혹은 교리적으로, 신학적으로만 생각한다. 십자가는 문자 속에, 신학 속에, 교리 속에 있지 않고 우리의 삶 속에 있어 우리가 언제든지 손에 쥐고 닦아야 하는 걸레인지도 모른다. 예수께서 자신의 생명을 다 바쳐 짊어지고 세상을 사랑으로 가득 채우신 십자가, 그것은 바로 오늘 내 손에 들려진 걸레이다. 걸레가 자기 몸을 희생하고 바치고 헌신하며 더러운 곳을 닦아내고 깨끗하게 아름답게 하는 것처럼, 십자가가 의미하는 것 또한 자기희생, 자기 헌신, 자기 내어놓음, 자기 비움, 자기 나눔이 아닌가.  - 채희동 -

(2009.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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