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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

새보다도 땅을 적게 밟는 인생

김성 (서울동노회,예수원교회,목사) 2010-06-25 (금) 12:40 13년전 3961  

                                         새보다도 땅을 적게 밟는 인생 



<그는 새보다도 적게 땅을 밟는다.>

                           김기택



날개 없이도 그는 항상 하늘에 떠 있고

새보다도 적게 땅을 밟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아파트를 나설 때

잠시 땅을 밟을 기회가 있었으나

서너 걸음 밟기도 전에 자가용 문이 열리자

그는 고층에서 떨어진 공처럼 튀어 들어간다.



휠체어를 탄 사람처럼 그는 다리 대신 엉덩이로 다닌다.

발 대신 바퀴가 땅을 밟는다.

그의 몸무게는 고무 타이어를 통해 땅으로 전달된다.

몸무게는 빠르게 구르다 먼지처럼 흩어진다.



차에서 내려 사무실로 가기 전에

잠시 땅을 밟을 시간이 있었으나

서너 걸음 떼기도 전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그는 새처럼 날아들어 공중으로 솟구친다.



그는 온종일 현기증도 없이 20층의 하늘에 떠 있다.

전화와 이메일로 쉴 새 없이 지저귀느라

한순간도 땅에 내려앉을 틈이 없다




독일의 극작가 피터 한트케는 "걷는 사람만이 자기 자신에게로 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생(生)은 여정(旅程)입니다..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는 것이 사람의 생(人生)입니다. 그곳이 내 마음 속 깊은 곳을 향한 자기성찰의 여정이든지 절대자를 찾는 구도의 순례(巡禮)이든지 사람이 산다는 것은 어딘가를 향해 끊임없이 걷는 것입니다. 모세와 이스라엘백성은 하나님이 가라하신 약속의 땅을 향해 40년을 끊임없이 걸었습니다. 뜨거운 모래바람과 배고픔과 목마름 속에서 걸어야했던 그 고통스런 걷기를 통해서 이스라엘은 비로소 그들 뼛속 깊이 배어있던 종(從)의 근성을 벗어버리고 자유한 영혼으로 거듭났습니다. 그들은 광야를 걸어가면서 절대자이신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영적순례를 하는 사람들에게 걷기는 신(神)과의 합일을 구하는 일종의 방편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시편은 본래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향해 걸어가면서 부르던 노래였습니다. 성전을 향해 걸으면서 이집트의 노예생활에서 해방된 기쁨을 노래하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헌신을 다짐하며, 삶의 불안과 무거운 고뇌를 씻어줄 하나님의 은혜를 갈구하였습니다.  

김기택의 시는 오늘 우리가 얼마나 걸을 기회를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지를 잘 보여줍니다. <다리 대신 엉덩이로 다닌다>는 표현이 우리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봄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면서 꽃과 새와 들판을 바라보며 걸을 수 있는 기회를 우리는 스스로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와 발바닥으로 교감하며 살 수 있는 시간이 새보다도 짧은 삶을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영성이 갈수록 빈곤하고 메말라 가는 것은 이처럼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와의 발바닥교감이 메말라 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니체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가능한 한 앉아 있지 말라. 자유로운 움직임에서 나온 생각이 아니라면 믿지 말라. 모든 선입견은 내부로부터 나온다. 오래 앉아 있는 것은 성령을 거스리는 죄다" 행동하는 사고(思考)의 필요성과 가치를 역설하는 니체의 이 말은 우리의 육신이 정체(停滯)되어 있을 때 사고(思考)마저도 정체될 수 있음을 경계하는 말입니다.. 탁상공론(卓上空論)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책상 앞에 가만히 앉아서 머릿속에서 나온 생각은 공허한 생각(空論)일 뿐입니다. 현장을 발로 뛰면서 발에서 나온 생각이야말로 진정 가치 있고 유효한 생각입니다. 그래서 책상머리에 앉아 있지 말고 발로 뛰라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신앙도 가만히 앉아서 묵상만 하는 신앙은 자기만의 편협과 선입견의 아우라를 쌓기 십상입니다. 교회 안의 공론으로 그치고 마는 신앙은 우리 자신에게도, 세상에게도 아무런 소용과 가치가 없습니다. 머리와 입이 아니라 발이 움직여야 합니다. 기도를 입으로만 할 것이 아니라 발로 해야 합니다. 전도를 입으로만 할 것이 아니라 발로 해야 합니다. 사랑을 입으로만 할 것이 아니라 발로 해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사52:7)> 복음 들고 산을 넘는 자의 발이 아름답도다!!

오늘 우리의 신앙이 발바닥으로 고백되는 신앙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과 작별하시는 최후의 만찬자리에서 제자들의 발을 정성스럽게 씻어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도(道)를 발바닥으로 증거하는 제자가 되라는 무언의 당부가 아니었을까요?

봄바람 맞으며 푸르른 강물을 바라보며 걷고 싶은 하루입니다.

(2009.3.20)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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