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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

우리가 잊고 살아 온 것 - 다시 민주주의를 생각한다

김성 (서울동노회,예수원교회,목사) 2010-06-25 (금) 13:07 13년전 3598  


                               우리가 잊고 살아 온 것 - 다시 민주주의를 생각한다



지난 18일 서거하신 김대중 전대통령 내외를 마지막으로 모신 김선기(27세)라는 여비서관이 김대중 대통령을 떠나보내는 자신의 심경을 담아 쓴 편지글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김 비서관은 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에서 북한, 통일정책학을 공부하고 있는 젊고 유능한 비서관입니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을 곁에서 모시면서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인지, 우리가 한동안 무엇을 잊고 살아왔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며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대통령님이 이룩하신 민주주의를 누리며 살아왔습니다. 자유롭게 세상에서 그 누구와도 내 의견을 말하며 소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에 대한 감사함을 잊고 지내왔습니다. 대통령님은 저에게 "너희는 참 좋은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니?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할 수 있고, 투표도 할 수 있고, 굶지도 않고, 전쟁의 고통도 모르니 얼마나 좋은 세상이니? 이것이 다 많은 사람들이 피 흘리고 싸우면서 이룩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전까지는 저는 이 세상의 단점만을 보아왔고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얼마나 행복한 세상인지 모르고 살았습니다. 우리는 물질의 소유와 풍요로움에서만 행복을 찾기 때문에 지금 민주주의 시대에 대한 감사함보다는 부족함을 호소하기만 합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은 억압받지 않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잊고 살았고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찾기 위해 피를 흘린 것에 대한 미안함 또한 잊고 살았습니다. 대통령님께서 지금 이 시대에 대한 아름다운 시선을 깨닫게 해주시고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인지 말해주신 대통령님이 너무도 보고 싶습니다. 살아계실 때 그 분의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인생에 대한 감사함을 표현하지 못했던 것이 너무나 아쉽습니다. … 그 분을 꿈에서라도 만난다면 "민주주의에 대한 감사함을 가끔씩 잊고 살아서 죄송하다"고, 그리고 "너무나 감사하고 사랑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김 비서관의 말처럼 억압받지 않는 것에 대한 고마움,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고마움을 우리는 한동안 잊고 살았습니다. 우리는 지난 민주정부 시절을 지나오면서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이미 완성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권력이 오만과 독선으로 국민을 억압하는 독재의 어둔 그늘은 완전히 사라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착각이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용산참사 직후인 올해 초 "민주주의가 반석에 섰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며 비통해 하셨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당시 정부는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설치한 분향소에 국민들이 분향하는 것조차 경찰차로 에워싸 막았습니다. 불법집회의 우려가 있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영결식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조사(弔辭)를 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현 정부에 비판적인 발언을 할 위험이 있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을 예측하고 정부의 환율 정책에 대한 비판적인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는 이유로 인터넷논객 미네르바는 구속되었다가 법원에 의해 무죄로 풀려났습니다. 현 정부가 억지배임혐의를 씌워 쥐 잡듯이 사장직에서 쫓아냈던 정연주 KBS사장은 지난 18일 법원으로부터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국방부가 국민들이 읽어서는 안 되는 불온서적을 지정하여 발표하고 국민들의 사상을 다시 검열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군과 관련된 범죄수사를 담당하는 기무사가 다시 민간인을 사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모두가 이제는 역사의 박물관에 구시대의 퇴물로 안장되어 있으리라고 믿었던 독재의 유물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버젓이 되살아났습니다. 이제는 민주주의 세상이 되었다고 우리가 안심하는 사이에, 이제는 경제만 살리면 된다고 믿었던 역사의 백주대낮에 캄캄한 독재시절의 망령들이 보란 듯이 되살아나 춤을 추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우리가 잊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억압받지 않는 것의 소중함과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피를 흘리며 싸운 세월의 소중한 기억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자유, 억압받지 않는 자유, 그런 자유는 이미 얻었다고 우리 모두 착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이제는 배만 부르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믿었습니다. 민주주의, 자유, 인권을 말하는 것은 이미 철 지난 노래를 부르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안경환 국가인권위원장은 퇴보하는 인권현실에 자괴감을 못 이겨 "정권은 짧고 인권은 영원하다"는 외마디를 남기고 스스로 사퇴했습니다. 아시아인권위원위(AHRC)는 국가인권기구국제조정위원회(ICC)에 한국의 국가인권위 등급을 A등급에서 B등급으로 하향조정할 것을 요구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요?

김대중 대통령이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며칠 전까지 그 분을 가리켜 국론분열을 획책하는 "아프가니스탄의 반군지도자 같다"느니 "치매 걸린 노인"이라고 모독하던 사람들의 입에서조차 "민주주의와 남북화해, 평화통일을 위해서 헌신한 거목" 운운하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참으로 민망하기 짝이 없습니다. 사후에 입에 발린 공치사를 주워 삼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정치인 김대중에 대한 호불호(好不好)를 떠나서 김대중, 그 이름 석 자가 우리 역사에 남긴 민주주의와 화해, 그리고 평화의 가치를 우리 모두가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할 뿐입니다.

(2009.8.21)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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