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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한 마리의 무게가 나가는 말(言)

김성 (서울동노회,예수원교회,목사) 2010-06-25 (금) 13:08 13년전 4583  


                                      돼지 한 마리의 무게가 나가는 말(言)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이야기 한토막입니다. 증자(曾子)는 춘추전국시대 사상가이자 공자에게 최고의 신임을 받았던 문하생입니다. 하루는 증자(曾子)의 아내가 시장을 가는데 어린 아들이 울면서 따라오자 우는 아들을 달래기 위해 증자의 아내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착한 우리 아기, 울지 말거라. 울지 말고 집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엄마가 돌아와서 돼지를 잡아서 볶아주마” 증자의 어린 아들은 이 말에 울음을 그치고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엄마를 쫓아가지 않고 집에서 기다렸습니다. 증자의 아내가 시장에서 돌아와서 보니 증자가 돼지를 잡기 위해 줄로 돼지를 묶고 있었습니다. 이를 보고 놀란 증자의 아내가 증자를 말리며 “아까 한 말은 단지 아이를 달래기 위해서 장난으로 한 말이지 진짜 돼지를 잡겠다는 뜻은 아니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증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이를 속이면 안 된다는 걸 알아야하오. 당신이 아이를 속이는 것은 아이더러 남에게 거짓말을 하고 남을 속이며 살라고 가르치는 것과 다름없소. 당신이 이렇게 아이를 속이면, 어머니의 말은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해서 앞으로 당신이 무슨 말을 하던 듣지 않을 것이요. 그러면 아이를 교육하는 것은 어려워지고 말 것이오. 그러니 돼지를 잡겠소? 아니 잡겠소?” 증자의 아내는 남편의 말을 듣고 속에 없는 말을 내뱉은 것을 후회했으나 자식을 속여서는 안 된다는 남편의 말을 옳게 여겨 함께 돼지를 잡아서 약속대로 고기를 볶아서 아들을 먹였습니다. ‘사람의 말에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는 이 단순한 진리 하나를 가르치기 위해 증자는 돼지 한 마리를 서슴없이 잡은 것입니다.  

믿음을 뜻하는 한자어 신(信)은 사람(人)의 말(言)이란 뜻입니다. 믿음이란 사람의 말에 대한 믿음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신뢰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말을 신뢰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言)을 진리로 받아들이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말을 신뢰할 수 없다면 그 말을 하는 사람을 신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기에 말은 신뢰와 믿음의 기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는 자식을 달래기 위해 무심코 내뱉은 엄마의 약속을 어린자식은 믿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말을 한 사람이 엄마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엄마가 자식과의 약속을 스스로 파기한다면 그것은 엄마에 대한 자식의 믿음을 엄마 스스로 깨어버리는 셈입니다. 깨어진 그릇에 물을 담을 수 없듯이 신뢰를 잃어버린 엄마의 말로써 자식을 교육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증자는 이 점을 간파했습니다. 돼지는 돈을 주고 다시 살 수 있지만 부모에 대한 신뢰는 돈을 주고 살 수 없는 것입니다. 돼지 한 마리와 부모에 대한 신뢰를 바꿀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서 증자는 아까운 돼지를 잡아 약속대로 고기를 볶아줌으로써 부모의 말에 대한 자식의 신뢰를 지켰습니다.  

말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의 매개입니다. 그러므로 말을 믿지 못하면 소통이 불가능해집니다. 소통이 없는 곳에 이해가 있을 수 없고 이해가 없는 곳에 사랑이 있을 수 없습니다. 성령은 소통의 영입니다. 하나님은 성령강림을 통해 언어의 장벽을 허무셨습니다(행2:4-11) 사람사이에 먼저 소통이 가능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소통을 바탕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전해질 수 있었습니다. 사랑과 믿음은 소통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사랑과 믿음이 진정 성령의 역사인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며 도처에서 소통의 부재와 그로 인한 고통을 경험합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직장에서, 국회에서, 광장에서, 금강산에서, 개성공단에서 서로 소통하지 못함으로 불필요한 오해와 긴장, 갈등, 충돌, 아픔을 경험합니다. 이 모두가 말이 신뢰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말을 신뢰하지 못하고 말이 신뢰받지 못하는 사회 속에서 참된 이해와 사랑은 꽃피기 어렵습니다. 우리사회 가장 존경받는 CEO로 꼽히는 안철수는 <신뢰야말로 가장 소중한 사회적 자산이자 가치>라고 말했습니다.  

말 한마디의 신뢰를 담보하기 위해서 돼지 한 마리를 잡았던 증자의 모습을 보며 우리들 말(言)의 무게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우리 모두가 말 한마디에 돼지 한 마리의 무게를 담아 말한다면 서로의 말을 지금보다는 더 신뢰할 수 있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2009.8.29)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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