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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

모래알 속에서 세계를 본다

김성 (서울동노회,예수원교회,목사) 2010-06-25 (금) 13:16 13년전 3724  

                                                 모래알 속에서 세계를 본다



지난 주 홍콩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1930년대풍의 디자인으로 제작된 잡화를 판다는 상점을 찾아 홍콩 섬의 셩완(Sheung Wan)이란 곳을 찾아 나섰을 때의 일입니다. 찾는 상점이 우리나라의 지하철에 해당하는 MTR(Mass Transit Railway) 셩완역 근처라는 정보만을 가지고 상점을 찾아 나섰습니다. 홍콩의 명물인 2층 트램(전차)를 타고 셩완역을 찾아가는데 트램을 운전하는 기사 분에게 트램을 타기 전에 물었습니다. “이 트램이 셩완역을 갑니까?” 그렇다고 해서 트램에 올라탔습니다. 목적지로 가는 트램을 올라타기는 했지만 문제가 남았습니다. 홍콩의 트램은 버스와 달리 정거장 안내방송이 일절 나오지 않기 때문에 내릴 정류장에 다다르면 알아서 내려야 한다는 점입니다. 셩완이란 곳을 난생 처음 가보는 터라 어디에 셩완역이 붙어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기에 저는 그저 바깥 풍경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가 빨간색의 MTR역 표지가 눈에 띠면 눈치껏 내릴 요량이었습니다. 그런데 거리로 보나 시간으로 보나 셩완역이 나올 즈음이 지났는데도 역 표지가 보이지 않자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다시 운전기사에게 물었습니다. “셩완역이 아직 멀었습니까?” 그러자 운전기사는 마치 자신이 무슨 실수라도 한 듯이 셩완역을 한정거장 지났다고 말하며 다음 정류장에 내려서 반대편으로 가는 트램으로 바꿔타고 한 정거장을 되돌아 간 후에 내리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손사래까지 치며 “No Pay! No Pay!” 돈을 내지 말고 내리라고 말했습니다. 트램을 바꿔 타면 다시 차비를 내야하므로 이중으로 차비를 내지 않도록 배려해주는 듯 했습니다. 비록 한정거장을 지나쳤다가 되돌아와야 했지만 그 덕분에 셩완역을 잘 찾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자칫 길을 헤매는 가운데 짜증이 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트램기사의 친절 덕분에 짜증대신 오히려 흐뭇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몇 년 전 중국 상하이(上海)를 여행할 때 비슷한 상황이 있었습니다. 그 때는 루쉰 공원을 다녀오는 길이었습니다. 루쉰 공원은 중국의 문호 루쉰(魯迅)을 기념해서 이름 붙인 공원인데 과거에는 홍구공원으로 불렸던 곳으로 1932년 일왕(日王)의 생일을 축하하는 천장절 행사 때 윤봉길 의사가 도시락폭탄을 투척한 곳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공원입니다. 윤봉길 의사의 유적관인 매정(梅庭)이 루쉰 공원 안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루쉰 공원을 둘러보고 나와서 상해 인민광장쪽으로 가는 버스를 물어서 탔는데 그만 버스가 엉뚱한 곳으로 가는 것 같았습니다. 인민광장은 상해의 중심지로 광장 한쪽 건물의 옥상에 SAMSUNG 로고가 큼지막하게 설치되어 있는 곳이라 알아보기가 쉬웠고 무엇보다 전날 상해박물관을 가느라 이미 광장을 가보았기에 버스가 인민광장으로 가고 있지 않다는 것을 곧 눈치 챌 수 있었습니다. 버스기사에게 인민광장을 가는 차가 아닌지를 묻자 아니라고 손사래를 칠 뿐 더 이상 아무 대꾸도 없었습니다. 그리고선 버스기사와 차비를 받는 여자안내원 둘이서 한꿔런(韓國人) 어쩌고 하며 자기들끼리 궁시렁거릴 뿐 버스를 잘못 탄 이방인인 제게 그 어떤 관심도 도움도 주려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여자안내원은 차비나 빨리 내라고 저를 재촉할 뿐이었습니다. 결국 달라는 차비만 안내원 손에 쥐어준 채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내려서 물어물어 다시 버스를 바꿔 타고서 목적지를 찾아가야 했습니다.

홍콩 트램기사의 친절한 안내 덕분에 셩완으로 가는 트램으로 무사히 갈아탄 다음 문득 수년전 상하이 버스기사와 안내원의 불친절이 떠올랐습니다. 길을 몰라 헤매는 낯선 이방인을 대하는 서로 다른 그들의 모습은 그대로 그 도시와 그 도시 사람들에 대한 인상으로 이방인의 마음속에 자리매김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단지 한 사람의 홍콩사람 혹은 상하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방인의 뇌리와 마음속에 그들은 일반적인 홍콩 사람, 상하이사람으로 비춰졌습니다. 그 한사람을 통해 이방인은 홍콩사람 혹은 상하이사람에 대한 일반적인 인상을 결정하게 된 셈입니다. “모래알 속에서 세계를 보며(To see The world in a grain)”라고 노래한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윌리암 블레이크의 시구(詩句)표현처럼 우리는 모래알 같은 한 사람을 통해서 그가 속한 사회와 구성원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한 사람의 따뜻한 친절이 그가 속한 공동체와 사회를 훈훈한 인정미가 넘치는 따뜻하고 친절한 사회로 보이게도 만들고, 한 사람의 무례함과 불친절이 그가 속한 공동체와 사회를 삭막한 사막과도 같은 사회로 보이게도 만듭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나 한 사람이니 아무려면 어때 하는 생각이 바로 그가 속한 사회를 추하고 몰인정한 사회로 만드는 주범입니다. 우리 모두는 내가 속한 공동체와 사회를 대표하는 사람이라는 자각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특히 신앙인은 더욱 그렇습니다. 나 한사람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은 그들의 뇌리와 마음속에 교회에 대한 인상, 나아가 하나님에 대한 인상을 결정적으로 가지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인은 어디를 가서 누구를 만나고 무슨 일을 하든지 교회의 대표자로, 하나님의 사신(使臣)으로 스스로를 자각하고 처신해야 합니다. 모래알 같은 나 한사람을 통해서 세상은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는 세계를 보기 때문입니다.

(2009.10.31)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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