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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

미실의 최후가 안타까운 이유

김성 (서울동노회,예수원교회,목사) 2010-06-25 (금) 13:19 13년전 3919  


                                                   미실의 최후가 안타까운 이유



최근 인기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덕만공주와 신국의 패권을 다투던 미실이 결국 독약을 마시고 스스로 자결함으로써 내전으로 치닫던 신국의 권력다툼이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대야성에 갇혀있는 미실을 돕기 위해 백제와의 국경지대인 속함성을 지키는 2만의 정예부대가 여길찬의 지휘아래 대야성을 향했지만 백제의 도발을 염려한 미실의 회군(回軍) 지시로 여길찬의 부대가 회군함으로써 미실 스스로 마지막 남은 희망의 줄을 끊어버리고 죽음을 택했습니다. 자신이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나라를 위기에 빠뜨리는 선택을 하지 않는 미실의 모습에서 진정 대인(大人)의 풍모를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실의 비장한 죽음이 못내 안타까운 이유는 단지 왕위에 오르지 못한 미실의 개인적인 좌절 때문만이 아닙니다. 덕만공주는 대야성에 갇힌 미실에게 합종(合從)을 제안했습니다. 그 이유를 묻는 측근들에게 덕만공주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미실의 사람들을 다 죽이려면 몇 년이 걸릴 것이고 신국에는 인재가 필요합니다. 인재 중에 미실만한 인재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덕만공주와 미실의 독대(獨對)자리에서 미실은 화친을 제안하는 덕만공주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반란군을 죽이고 모두 죽이면 되지 않겠습니까?” 미실의 이 말에 덕만공주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모두 죽이기는 아깝고 신국에는 인재가 필요합니다. 제가 보기론 신국에 가장 필요한 인재는 미실 바로 당신입니다. 제 그릇에 당신을 품을 수는 없겠습니까?” “신국의 주인이 되는 대신 후계자를 키운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자신은 신국을 연모하기에 신국을 갖고 싶었고 연모는 나눌 수 없다며 끝내 미실은 덕만공주의 제안을 뿌리쳤습니다. 미실의 비장한 죽음이 안쓰러운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비록 드라마이긴 하지만 역사가 미실이 아닌 덕만을 택한 이유도 바로 이것입니다. 미실은 신국을 자기 것으로 가질 수 없게 되었을 때 스스로 죽음을 택했습니다. 미실에게 있어 생(生)이란 자신이 신국의 주인이 될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덕만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비록 미실이 신국의 주인이 되지 못하더라도 미실은 신국을 위해 의미 있는 삶(生)을 살 수 있는 인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기에 비록 자신을 죽이려 들었던 정적(政敵)이었지만 신국을 위해 미실과의 화친을 제안했던 것입니다. 반드시 내가 주인이 되어야만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 나라를 위해 죽을 용기가 있다면 자신의 야망을 죽이고 자신의 삶(生)을 바쳐 나라를 위해 일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죽을지언정 권력은 결코 나눌 수 없다는 미실의 생각이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었고 끝내 자신마저도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우리사회는 지나치게 승자독식(勝者獨食)의 문화에 젖어있습니다. 승자는 모든 것을 가지고(The Winner Takes All) 패자는 국물도 없는 이 승자독식의 문화가 정치를 비롯한 사회문화 전반에 스며있습니다. 모가 아니면 도라는 생각이 우리 스스로를 퇴로
없는 비정한 막장의 다툼으로 몰아넣습니다. 승자독식의 세계 속에서 패배는 곧 죽음입니다. 그러기에 양보와 타협의 여지가 없습니다. 미실이 덕만공주의 합종제안을 뿌리치고 스스로 죽음을 택한 이유는 그가 승자독식의 가치관과 권력욕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비록 드라마이긴 하지만 역사는 권력을 독점하려 했던 미실이 아닌 권력을 나누려 했던 덕만공주의 손을 들어 주었습니다. 덕만공주의 제안처럼 미실과 덕만공주가 연합하여 신국을 다스릴 수만 있었다면 신국은 얼마나 강대한 나라가 될 수 있었을까요?

1988년 미국의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전에서 마이클 듀카키스 매사추세츠 주지사와 치열한 경합을 벌였던 흑인인권운동가 재시 잭슨 목사는 전당대회 연설을 통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의 경쟁자 듀카키스의 아버지는 의사였고 나의 아버지는 경비원이었습니다. 듀카키스의 어머니는 교사였지만 나의 어머니는 미용사였습니다. 듀카키스는 법률을 공부했고 나는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우리 둘 사이에는 종교와 인종, 경험과 관점의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이란 나라의 진수는 이런 우리가 하나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듀카키스의 선친은 이민선을 타고 미국에 왔고, 나의 선조는 노예선을 타고 미국에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앞 세대가 무슨 배를 타고 미국에 왔던지 간에 듀카키스와 나는 지금 같은 배를 함께 타고 있습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보냈던 가난했던 나의 유년시절, 나의 어머니는 슬퍼하지 않으셨고 우리는 춥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께선 털, 헝겊, 실크, 방수천, 부대자루 등 그저 여러분들의 구두나 간신히 닦아낼 수 있는 천조각들을 모으셨습니다. 어머니는 기운찬 손놀림과 튼튼한 끈으로 조각 천들을 꿰매어 훌륭한 누비이불을 만드셨습니다. 미국은 한 가지 실, 한 가지 색깔, 한 가지 천으로 짜인 담요가 아닙니다. 우리도 이제 ‘누비이불’을 건설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주인(主)이 아니라 종(奴)이 되는 영성의 종교이고 몸통(本)이 아니라 가지(枝)가 되는 영성의 종교입니다. 열매는 몸통이 아니라 가지 끝에 열립니다. 미실이 본(本)이 아니라 기꺼이 가지(枝)로 머물고자 했더라면 신국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미실과 덕만공주가 함께 기워져 아름다운 누비이불 신국을 만들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2009.11.14)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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