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 ::
 
 
 
김성

몰타의 매와 이슬람의 개

김성 (서울동노회,예수원교회,목사) 2010-06-25 (금) 13:27 13년전 3932  

                                                     몰타의 매와 이슬람의 개


2007년에 세간의 화제가 되었던 영화 가운데 <300>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와 그리스 간의 전쟁 당시 테살리아 지방의 테르모필레 협곡에서 일어난 전설적인 전투를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황제가 이끄는 100만 대군의 침공을 저지하기 위해 스파르타 왕 레오니다스와 300명의 스파르타 정예군이 테르모필레 협곡에서 벌인 장렬한 전투를 영화화한 이 작품은 개봉 당시 작품 속 스파르타 정예군병들의 식스팩(six-pack) 복근에 남성들은 자신의 저주받은 배를 보며 탄식하고 여성관객들은 탄성을 내질렀던 화제의 영화였습니다. 다소 지나치다싶을 정도의 사실적인 전투신으로 스크린이 핏빛으로 물들기는 했지만 조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걸고 100만의 대군과 맞서 싸우는 300명의 스파르타정예군의 모습은 비장함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1565년 지중해의 코딱지만 한 몰타라는 이름의 섬에서 비슷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16세기 중엽 지중해의 동쪽바다는 투르크제국의 안방이었습니다. 투르크제국의 황제 술레이만은 지중해 서쪽 끝의 이베리아반도까지 제국의 지배를 확대하고자 지중해 서진(西進)정책에 힘을 쏟았습니다. 이에 맞서 기독교세계는 연합으로 투르크제국의 팽창을 저지하였는데 그 저지선의 최전방에 몰타라는 조그만 섬이 있었습니다.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섬 아래쪽에 자리한 조그만 이 섬은 1113년에 창설된 ‘성요한기사단’의
본거지였습니다. 1530년 몰타섬으로 본거지를 옮긴 이후로 ‘몰타기사단’으로 불린 이 기사단은 애초 성지 예루살렘을 순례하는 순례자들을 치료하기 위해서 ‘의료’를 목적으로 세워진 기사단이었지만 차츰 기독교도들을 납치하는 이슬람해적들에 맞서 싸우는 전사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게 되었습니다. 귀족이나 유력한 가문출신으로 이루어진 기사단은 이슬람으로부터 기독교세계를 수호하는 수호자라는 책임감과 자긍심으로 똘똘 뭉쳐 이슬람과의 싸움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는 백전불굴의 전사들이 되었습니다. (로마멸망 이후의 지중해세계(하)-시오노 나나미)

1565년 술레이만 황제는 200척의 배와 5만 명의 투르크군사들을 투입하여 지중해 서진(西進)을 가로막고 있는 조그만 섬 몰타를 공격했습니다. 5만 투르크군사 중에는 1,600
명의 ‘마타시에테’ 병사들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마타시에테’란 아랍어로 ‘기독교도 병사를 최소한 6명 죽이겠다고 맹세한 병사’라는 뜻입니다. 투르크군사 중에서도 가장 난폭하고 잔인해서 ‘이슬람의 개’라는 별명까지 붙여졌던 ‘마타시에테’를 포함한 5만의 투르크 군에 맞선 몰타기사단의 수는 고작 501명이었습니다. 501명대 5만 명의 싸움이 지중해의 조그만 섬 하나를 두고 벌어졌습니다. 넉 달 동안 계속된 공방 끝에 투르크군은 2만 명에 이르는 사망자를 낸 체 끝내 몰타 섬 점령을 포기하고 퇴각하고 말았습니다. 몰타기사단의 희생 역시 240~300명에 이르렀지만 투르크군의 희생자 2만 명에 비하면 말 그대로 일당백의 싸움에서 승리한 셈입니다. ‘몰타의 매’로 불린 기사단이 ‘이슬람의 개’를 앞세운 막강한 투르크해군을 물리친 이 전쟁의 승리로 투르크제국의 지중해 서진(西進)정책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고 막강해군을 자랑하던 투르크해군의 명성에는 금이 가고 말았습니다. 기독교세계는 이 전쟁의 승리로 투르크해군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고 맞서 싸우면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값진 승리를 이끌었던 기사단장 라 발레타를 기리기 위해 오늘날에도 몰타공화국의 수도는 ‘발레타(Valletta)’로 그 이름을 지어 부르고 있습니다.

조국에 대한 충성심으로 300대 100만의 싸움을 마다하지 않았던 스파르타 용사들, 기독교세계의 수호자라는 신앙심으로 500대 5만의 싸움에서 물러서지 않았던 몰타기사단, 이들은 신앙과 충성의 힘이 얼마나 엄청난 괴력을 발휘하는가를 우리에게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이 엘리야 하나를 이기지 못했고(왕상18장), 사울의 삼천군사가 다윗 하나를 붙잡지 못했습니다. (삼상25장) 이 시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잃어버린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영적인 야성(野性)입니다. 신앙으로 무장하고 일당백의 정신으로 담대하게 세상과 맞설 수 있는 영적인 야성을 잃어버렸습니다. 아무 것도 아닌 일에 툭하면 상처 받았네 시험 들었네 하며 주저앉아 어린애처럼 칭얼거리기만 하는 신자들이 교회 안에 가득합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전사들이 모인 하나님의 군대가 아니라 젖 달라 기저귀 갈아달라 칭얼대고 보채는 영적인 어린애들이 모인 탁아소가 되어버렸습니다. 교회가 힘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돌봐야 하는 어린애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해 일하고 싸워야 하는 군사입니다.(딤후2:3) 우리는 ‘세상의 개’를 잡는 ‘그리스도의 매’가 되어야 합니다. 젖병 빠는 나약한 신앙을 털어버리고 신앙의 야성(野性)을 회복하십시오.

(2010.1.23)

hi
이전글  다음글  목록 글쓰기

츲ҺڻȰ ⵵ ȸ ѱ⵶ȸȸȸ ()ظ ѽŴѵȸ μȸڿȸ ȸ б ѽŴб ûȸȸ ŵȸ ŵȸ ȸÿ ѱ⵶ȸȸͽ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