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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

스포츠맨십(Sportsmanship)과 쇼맨십(Showmanship)

김성 (서울동노회,예수원교회,목사) 2010-06-25 (금) 13:38 13년전 8935  

                            스포츠맨십(Sportsmanship)과 쇼맨십(Showmanship)



밴쿠버 동계올림픽 여자피겨스케이트 부문 금메달리스트 김연아의 향후 행보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계속 선수로 남아 올림픽 2연패에 도전할 것인지 아니면 은퇴 후 프로로 전향할 것인지를 놓고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Festa on Ice 2010’이란 화려한 아이스쇼의 쇼걸로 김연아가 돌아왔습니다. 천안함 사태로 사회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은 가운데서도 아이스쇼 첫날 1만 천여 명이 넘는 관객이 김연아를 보기 위해 몰렸다고 합니다. 김연아는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 동계올림픽 쇼트프로그램에서 선보였던 007 본드걸 연기로 관객들의 넋을 빼놓았습니다. 김연아의 아이스쇼에 대한 이같은 열광은 분명 김연아에게 향후 진로를 결정하는데 큰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선수생활이 주는 고단함과 성적에 대한 압박감에 비하면 아이스쇼의 화려함과 관객들이 보내주는 열광과 갈채는 분명 김연아에게도 달콤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이미 개인적으로 목표하던 올림픽 금메달의 꿈을 이루어 목표를 상실한 21살의 어린 김연아에게 아이스쇼의 화려함은 뿌리치기 힘든 유혹일 것입니다.

김연아가 선수로 남는 것과 은퇴 후 아이스쇼의 단원이 되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선수로 남는다면 그녀는 여전히 스포츠맨입니다. 그녀는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기량을 연마하고 이전의 자신을 뛰어넘으려고 도전할 것입니다. 그것이 스포츠맨의 정신(Sportsmanship)입니다. 김연아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것은 운동선수로서 바로 그 스포츠맨의 정신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차가운 얼음판위 냉엄한 승부의 세계에서 자기와의 지난한 싸움에서 이겨냄으로써 마침내 세계 정상의 자리에 당당히 서는 모습이 세대와 인종을 넘어 세계인에게 감동을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김연아가 은퇴 후 아이스쇼단의 일원이 된다면 그녀는 더 이상 스포츠맨이 아닙니다. 쇼단원의 일원, 쇼걸일 뿐입니다. 쇼는 말 그대로 보여주기(Show)위한 것이므로 쇼맨(Showman)은 관객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스포츠맨십이 아닌 쇼맨십(Showmanship)이 필요할 따름입니다. 자기 기량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스포츠맨십과 관객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자기 기량을 뽐내고 가꾸는 쇼맨십은 다릅니다. 같은 스케이트를 타더라도 그 동기가 다릅니다. 싸이키델릭한 화려한 조명아래 관객들의 비명에 가까운 환호 가운데서 ‘보여주기(Show) 위해’ 타는 스케이트는 ‘재미’는 줄지언정 더 이상 ‘감동’을 주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돈을 받고 ‘보여주는 화려한 쇼’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운동선수의 삶에는 거짓이 없는 진실이 담겨있습니다. 오로지 실력으로 승부하는 진검승부의 세계에서 그들은 자신의 한계에 도전합니다. 여기에 스포츠맨십의 숭고함이 있습니다. 스포츠가 주는 감동의 진원(眞源)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나 스포츠가 쇼로 바뀔 때 바뀌는 것은 단지 무대와 조명과 의상만이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과 정신이 바뀝니다. 감동을 주는 스포츠맨십이 재미를 주는 쇼맨십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각종 대회 일정에 맞춰 운동스케줄을 짜고 자신을 관리하던 선수가 이제는 공연일정에 맞춰 리허설을 준비하고 공연의 흥행과 수익에 촉각을 세우고 그에 따라 울고 웃어야 할 것입니다. 김연아가 선수로 남을 지 아니면 은퇴를 하고 아이스쇼단의 쇼걸로 활동할지는 어디까지나 김연아 자신이 결정할 문제고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그 결정은 존중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21살의 나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 이상의 자기 진화(進化)가 없는 쇼걸의 길을 서둘러 가기보다는 자신에게 다시 도전하며 진화하는 김연아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바람이 있습니다.

바울은 골로새교회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골3:22>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 눈가림으로 보는 앞에서만 일하는 척, 순종하는 척하지 말고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는 말이었습니다. 쇼하지 말라는 뜻이지요. 바울은 자신을 가리켜 이런 말도 했습니다.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갈1:10>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사람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쇼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남에게 보여주기(Show) 위한 목적으로 무엇을 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누가 보지 않아도 ‘하나님 앞에(Coram Deo)’ 선 심정으로 성실하게 신앙의 삶을 살았음을 자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위선자라고 책망하신 바리새인들은 다름 아닌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마23:5)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정신은 쇼맨십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고전9:24>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으로 스포츠맨십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과 세상에 감동을 주는 신앙인이 될 수 있습니다.

(2010.4.17)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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