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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

하나님의 무진장 선물

김성 (서울동노회,예수원교회,목사) 2010-06-25 (금) 13:40 13년전 3593  


                                                 하나님의 무진장 선물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은 광해군2년(1610년) 와병(臥病)을 이유로 벼슬에서 불러난 뒤 중국의 여러 책들 중에서 속세를 떠나 유유자적(悠悠自適)하며 은둔자로 살았던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가려 뽑아 <한정록(閑情錄)>이란 선집을 만들었습니다. 허균은 사신으로 중국을 방문했을 때(1614년) 집에 있는 돈을 털어가 4천권이 넘는 책을 단번에 구입할 정도로 엄청난 독서광이었습니다. 뿐 만 아니라 허균자신이 아홉 살에 시를 지을 정도로 시문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었습니다. 허균은 한때 광해군의 신임을 얻어 벼슬이 좌참찬에까지 올랐으나 결국 반역죄로 모함을 받아 억울하게 죽임을 당해야 했습니다. 권력의 무상(無常)과 하릴없는 인생의 부침(浮沈)속에서 허균은 차라리 속세를 떠나 한적하게 한 세상을 살다간 사람들이 그리웠는지도 모릅니다. 허균은 중국의 역사 속에서 한거(閑居)한 사람들이 남긴 일화(逸話)나 구문(舊聞)을 가리어 뽑아 <한정록>을 만들었습니다. 허균은 <한정록> 서문에서 책을 지은 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형세(形勢)에 급급하다 보니 끝내 한가하지 못하여 조그만 이해(利害)에도 어긋날까 마음이 두렵고, 보잘것없는 자들의 칭찬이나 비방에도 마음이 동요되었다. 이렇게 되자 발걸음을 멈추고 숨을 죽이며 혹시 함정에 빠질까 싶어 거기서 벗어나고자 하였다. 큰 기러기나 봉황이 멀리 날듯, 매미가 허물을 벗듯 초연히 어지러운 세상을 벗어난 옛날의 어진 이와 나를 비교해 보니, 그들의 지혜와 나의 어리석음의 차이가 어찌 하늘과 땅의 차이에 그치겠는가? … 모두 열 편으로 한정록이라 이름하였는데 이는 내 스스로를 반성하려는 것이다.…>  

<한정록> 3장 <한적(閒適)>에 나오는 이야기 한 토막입니다.
<어떤 선비가 가난에 쪼들린 나머지 밤이면 향을 피우고 하늘에 기도를 올리되 날이 갈수록 더욱 성의를 더하자, 어느 날 저녁 갑자기 공중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상제(上帝)께서 너의 성의를 아시고 나로 하여금 네 소원을 물어오게 하셨느니라”
선비가 대답하기를,
“제가 원하는 바는 아주 작은 것이요, 감히 지나치게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승에서 의식(衣食)이나 조금 넉넉하여 산수(山水)사이에 유유자적(悠悠自適)하다 죽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공중에서 크게 웃으면서,
“이는 하늘나라 신선(神仙)의 즐거움인데 어찌 쉽게 얻을 수 있겠는가? 만일 부귀(富貴)을 구한다면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허균은 이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이렇게 덧붙이고 있습니다. <이 말은 헛된 말이 아니다. 내가 보건대, 세상에 가난한 자는 춥고 배고픔에 울부짖고 부귀한 자는 명예와 이익에 분주하여 죽을 때까지 거기에 골몰한다. 생각해보면, 의식(衣食)이 조금 넉넉하여 산수(山水)사이에 유유자적하는 것은 참으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극락(極樂)이건만 하늘이 매우 아끼는 바이기에 사람이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비록 가난하다 할지라도 도시락 밥 한
그릇 먹고 표주박 물 한잔 마시고서 고요히 방안에 앉아 천고의 어진 이들을 벗으로 삼는다면, 그 즐거움이 또한 어떠하겠는가>

빈부(貧富)와 귀천(貴賤) 여부에 울고 웃느라 하늘이 빗어낸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누리지 못하고 분주하게 아옹다옹 살아가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허균 자신도 권력의 부침(浮沈)에 따라 울고 웃다가 권력의 칼날에 무심히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하늘이 인간에게 주는 복 가운데는 유한(有限)한 것들도 있지만 무한(無限)한 것들도 있습니다. 부(富)나 귀(貴), 영화(榮華)가 유한한 것이라면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느끼며 자연이 주는 즐거움과 마음의 평안을 누리는 것은 무한한 것입니다. 중국 송 대(宋代)의 시인 소동파(蘇東坡)는 적벽부(赤壁賦)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천지간의 사물은 각각 주인이 있어서(且夫天地之間 物各有主)
  내 것이 아니면 터럭 하나라도 가질 수 없지만 (苟非吾之所有 雖一毫而莫取)
  오직 강 위로 부는 맑은 바람과 산 사이에 떠 있는 밝은 달은 (惟江上之淸風 與山間之明月)
  귀로 들으면 소리가 되고 눈으로 보면 색이 된다네 (耳得之而爲聲 目寓之而成色)
  그것을 가지는 것을 금할 법이 없고 쓴다고 없어지지 않으니(取之無禁 用之無竭)
  조물주가 준 무진장한 선물이로다 (是造物者之 無盡藏也)
  나와 그대 우리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것 아닌가?(而吾與子之 所共適)>

신록의 계절 오월, 세상의 부와 귀, 영화를 얻기 위해 분주한 우리의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무진장으로 주신 자연의 아름다움을 맛보며 마음과 영혼의 쉼을 얻는 일은 옛사람들이 하늘나라 신선이나 누릴 수 있다고 믿었던 최고의 즐거움(極樂)을 맛보는 일입니다.

(2010.5.8)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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