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 ::
 
 
 
김성

심불반조(心不返照) 간경무익(看經無益)

김성 (서울동노회,예수원교회,목사) 2010-06-25 (금) 13:42 13년전 4760  


                                      심불반조(心不返照) 간경무익(看經無益)




지난주일 한완상 교수님 초청예배와 평화강연회를 모두 마치고 당회실에서 잠시 환담을 나눌 때였습니다. 어느 집사님 내외가 당회실에 와서 한 교수님의 사인을 받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저도 덩달아 사인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교수님의 최근 저서 <예수 없는 예수교회>의 맨 앞장에 사인을 받았습니다. 사인을 받는 그 짧은 순간 문득 제 머릿속에 예전 법정스님의 책에서 읽은 스님의 일화가 생각이 났습니다. 한번은 법정스님이 길상사에서 법회를 마치고 설법단에서 내려오자마자 한 신도가 스님을 따라오더니 스님의 책을 내밀며 ‘좋은 말씀’을 한마디 적어달라고 했습니다. 법정스님은 속으로 ‘방금 좋은 말씀이 될 것 같은 설법을 실컷 하고 내려왔는데 또 무슨 좋은 말씀을 적어달라고 하나’싶어 마음이 씁쓸했습니다. 그래도 신자가 화두 삼아 지낼 테니 좋은 말씀을 하나 적어달라고 졸라대니 할 수 없이 ‘나는 누구인가’라고 써주었답니다. 그런데 신자인 그 분은 이 말이 마음에 차지 않았던지 재차 스님에게 좋은 말씀을 하나 써달라고 조르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스님은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에게 더 할 말이 어디 있겠는가?’ 속으로 생각하고선 하는 수 없이 신자의 요구대로 ‘좋은 말씀’이라고 종이에 가득 찰만큼 큼지막하게 써주었답니다.

한 교수님의 책에 사인을 받으면서 문득 이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순간 마치 제가 그 ‘말귀를 못 알아듣는 신자’가 된 듯 씁쓸하고 쑥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베데스다 연못가의 38년된 병자처럼 낮고 천한 버림받은 인생에게 찾아가서 그에게 인간의 존엄을 되찾아주고 스스로 일어서게끔 만들었던 예수의 마음을 가지라는 교수님의 말씀,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것보다 그 날 더 중요한 게 어디 있을까요? 로마 군병들에게 붙들려가는 순간 칼로 저항하던 베드로를 꾸짖으시며 칼의 폭력에 칼로 대항하지 말라고 했던 예수님의 깊은 속뜻을 다시금 헤아리게 해주었던 평화의 말씀을
되새김질하는 것보다 그 날 더 중요한 게 어디 있을까요? 가장 귀한 말씀과 가르침을 이미 받았는데 무엇이 모자라서 좋은 말씀 한마디, 친필로 이름 석 자 사인을 더 바라는지 생각해보면 우스꽝스럽기도 합니다.

심불반조(心不返照) 간경무익(看經無益)이란 말이 있습니다. 경전을 읽으면서도 마음속으로 자신을 돌이켜보지 않는다면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뜻입니다. 경전말씀을 소설이나 신문 읽듯이 건성으로 읽고 지나친다면 설사 성경이나 대장경을 줄줄 왼다한들 그게 무슨 소용과 유익이 있겠습니까? 경전이라는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보고 성찰할 줄 모른다면 ‘쇠귀에 경읽기’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종교를 불문하고 신자들은 좋은 말씀을 찾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말씀이 있다하더라도 그 말씀으로 자신을 성찰하지 않는 한 그 어떤 좋은 말씀도 무익할 뿐입니다.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좋은 말씀을 들으며 살아왔습니다. 부모님을 통해서, 선생님을 통해서, 신앙을 가진 사람은 목사나 신부, 혹은 스님을 통해서 좋은 말씀을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습니다. 지금까지 얻어들은 좋은 말씀만 가지고서도 누구나 성인군자가 되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사람들은 늘 좋은 말씀타령만 할까요?

예수님의 씨뿌리는 비유를 보면 ‘좋은 씨’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좋은 밭’이 따로 있을 뿐입니다. 같은 씨라도 ‘좋은 밭’에 떨어지면 때가 되어 열매를 맺지만 밭이 아닌 ‘길바닥’이나 가시엉겅퀴가 뒤덮고 있는 ‘좋지 않은 밭’에 떨어지면 아무리 좋은 씨라도 열매 맺을 도리가 없습니다. 말씀은 진리의 삶을 살기 위한 방편에 불과합니다. 진리를 가리키는 표지일 뿐입니다. 따라서 그 표지대로 살지 못하면 말씀이란 공허한 메아리일 뿐입니다. 내 마음 밭의 형편을 돌볼 생각은 않고 좋은 말씀, 은혜의 말씀 씨타령만 하는 우리세태를 한 번쯤 돌아보게 하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한국갤럽조사연구소의 조사(1998년)에 따르면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 신앙을 가진 이유를 묻자 예수를 신앙의 대상으로 믿어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서라고 답한 사람이 천주교 77.1%, 개신교 79.2%인 반면, 예수를 삶의 모델로 삼아 올바른 삶을 살기 위해서라고 답한 사람이 천주교3.3%, 개신교 6.3%에 불과합니다. 이 조사결과는 우리 신자들이 신앙을 통해 평안을 누리려할 뿐 ‘오늘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라 사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정작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라 사는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으면서 예수님의 좋은 말씀만 찾는 것은 분명 신앙의 왜곡된 모습임에 틀림없습니다. ‘좋은 말씀’ 타령하지 말고 말씀이 심어지고 열매가 맺어질 터전인 내 ‘마음 밭’부터 살펴보고 성찰해야 합니다.

심불반조(心不返照) 간경무익(看經無益)
경전을 읽어도 마음으로 자신을 돌이켜 보지 않으면 진정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2010.5.22)


hi
이전글  다음글  목록 글쓰기

츲ҺڻȰ ⵵ ȸ ѱ⵶ȸȸȸ ()ظ ѽŴѵȸ μȸڿȸ ȸ б ѽŴб ûȸȸ ŵȸ ŵȸ ȸÿ ѱ⵶ȸȸͽ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