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有所不爲(유소불위), ‘하지 않는 바가 있음’

김성 (서울동노회,예수원교회,목사) 2010-06-25 (금) 16:51 13년전 5682  


                                             有所不爲(유소불위), ‘하지 않는 바가 있음’



최근 한국교회사연구반의 공부를 인도하며 1801년 신유박해로부터 1866년 병인박해에 이르는 초기 천주교박해를 공부하는 가운데 자연스레 그 시기의 조선역사를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서학(西學)에 대해 비교적 개방적이었던 정조대왕의 갑작스런 죽음이후 정선왕후를 정점으로 하는 노론벽파의 대대적인 천주교박해는 정조가 그토록 등용하려고 애썼던 개혁적인 남인세력에 대한 집권노론의 정치적 숙청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정조와 남인, 그리고 천주교의 관계를 공부하는 가운데 규장각의 관리들이 평소 가까이에서 지켜본 정조대왕의 말씀을 기록한 정조대왕어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득록(日得錄)이라고 이름 붙여진 정조대왕의 어록을 기록하게 된 것은 정조 7년(1783년) 규장각 직제학 정지검의 건의로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의 정조실록이 정조의 정적(政敵)인 노론에 의해 편찬되었다는 점에서 그 기록에 대해 정치적 편향의 의구심이 있을 수 있는 반면에 사관(史官)들의 기록과는 별도로 규장각 관리들이 직접 기록하고 보관한 정조대왕어록은 정치적으로 각색 혹은 윤색되지 않은 정조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군주이기 전에 뛰어난 학자이자 철인(哲人)이었던 정조의 어록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세월의 간극(間隙)을 뛰어넘어 생생한 삶의 진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일득록에 나오는 정조대왕의 일언(一言)입니다.
<사대부는 하지 않는 바가 있은 뒤라야, 비로소 나랏일을 처리할 수 있다. (士大夫 有有所不爲, 然後, 方可以做國事>
사대부는 먼저 有所不爲(유소불위), ‘하지 않는 바가 있어야’ 비로소 나랏일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정조는 이렇게도 말했습니다. <지금의 사대부 가운데 有所不爲(유소불위), 네 글자를 부적으로 삼는 자가 있다면, 이 사람은 반드시 믿을만한 신하가 될 것이다> 정조는 스스로 ‘하지 않는 바가 있는 것’, 그것을 의로움(義)의 출발로 보았습니다. 사람이 무엇을 도모하기 이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은 스스로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삼가서 하지 않는 일부터 해야 합니다. 정조는 사대부가 나라를 경영하겠다고 출세(出世)하기 전에 먼저 스스로를 살펴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음이 있어야’ 비로소 나라를 위해 큰일을 맡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조대왕의 이 한마디가 어찌 조선조 사대부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겠습니까? 성서는 믿음을 의로움이라고 말합니다. 창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義)로 여기시고> 믿음은 곧 의로움입니다. 그런데 믿음이라는 의로움(義) 또한 정조대왕이 말씀한바 ‘하지 않는 바가 있음(有所不爲)’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 시내산계약에서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백성이 지키며 살아야 할 최소한의 법도로 십계명을 받습니다. 그 십계명 가운데 4계명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와 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를 제외하면 나머지 여덟 계명이 모조리 ‘하지 말아야 할 바’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우상을 만들지 말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살인, 간음, 도둑질, 거짓증거하지 말라,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영원히 지켜야 될 규례와 법도로 주신 십계명의 대부분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바’를 알려주신 것입니다. 정조대왕이 有所不爲(유소불위)한 사대부라야 비로소 나랏일을 맡을 수 있다고 한 뜻이 세월을 넘어 우리 신자(信者)들에게도 깊은 깨달음의 공명(共鳴)을 주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신자가 먼저 스스로를 살펴서 ‘하지 않는 바가 있어야’ 비로소 그 연후에 어떤 하나님의 일이든지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것을 신자의 성결(聖潔)이라고 했습니다. 딤후2:20~21 <큰 집에는 금그릇과 은그릇뿐만 아니라 나무그릇과 질그릇도 있어서 어떤 것은 귀하게 쓰이고 또 어떤 것은 천하게 쓰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악을 버리고 자기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귀하게 쓰이는 그릇이 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주인에게 쓸모 있는 그릇으로 바쳐져서 모든 좋은 일에 쓰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는 신자와 교회가 되기를 원하기에 앞서 먼저 스스로를 살펴서 하나님께서 원치 않는 바를 ‘하지 않는 바가 있는’ 신자와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말(言) 한마디부터 말해서 덕이 되고 유익이 되는 말과 하지 말아야 될 말을 스스로 가려 할 줄 알아야 합니다(言不可不擇).
뚫린 입이라고 제 기분과 감정 따라 거침없이 말하는 버릇 하나를 고치지 못한다면 참된 신자의 길은 참으로 요원(遼遠)할 따름입니다. 신앙은 有所不爲(유소불위), ‘하지 않는 바가 있음’으로부터 출발합니다.

(2010.6.27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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