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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베트의 만찬"

신솔문 (전북동노회,임실전원교회,목사) 2010-06-28 (월) 19:09 13년전 11893  


<바베트의 만찬>과의 만남은 끝까지 묘한 것 같습니다.


교인들과 식사를 하다가

이 소설 이야기를 듣고

즉각 "주의 만찬"을 떠올렸습니다.


2008년 가을, 주일 오전 예배에서

이 소설로 ‘영화 설교’를 하고

오후에는 이 영화를 함께 보았습니다.

다들 은혜 받았습니다.

좋아하는 노래의 ‘원곡’을 발견한 느낌이랄까요?


하지만 <바베트의 만찬>의 작가는 그러겠죠.

“진짜 원곡은 <주의 만찬>이에요”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영화에 대해 이미 ‘신학자’들이 언급을 했었더군요.

뒷북을 친 셈입니다.

 

2년이 지난 화요일,

찬송가를 함께 부르면서

<너 하나님께 이끌리어>를 한 교인이 좋아하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처음 접한 찬송가였지만

마음에 와 닿아

이번 주일아침예배 찬송가로 넣었는데요.

예배 전 찬양인도자께 이 곡을 ‘배우다가’

다른 교인에게서 세렌디피티(serendipity, 뜻밖의 얻은 보물) 같은

정보를 들었습니다.

 

글쎄,

이 찬송가가

바로 <바베트의 만찬> 나오는 찬송가라는군요.

 


정말 궁금한 것은

이 찬송가를 좋아하는 그 교인이

어떻게 <너 하나님께 이끌리어>를 좋아하게 되었느냐는 겁니다.

아마 <바베트의 만찬>과는 관련없는

다른 루트일 겁니다.


 

“너 하나님께 이끌이어(새찬송가 312장)


1. 너 하나님께 이끌리어 일평생 주만 바라면, 너 어려울 때 힘주시고

언제나 지켜 주시리. 주 크신 사랑 믿는 자, 그 반석 위에 서리라

 

2. 너 설레는 맘 가다듬고 희망 중 기다리면서, 그 은혜로신 주의 뜻과

사랑에 만족하여라. 우리를 불러 주신 주, 마음의 소원아신다


3. 주 찬양하고 기도하며 네 본분 힘써 다하라, 주 약속하신 모든 은혜

네게서 이뤄지리라. 참되고 의지하는 자, 주께서 기억하시리. 아멘.






2010년 맥추감사주일 "찬양대회"에 나온 <오사랑>팀입니다.
1954년생이시랍니다.

티셔츠를 하나님 약속의 도구로 쓰인 "무지개색깔"에 맞추었습니다.
한분이 치료받고 계셔서
빠진 색깔 하나는
그분을 위한 교인들의 도고기도로 채웠습니다.

<너 하나님께 이끌리어>로 찬송하셨습니다.
우리의 기도입니다.
 

 




1. “바베트의 만찬”은 1800년대 피오르드를 낀 노르웨이 바닷가 마을을 배경으로 합니다. 그 마을에는 한 목사님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섭리에 순응하며 하나님께 영광 드리며 살려고 애쓰는 기독교인(루터교)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구체적인 실천의 하나가 금욕주의적 생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옷은 검은 색이나 회색, 음식은 죽에 소금 치지도 않을 정도로 검박했습니다.

 

목사님에게는 “마르티네”와 “필리파”라는 두 딸이 있었습니다. 역시 독실하여 결혼도 포기한 채 소천하신 아버지를 대신하여 교인들을 돌보는 삶을 살게 되지요. 꽃다운 시절에 세속적 영화를 누릴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언니는 휴양을 위해 들린 로렌스 보벤히엘름이라는 장교와, 동생은 아실 파팽이라는 파리의 오페라 가수와 연결될 뻔했지요.

 

세월이 흘러 1871년, 프랑스의 내란에 가족을 잃은 바베트라는 여인이 옛 오페라 가수 파팽의 소개로 목사님 딸들에게 피신 옵니다. 낙심과 공포에 떠는 이 여인은 선한 자매와 함께 살면서 부엌일을 하게 되지요. 비록 노르웨이어가 서툴렀지만 바베트는 이내 맡은 일을 잘 해냅니다. 사람들은 바베트를 마르다(눅 10:38)로 불렀고,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시 118:22)된 것처럼 마을에서 소중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이 마을에 산 지 12년째 되는 해, 바베트는 파리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섭섭해 하는 두 자매에게 바베트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간절한 부탁을 하는데요, 두 자매 아버지 생일 식사를 자기가 준비하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특별한 만찬으로 말미암아 마침내 바베트의 ‘정체’와 ‘진심’이 드러나게 됩니다.

 

2. 오늘 신앙영상은 이 단편소설을 영화로 만든 것입니다. 20년 전 영화를 이제야 알게 된 것을 보아 대중적인 영화는 아닌 듯합니다. 그러나 1987년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칸느영화제 세계 기독교 최우수 작품상, 그 후 3년간 각종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휩쓴 사실이 말해주듯, 전문가들에게는 인정받은 작품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가을오이코스 ‘간증’으로 이 영화를 선택한 것은 아닙니다. 지난주일 설교 에서 말씀드렸듯이, ‘바베트의 만찬’은 ‘주님의 만찬’을 상징합니다. 초대 교회 초기의 성만찬에는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 장만한 어머니의 따뜻한 밥상’ 의미가 농후하게 녹아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실제 식사 속에 지금의 성찬식이 있었습니다. 바베트도 그런 밥상을 준비합니다. 희생적인 사랑과 정성을 쏟은 만찬이었습니다.

 

두 번째 신앙적 의의는 아름다운 신앙생활 모습을 이 영화 속에서 느껴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작가가 이런 신앙생활을 비판했다고 보기도 하나 원작이나 영화 속에 그런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세속적 즐거움을 추구했던 장군과 가수의 정신적 고향은 재미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이 마을이었고, 바베트도 결국 이 마을에 남게 된다는 것이 그 점을 보여줍니다. 바베트는 만찬을 통해 그들의 신앙생활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 속에서 우리는 신앙의 ‘원곡’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느껴볼 수 있으며 그것을 우리 신앙생활에 체현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변주곡’은 그 이후의 일입니다.



                                                                                          [2008년 가을 주보글]


신솔문 2013-06-04 (화) 07:27 10년전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요,
두 자매 이름은 종교개혁 동역자였던  "마르틴 루터"와 "필립 멜랑히톤"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마르틴'(Martin) -> '마르티네'
'필립(Philipp) -> '필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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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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