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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유대인들은 홀로코스트에 저항하지 못했을까?

김성 (서울동노회,예수원교회,목사) 2010-07-25 (일) 09:52 13년전 7618  

 
                                  왜 유대인들은 홀로코스트에 저항하지 못했을까?



나치에 의해 저질러진 홀로코스트, 유대인대량학살은 인류가 저지른 최악의 범죄입니다. 당시 나치에 점령된 유럽국가 안에 거주하던 유대인의 수는 대략 8,861,800명 이었다고 합니다. 그 중 67%에 해당하는 600만 명이 나치에 의해 학살되었습니다. 당시 유대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던 폴란드를 포함해 독일, 오스트리아, 발틱연안의 국가들에 거주하고 있던 유대인들은 90%가 죽임을 당했고 네덜란드는 70%, 백러시아, 우크라이나, 벨기에, 유고슬라비아, 루마니아, 노르웨이에서는 50%이상의 거주 유대인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처럼 참혹한 대량학살을 당하면서도 유대인들은 대체 왜 저항하지 않았을까요? 3권으로 된 <유대인의 역사>를 쓴 폴 존슨은 그의 책 <유대인의 역사3 : 홀로코스트와 시오니즘>에서 <왜 유대인들은 저항하지 않았을까?>라고 자문한 뒤 이렇게 답하고 있습니다. <동유럽에 있었던 유대인공동체들은 여러 세대에 걸친 집단적 이주로 이미 나약해져 있었다. 야망을 품은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미국으로, 가장 정력적이며 진취적이고 무엇보다 가장 호전적인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으로 이미 가버린 뒤였다. … 온전히 종교적인 유대인 집단들은 기만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기만에도 빠져 있었다. 그들의 역사는 잔혹했으나 이제 모든 박해가 끝났으며 박해자들은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들의 전략은 언제나 ‘남은 자’를 구하는 데에 맞추어졌다. … 독일인들은 실제적이거나 잠재적으로 문제를 일으킬만한 인물들을 색출하는데 유대인평의회를 이용했고 색출되는 대로 처형했다. 이로써 유대인 지도층은 고분고분해지고 소심해졌으며, 심지어는 아첨하는 경향을 보였다. … 그에 대한 대가로 그들은 동포에 대한 특권과 권력을 부여받았다>

나치가 유대인학살을 감행할 당시 유대인들은 이미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유대인의 현실적인 생존방안에 대한 정치적인 견해차이로, 또는 유대교 전통의 보수와 개혁에 대한 종교적인 견해차이로, 혹은 거주하고 있는 각 나라 안에서 차지하고 있는 유대사회의 지위에 따라서 그들은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서유럽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은 유럽사회에 자신들이 동화되어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낙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반면 시온주의자들은 그 누구로부터도 더 이상 핍박받지 않고 항구적으로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유대민족국가 수립을 목표로 팔레스타인으로 제2의 출애굽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유럽과 러시아에서는 도리어 이러한 시온주의에 반대하며 유대민족의 민족문제를 계급혁명의 장애물로 치부해버리는 공산주의에 경도된 사람들이 늘어갔습니다. 유럽과는 달리 비교적 자유로운 삶과 공평한 기회가 주어졌던 미국의 유대인들은 미국사회의 주류를 형성해가며 유대인 박해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거리를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종교적으로 유대교 전통의 고수에 매달린 유대교인들은 시온주의자들을 세속적, 무신론적이라고 비난했습니다. 반면에 시온주의자들은 유대민족국가를 건설하는 길만이 ‘고난 받고 있는 위대한 민족이 나아갈 길’이라고 확신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사분오열된 유대인들이 저마다 자신들의 생각과 입장만을 절대 옳은 것으로 믿었다는 사실입니다. 중세 기독교도에 의한 유대인 박해의 역사를 쓴 솔로몬 이븐 베르가(Solomon ibn Verga)는 <기독교인들은 종교적인 관용을 보이지 않았고 유대인들은 양보를 몰랐다>는 점을 유대인 박해의 원인중 하나로 꼽았습니다. 양보를 모르는 유대인! 특히 종교적으로 양보와 타협 없는 유대인들의 꼿꼿한 신앙자세는 분명 수천 년의 고난 속에서도 그들의 정체성을 보존해올 수 있었던 내면의 힘이었습니다. 그러나 때론 양보하고 타협하며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하는 세계 속에서 양보를 모르는 그들의 삶의 자세는 그들과 다른 모양으로 사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마찰하고 갈등하며 반목과 대립의 관계를 만드는 원인이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자신들의 내부마저 타협 없는 분열로 갈라짐으로 홀로코스트같이 유대인 전체가 공멸의 위기에 처했을 때조차 힘과 지혜를 하나로 모으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을 ‘하나의 생각’으로 여기지 않고 ‘옳은 유일한 생각’이란 착각에 빠짐으로 역사의 코너에 몰린 상태에서 빠져나갈 출구를 ‘함께’ 찾지 못한 것입니다.

물론 홀로코스트 희생의 원인을 희생된 유대인들에게 전적으로 돌리는 것은 결코 옳지 않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당연히 유대인의 피에 굶주렸던 나치의 광적인 유대인 혐오에 있습니다. 그리고 나치의 잔혹한 유대인 학살을 보면서도 노골적으로 동조하거나 비굴하게 침묵으로 방관했던 당시의 지성(대학, 언론)과 영성(교회)에 큰 책임이 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 공멸의 위기 앞에서조차 서로가 자신들만의 정치노선, 종교생활, 신앙고백만이 옳은 것이라 고집하며 서로를 반목할 뿐 연대하지 못했던 유대인들의 꽉 막힌 모습은 그들이 당한 참혹한 희생을 생각할 때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수천년의 고난에도 결코 굴하지 않는 투철한 신심을 가진 그들이, 당대 최고의 지성을 갖춘 그들이 어째 서로에 대해 그리도 옹졸했을까요? 자기의 노선과 신앙만이 절대 옳다는 그 고집과 불통이 공멸의 위기 앞에서 반드시 맞잡아야 했던 서로의 손을 외면하게 만들었습니다. 서로가 나만 옳다고 주먹을 움켜쥘 때 움켜 쥔 주먹끼리는 결코 손을 잡을 수 없지요. 움켜 쥔 손을 펼 때라야 비로소 서로 손을 맞잡을 수 있지 않습니까? 나치 아래 유대인의 분열이 두고 두고 안타까운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우리는 ‘생각’과 ‘믿음’을 혼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예루살렘으로 십자가를 지러 올라가는 예수님의 앞길을 가로 막았다가 주님으로부터 큰 책망을 받았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그리스도가 그렇게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말려야 한다는 베드로의 생각은 어디까지나 베드로의 생각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십자가의 그리스도였습니다. 믿음은 내 생각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홀로코스트 앞에서 변변한 저항 한 번 못해 보고 떼죽음을 당하면서도 자신들만이 옳은 믿음의 길을 가고 있다고 믿었던 유대인들, 그들은 바로 자기 생각이 곧 옳은 믿음이라고 착각했던 베드로의 후예들입니다. 우리도 베드로처럼 자기 생각을 곧 옳은 믿음으로 착각한 체 도리어 성령의 역사를 거스르는 잘못을 얼마든지 범할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합니다.

(2010. 7. 25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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